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사례도 다르지 않다. 현 국가조찬기도회 회장인 이모 서희건설 회장이 김건희 여사에게 고가의 명품을 선물하며 사위의 인사 청탁을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런 사건은 국가조찬기도회가 권력 유착의 통로로 활용되고 있다는 인식을 더욱 굳혔다. 또 2024년 국가조찬기도회에서 특별기도를 맡았던 기독군인회 회장 박정환 당시 육군참모총장은 그해 5월 비상계엄 문건에 비상계엄사령관으로 이름이 올라 충격을 주었다. 이는 단순한 개인 일탈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임을 보여준다.
기도의 본질은 분명하다. 예수는 “골방에 들어가 은밀한 중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하라”(마태복음 6:6)고 가르치셨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의 진실한 고백이지, 권력자의 기독교 친화성을 과시하거나 교계 인사들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한 무대가 아니다. 사도들은 “사람을 두려워하랴, 하나님을 두려워하랴”(사도행전 4:19)라고 외쳤고, 예언자 아모스는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흐르게 하라”(아모스 5:24)고 촉구했다.

그러나 국가조찬기도회에서는 이런 목소리를 찾기 어렵고, 대신 권력자에게 불편하지 않은 축복의 언어만 넘쳐난다. 국가조찬기도회는 하나님보다 권력을 의식하는 교계 인사들의 행사로 비춰진 지 오래다. 대통령의 참석 여부가 행사의 성패를 좌우하고, 주관자의 역량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어버렸다. 이는 예언자적 목소리를 잃은 교회의 초라한 자화상이다.
고급호텔의 조찬 자리에서 나누는 미소와 덕담은 교회의 진정성도 공적 위상도 드러내지 못한다. 오히려 신앙의 타락과 교회의 쇠락을 보여주는 무대로 전락했고, ‘기도회’라는 이름은 복음을 드러내기보다 오히려 가리는 장막이 되고 있다.
만약 국가를 위한 기도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권력자의 안위를 빌어주는 자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 앞에서 공동체의 죄를 고백하고, 권력자들에게 정의와 회개를 촉구하는 자리여야 한다. 그러나 국가조찬기도회는 본질에서 멀어져 왔다.
이제는 멈춰야 한다. 생명력을 잃은 왜곡된 전통을 붙드는 대신,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서려는 회심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교회의 신뢰를 되찾는 첫걸음이자, 교회가 다시 사회 앞에서 진정성을 회복하는 최소한의 결단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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