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 아이치(愛知)·나고야(名古屋) 아시안게임’이 16일간의 열전을 마치고 10월 4일 막을 내렸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은 참가와 교류에 의미를 두지만, 각국의 메달 경쟁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선수들의 땀과 성취를 지켜보며 국민은 기쁨과 자부심을 나눴다.
이맘때면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다. 서울올림픽은 1988년 9월 17일부터 10월 2일까지 16일간 열렸다. 우리나라는 금메달 12개, 은메달 10개, 동메달 11개로 소련·동독·미국에 이어 종합 4위에 올랐다. 개최국의 이점을 고려하더라도 한국 스포츠의 위상을 세계에 알린 성과였다.

그러나 올림픽의 흥분이 채 가시기도 전, 대한민국은 충격적인 사건을 맞았다. 폐막 엿새 뒤 시작된 이른바 ‘지강헌 일당 탈주·인질 사건’이다. 1988년 10월 8일, 영등포교도소에서 다른 교정시설로 이송되던 재소자 25명 가운데 지강헌 등 12명이 교도관을 흉기로 공격하고 권총을 빼앗아 탈주했다. 이들은 서울로 잠입했고, 일부는 가정집에 침입해 인질을 잡으며 도피를 이어갔다.
지강헌·안광술·강영일·한의철 등 4명은 10월 15일 밤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의 한 가정집에 들어가 가족을 인질로 잡았다. 경찰과의 대치 상황이 TV로 생중계되면서 국민은 긴박한 현장을 지켜봤다. 이들이 내세운 불만의 중심에는 형벌의 형평성과 보호감호제도가 있었다. 당시 사회보호법에 따른 보호감호는 징역형과 별개로, 형기를 마친 뒤에도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는 처분이었다.

지강헌은 약 556만 원을 훔친 상습절도 사건으로 징역 7년과 보호감호 10년을 선고받은 것으로 보도됐다. 흔히 ‘17년형’이라고 표현하지만, 정확히는 징역형과 보호감호를 합친 기간이었다. 그는 자신에게 내려진 처분이 지나치게 무겁다며 돈과 권력에 따라 처벌이 달라진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을 설명할 때 자주 비교되는 인물이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이다. 전경환은 새마을운동중앙본부 공금 횡령 등으로 재판을 받았고, 1989년 5월 대법원에서 징역 7년이 확정됐다. 다만 이 확정판결은 지강헌 사건 이듬해의 일이다. 두 사건의 형량을 비교하더라도 시간의 선후는 구분해야 한다.
지강헌이 남긴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외침은 돈과 권력 앞에서 법이 공정하게 작동하는지를 묻는 말로 퍼졌다. 그의 범죄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그 말이 겨냥한 사회의 불평등에는 귀를 기울였다.
그렇다고 탈주와 인질극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교도관을 공격하고 무기를 빼앗았으며, 무고한 시민을 인질로 잡은 행위는 별개의 중대한 범죄였다. 형벌의 불공정을 비판하는 일과 범죄의 책임을 묻는 일은 함께 이뤄져야 한다.
북가좌동 인질극은 다음 날인 10월 16일 비극으로 끝났다. 안광술과 한의철은 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강헌은 유리 조각으로 자해하다 경찰의 총에 맞았고, 병원으로 옮겨진 뒤 숨졌다. 당시 밖으로 나온 강영일은 생포됐다. 10월 8일부터 이어진 탈주극은 이날 막을 내렸다.
마지막 순간 지강헌은 비지스의 노래 <Holiday>를 틀어달라고 요구했다. 긴박한 대치 현장에서 흘러나온 노래는 사건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홀리데이>는 2006년 개봉했다.
인질이었던 가족들의 후일담도 전해졌다. 당시 22세였던 고선숙씨는 훗날 탈주범들이 자신들에게 보였던 인간적인 면모를 회고했다. 그러나 사건 뒤 잠과 식사에 어려움을 겪고 취재진의 질문에 시달렸다는 증언도 남겼다. 인질의 경험에는 공포와 연민, 사건 이후의 고통이 함께 있었다.
인질 가족들이 강영일의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를 제출했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다만 이를 특정한 감형의 결정적 이유로 단정하거나, 탄원서만으로 인질극의 책임을 가볍게 볼 수는 없다.
38년 전 한 탈주범이 외쳤던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묻고 있는가. 돈과 지위에 관계없이 누구나 같은 기준으로 수사받고 재판받는다는 믿음은 그때보다 얼마나 단단해졌는가.
스포츠의 성취는 나라의 위상을 높인다. 법의 공정성은 그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믿음을 지탱한다. 1988년 가을의 비극을 돌아보는 이유는 범죄자를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가 던진 질문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어떤 답을 내놓고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