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헌법재판관들의 색깔

원로 법조인 몇 명과 점심을 먹는 자리였다. 법원장을 지낸 원로 법관들이었다. 자연스럽게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심판이 몇 대 몇으로 결정이 날 것 같으냐가 대화의 소재로 떠올랐다. 박근혜 탄핵 때 광장의 함성 때문인지 8대0 헌법재판관 만장일치로 탄핵 결정이 됐는데 이번에는 어떻겠느냐였다. 똑같은 결론이 나올 것이라는 분도 있었고 그때와는 상황이 달라 몇 명의 기각의견이 있을 것이라는 분도 있었다. 이념 성향이 다른 헌법재판관들 문제도 나왔다. 소위 우리법연구회라는 진보성향 재판관이 있다는 것이다. 모임의 좌장격인 선배가 이런 말을 했다.
“헌법재판관이 되어 보면 헌법을 수호하겠다는 또 다른 사명감이 생깁니다. 특정 정파를 위한 헌법적 해석은 하지 않을 거라고 봐요. 헌법재판소는 어차피 태생부터 정치성을 가지고 있어요. 법리보다는 윤석열을 대통령 자리로 돌려보내면 그 이후 정국이 어떻게 되겠느냐가 실질적인 핵심 판단사항이겠죠.”
좌장격인 분은 오랜 재판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사법부 전체의 인사문제나 행정에도 관여했다. 청와대에서도 대통령 대신 사법부 판사들의 문제를 처리했던 거물이었다. 법 외에 정무적 감각이 탁월한 분이었다. 그가 덧붙였다.
“우리 법관끼리 합의를 이끌어내는 비슷한 경험을 해봤잖아요. 헌법재판소도 마찬가지죠. 헌법재판관들이 항상 끼리끼리만 같이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어울리게 되어있어요. 가족과 함께 어디 놀러 가도 마찬가지구요. 그런 유대 속에서 혼자 튀기가 쉽지 않아요. 그렇게 하면 요새 말로 왕따가 되는 거니까. 그래서 나는 8대0으로 봅니다.”
그 다음은 탄핵의 본질인 대통령에 대한 얘기들이 오고 갔다. 그 자리에 있던 한 분이 입을 열었다.
“윤석열은 기본적으로 함량 미달이죠. 내가 무슨 권한을 가지고 있느냐만 생각하고 큰 정치적 실수를 저지른 거지. 김건희를 야당이 정치적으로 문제 삼았는데 법적으로 그게 무슨 문제냐고 대응했지. 정책도 그래요. 효율성을 중시하고 국민적 지지를 소홀히 했죠. 기본적으로 정치인이 되지 못한 거지.”
얘기는 자연스럽게 헌법재판정에서 공방이 치열한 양측의 주장 중 어떤 게 신빙성이 있느냐로 흘러갔다. 법원장을 지낸 다른 분이 말했다.
“보통 혐의를 숨기는 범인일수록 긴 변명을 늘어놓죠. 말이 길어질수록 앞뒤가 헝클어져요. 그러다 거짓말이 통하지 않으면 이를 갈면서 ‘하늘을 두고 맹세한다’는 따위의 확인할 방법이 없는 담보를 꺼내 들죠. 인격과 삶으로 신뢰를 쌓지 못한 사람들의 수법이지. 그리고 상관과 부하의 말이 틀릴 때는 대개 부하의 말이 맞는 것 같던데. 부하들은 상관보다 숨길 게 상대적으로 적잖아?”
‘대통령이 싹 다 잡아들여’라고 했다는 말을 놓고 명령을 받은 국정원 차장과 대통령의 말이 상반됐다. 한쪽은 진실이라고 하고 다른 한쪽은 공작이라고 하고 있었다. 좌장인 원로 법조인이 말을 계속했다.
“헌법재판관들은 이미 검찰에서 온 수천 쪽의 조서들을 다 읽고 재판정에 나와 있어. 기록 안의 수 많은 부하였던 사람들이 모두 자백을 했어. 법대 앞에 앉아 들어주는 헌법재판관들의 마음이 어떻겠어? 우리 다 경험해 봤잖아?”
좌장이 이런 말을 덧붙였다.
“우리들이 재판을 해오면서 어떻게 매듭들을 지었어요? 판결보다 조정이 현명하잖아? 내 생각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하야를 하는 대신 국회의 탄핵소추를 철회시키는 거지. 그리고 형사재판도 불구속으로 하자고 타협을 하는 거야. 국민들 보기도 그렇고 말이야. 그래서 내가 윤대통령측 변호인을 통해 그렇게 하면 어떻겠느냐고 했더니 씨도 안 먹히는 소리 하지 말라는 거야. 윤석열 대통령은 용산으로 돌아간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는 거지. 아예 말을 전하지도 않았대.”
광장의 함성과 지지율의 상승이 윤석열 대통령을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게 할 수 있을까? 이미 흘러간 강물은 돌이키지 못하는 건 아닐까. 같은 헌법 아래서도 이념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시장경제의 수립을 목표로 한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있고 민족해방과 통일을 지향하는 민중주의가 있다. 역사에서도 민족주의 한 가지만 앞세우고 거기에 맞지 않는 모든 것들은 칼질을 당하고 있다. 경제면에서도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잘살자는 욕망이 가득하다. 모든 면에서 우상화가 벌어지고 있다. 그런 우상들을 부숴야 하고 그걸 실천하는 무기로서 법이 필요한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