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을 살아보니, 나는 이제 완전한 홍성 사람이다

나는 지금 홍성에서 30년 넘게 살고 있다. 처음부터 이런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다. 1974년 9월, 처음으로 홍성지청 검사로 부임했을 때만 해도 이곳과 이렇게 깊은 인연을 맺게 될 줄은 몰랐다. 당시 1년 1개월을 근무하고 떠났다가, 1993년 9월, 정년을 1년 앞두고 다시 홍성지청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퇴직 후에는 뜻밖에도 홍성에 뿌리를 내리고 변호사로 활동하며 살았다. 어느새 세월이 흘러 이제는 누가 뭐래도 나는 ‘홍성 사람’이다.
사실 나에게 홍성은 고향은 아니다. 그러나 홍성은 내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고, 또 나를 사람답게 살게 한 곳이다. 홍성과의 첫 인연은 검사 시절이었다. 예산농고를 나와 예산, 홍성, 보령, 서천 일대에 나를 아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사건 청탁이 끊이질 않았다. 당시 홍성지청 검사 두 명 중 한 명이었던 나는 매일같이 청탁을 받고, 소환장을 들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사건 담당 검사가 아니라고 설명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친구의 아버지가 사기 혐의로 소환됐을 때는 특히 곤혹스러웠다. 친구는 전화를 걸어 “잘 봐달라”고 부탁했지만, 나는 원칙대로 처리했다. 결국 그 친구와 의절했지만, 검사로서 양심만은 지켰다. 그때 깨달았다. 자기 연고지에서 공직 생활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그래서 그 후로는 예산과 홍성에서 송치되는 사건은 다른 검사에게 맡기고 보령과 서천 사건만 맡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청탁은 줄어들지 않았다.
그러던 중 법무부 장관이자 서울법대 교수를 지낸 황산덕 선생님이 홍성지청을 방문했다. 나는 면담 자리에서 “선생님, 제발 저를 다른 곳으로 보내주십시오”라고 부탁했다. 그 덕에 1년 1개월 만에 의정부지청으로 발령받아 홍성을 떠날 수 있었다. 당시만 해도 최소 2년은 근무해야 옮길 수 있었는데,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런데 정년퇴직을 앞두고 다시 홍성으로 돌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마지막 근무지로 서울고등검찰청에서 편하게 일하다가 서울에서 변호사 개업을 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주변 선배와 동료들이 “이제라도 고향 가까운 곳에서 봉사하며 마무리하라”고 권했고, 결국 다시 홍성지청장으로 왔다. 사실 성남지청장 같은 큰 기관을 맡았던 입장에서 작은 지청으로 돌아오는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나를 부러워하며 “복이 많다”고 칭찬해줬다.
퇴직 후에도 당연히 서울로 돌아가 가족과 함께 살며 변호사를 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그때도 지인들이 강력히 권했다. “홍성에 남아 지역 사람들을 위해 일하라”는 권고가 이어졌다. 심지어 대학 동기인 고(故) 남용희 변호사는 ‘홍성에서 변호사를 해야 하는 10가지 이유’를 조목조목 적어 편지를 보내줬다. 존경하는 이재성 대법관님은 “나는 북쪽 고향에 못 돌아가지만 당신은 고향 같은 홍성에서 마지막 봉사할 수 있으니 얼마나 복이냐”라며 정성스러운 편지를 보내주셨다.
결국 나는 마음을 바꿨다. 홍성에 정착해 변호사로 활동했고, 돈보다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걸 우선했다. 변호사 사무실 문을 열자마자 사건이 몰려 다른 변호사들에게 미안할 정도였다. 사건 수임을 무조건 받지 않고, 돈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했기 때문에 큰돈을 모으진 못했다. 대신 번 돈은 지역사회에 다시 돌려주겠다는 생각으로 여러 봉사 활동에도 참여했다.
변호사를 그만둔 지 16년이 됐다. 지금은 홍성읍 월산리에 지은 작은 집에서 아내와 함께 조용히 산다. 집 주변에 연산홍과 소나무, 주목과 향나무를 심고, 작은 밭도 일궈 정원을 가꿨다. 월산리는 홍성의 진산인 월산 밑에 자리한 마을로, 농촌 정취가 물씬하다. 주민들은 대부분 농사로 생계를 잇는다. 무, 배추, 상추, 감자, 옥수수를 재배해 시장에 내다 판다. 주민들끼리 정이 많고 단결력도 강하다. 나도 마을 모임에 꼬박꼬박 참여하며 이웃과 한마음으로 지내고 있다.
홍성에서 살다 보니 사람들의 눈도 많다. 택시를 타도 기사들이 나를 알아보고 인사한다. 얼마 전에는 두 택시 기사에게 연달아 똑같은 정치 이야기를 들으며 민심의 무서움을 다시 느꼈다. 그래서 바깥에서는 항상 언행을 조심한다.
책 읽기와 글쓰기는 지금도 내 일상이다. 서점에 가는 대신, 지인들이 보내주는 책을 읽는다. 소설, 수필, 시집부터 자서전까지 다양하다. 2년 동안 적은 글이 60편이 넘는다. 스포츠 중계도 즐겨 보고 한화 경기를 관전평 삼아 글도 쓴다.
아내는 이제 나이가 들어 밭일도 힘들고 서울 자식들 가까이로 이사 가자고 종종 조른다. 하지만 나는 마음이 다르다. 홍성은 공기도 좋고, 사람들도 정겹고, 가까이 산도 바다도 있어 늙어 가기 딱 좋은 곳이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홍성에서 책 읽고, 글 쓰고, 사람들과 웃으며 살고 싶다.
이제 나는 홍성에서 태어나지 않았지만, 홍성에서 완전히 뿌리내린 사람이다. 내 삶은 홍성과 함께였다. 그리고 남은 삶도 이곳과 함께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