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 칼럼] 우울한 이 봄, 길을 묻는다 “도대체 어찌해야 합니까?”

어느새 사월이다. 새해맞이로 설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 사이에 이리 시간이 흘렸다. 문득 사월은 잔인한 봄이라는 말이 불길한 예감처럼 떠오른다.
우울한 봄이다. 아마도 내 기억으로는 이번 봄이 가장 우울한 봄이지 싶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말뜻이 실감나는 듯하다. 오랜 늦추위로 봄이 더디게 오더니 하얀 매화와 목련, 샛노란 산수유 개나리와 수선화, 연본홍의 진달래와 벚꽃 그리고 피빛처럼 붉은 동백꽃이 봇물 터지듯이 모두 한꺼번에 피어나 온 사방이 꽃 물결로 출렁인다. 이리 밀려오는 꽃 물결 속에서도 마음은 쉬 환해지질 않는다. 이 또한 노년기의 우울증 같은 것일까.
나라가 진영 논리로 처절하게 양분된 가운데 산불 재해까지 겹쳤고 나라 밖에도 참담한 지진 재난 등의 소식과 함께 한번 촉발된 전쟁은 끝날 기미 없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새봄맞이를 구실로 이곳저곳 새로 피어나는 꽃들을 찾아다니지만 이 봄의 화사한 눈부심 속에서도 내 마음이 환해지지 않고 우울함에서 좀체 벗어날 수 없는 것도 이런 까닭일 거라 싶다.

어쩌면 지금 이런 내 우울함이란, 무력감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작금의 탄핵정국에서 헌재에 의해 탄핵이 인용되든, 기각되든 진영으로 갈라져 이미 심리적 내란 상태에 빠져있는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감과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는 무력감이 꽃 앞에서도 절로 한숨 쉬게 하는 것이라 싶기도 하다.
어찌해야 할 것인가. 어찌하면 좋을 것인가. 내가 나라 사정에 이처럼 노심초사하는 것은 내가 이 나라 사람이라는 그 정체성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내 정체성을 한 국가 중심으로 묶어 놓기에는 이미 근대국가의 개념 자체가 무너지고 있고 지금 우리가 당면한 주요 문제들이 거의 모두 국가의 틀을 벗어난 세계적이고 지구행성 차원의 문제들이다.
그렇게 지금 나라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런 상황을 한발짝 떨어져 바라보려고 해도 우울증은 가시질 않는다. 오히려 마음의 답답함은 더 커지기만 한다. 전 세계가 기후위기와 생태적 재앙 등의 두려움 앞에서 저마다 살아남고자 하는 각국 도생의 경쟁과 이로 인한 분쟁이 갈수록 악화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한 내가 아무리 이 나라를 여러 분쟁국가의 하나로 바라보려고 해도 그럴 수 없는 것은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 이 나라인 때문이다. 그것이 운명일 것이다.
주변을 보면 가까운 지인들조차 이미 진영의 덫에 갇혀있다. 어느 한 편에 서서 자기 생각이 확고하다. 말로는 객관적이라고 하면서도 확증편향이 강고하다. 논리적 이해나 설득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 시대의 주요 특징 중의 하나가 탈진실시대(Post-truth era)라는 개념이라고 한다. 탈진실시대란 객관적인 사실이나 진실보다 개인 감정이나 신념이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시대를 의미한다. 논리적 증거나 팩트보다 자신의 감정이나 선호하는 이야기, 믿고 싶은 정보에 더 귀 기울이는 경향이 강한 시대를 뜻한다. 이러한 탈진실시대의 특징으로 감정이 이성보다 우선 되고, 이로 인해 가짜뉴스와 음모론이 확산되고 전문가 및 과학적 사실은 불신되며 확증 편향이 심화된다는 것이다.
확증편향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지금 내가 정말 그렇다라고 믿고 있는 이 생각이 없다면 나는, 우리는 누구일까.’ 케이티의 네가지 질문이 새삼 떠오른다.
왜 우리는 두 편으로만 나누어져 서로를 배척해야만 하는 것일까. 왜 내 편이 아니면 모두 배척과 배제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내 눈에는, 내 심중에는 좌우의 진영으로, 찬탄 반탄 세력으로 편 갈라 씨우는 이들과 정치인들 모두 마땅하지 않다. 모두 망령에 사로잡힌, 빙의된 무리들처럼 느껴진다.
때때로 이들을 모두 정리하고 새 판을 짰으면 하는 마음이 절로 솟구치기도 한다. 그러나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하면 어느 한 편을 배제하며 살 수는 없는 것이다. 싫든 좋든 함께 살아야 한다. 눈 먼 자의 어리석음으로 촉발된 이 정치적 난국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바꾸는 길은 탄핵 정국을 국민적 화해와 통합의 새로운 정치체제로 새롭게 바꾸는 길뿐이라 싶다.
그 길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그 일의 성사를 위해 조금이라도 거들 수 있다면 이 봄날의 가슴 답답함과 우울증에서 기벼워질 수가 있을까. 봄을 열어가는 화사한 꽃 앞에서 나도 환하게 웃을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