
인류가 처음 하나, 둘 셈을 시작했을 때 0은 필요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는 것을 굳이 셀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0은 다른 숫자가 등장한 한참 뒤에야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에는 자릿수(10, 100, 1000 등에서 비어 있는 자리)를 표시하는 기호로만 쓰이다가, 하나의 수로 인식되기까지는 다시 수백 년이 걸렸다.
자릿수로서의 0이 얼마나 편리한지는 로마숫자를 보면 알 수 있다. 지금도 시계 표기 등에서 쓰이는 로마숫자는 I(1), V(5), X(10), L(50), C(100), D(500), M(1000) 등 7개의 기호를 조합해 수를 나타낸다. 이보다 큰 수를 쓸 때는 기호 위에 가로줄을 그어(한 줄은 1000배, 두 줄은 100만 배) 표시했다. 이론상 큰 수도 표기할 수 있지만, 실제로 복잡한 수를 쓰거나 읽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에 비해 0을 하나씩 추가할 때마다 자릿수가 늘어나는 아라비아 숫자는 얼마나 쉽고 편리한가. 6438을 로마숫자로 쓰면 MMMMMMCDXXXVIII이 된다. 그러나 유럽은 전통적 선호와 이슬람 문화에 대한 반감 탓에 아라비아 숫자를 한동안 받아들이지 않았다.
0을 나타내는 기호를 맨 먼저 만든 것은 마야인으로 보인다. 그러나 0의 중요성을 제대로 이해한 것은 인도의 굽타 왕조(4~6세기) 시대였다. 당시 인도 수학자들은 점으로 0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7세기의 수학자 브라마굽타(598~668)는 저서를 통해 0을 설명하며, 그 이전에 이미 발명되었음을 보여주었다.
1881년, 지금의 파키스탄 지역 바크샬리에서 한 농부가 글씨가 적힌 자작나무 껍질 70쪽을 발견했다. 그 안의 산술·대수학 기록 속에 0에 관한 내용이 있었고, 방사성 탄소 연대측정 결과 300년, 700년, 900년경에 작성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를 근거로 학자들은 0의 발명 시기를 추정한다.
0이 단순한 자릿수 표시를 넘어 하나의 수로 인정된 것은 브라마굽타의 《브라마스푸타싯단타》에서다. 이슬람 세계를 거쳐 유럽으로 퍼진 이 책에서 그는 0을 산술 계산에서 활용할 수 있는 수로 제시했다. 그는 “어떤 수에 0을 더하거나 빼면 변함이 없다”, “어떤 수에 0을 곱하면 0이 된다”고 썼다. 또 “빚에서 0을 빼면 여전히 빚”, “0에 빚이나 재산을 곱하면 0이 된다”고 하여 양수(재산)와 음수(빚)를 구분했다.
0을 단순한 자리표시자에서 수학적 수로 격상시킨 전환은 인류 문명사에서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오늘날 디지털 기술은 0과 1만을 사용하는 2진법에 의존한다. 화면의 픽셀, 계산, 데이터 저장 모두가 0과 1의 경이로운 힘에 달려 있다. 전자공학적으로는 전류가 켜짐(on, 1)과 꺼짐(off, 0)에 해당하지만, 여기서 0은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계산에서 자유롭게 쓰이는 완전한 수다.
그렇다면 왜 여러 문명에서 0의 흔적이 보이는데도, 인도에서만 본격적인 발전이 이루어졌을까. 이는 무(無)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인도의 철학적 전통 덕분일 것이다. 산스크리트어에는 ‘텅 빈 것’을 뜻하는 단어가 유난히 많으며, ‘하늘’이나 ‘대기’를 뜻하는 단어도 0을 나타내는 데 쓰였다. 불교의 핵심 개념인 ‘공(空)’ 역시 인도에서 비롯되었다. 인도인들은 무를 세계의 바탕이자 시작으로 보았다.
수학에서 0은 ‘없음’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모든 수 체계의 문을 여는 출발점이다. 0의 도입으로 음수, 양수, 무한으로 이어지는 수의 세계가 완성됐다. 불교의 ‘공즉시색(空卽是色)’처럼, 비어 있음은 곧 가능성이며 존재를 낳는 바탕이다. 이를 보면 수학과 철학의 뿌리는 다르지 않다. 어쩌면 모든 학문이 하나의 뿌리를 공유하는지도 모른다.
옛 그리스 학자들을 보라. 그들은 철학자이자 수학자, 과학자였다. 철학적 사유에서 수학적 직관을 이끌어내곤 했다. 그에 비해 오늘날 학자들이 지엽적 분야에 갇혀 있는 모습은 아쉬움을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