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대형 원자력발전소가 원전 종주국 미국에 진출한다. 한미원자력협정 체결 70년, 연구용 원자로 도입 64년 만의 쾌거요, 1977년 웨스팅하우스 기술로 건설된 고리 1호기 준공 반세기 만의 장거다.
1일 산업통상부는 한미 양국이 대미투자펀드 2000억 달러 가운데 최대 1200억 달러(약 163조 원)를 투입해 미국에 대형 원전 8기를 건설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 ‘한미 원전 프레임워크’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프레임워크에는 한미 양국 정부와 웨스팅하우스, 한국전력, 한국수력원자력이 서명할 예정이다.
건설 기종은 한국형 대형 원전인 APR1400 2기와 웨스팅하우스의 AP1000 6기로, 총 8기다. 1단계 AP1000 2기 착공을 시작으로, 2단계 APR1400 2기와 AP1000 2기 건설, 3단계 AP1000 2기 추가 건설 순으로 추진될 예정이다. APR1400 2기의 미국 진출은 제3국 시장 수주전에서 한국형 노형의 수주 가능성을 높일 발판이 될 전망이다. 무엇보다 원전 종주국인 미국에 한국형 대형 원전이 진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한편 원전 건설의 파트너인 웨스팅하우스의 지분 인수 추진도 낭보 중 낭보다. 이는 웨스팅하우스와의 불평등한 계약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지분율은 5∼10% 수준으로 조율 중”이라며 “한전과 한수원은 재무 부담을 고려해 상징적 수준으로 참여하고 국내 사기업들이 함께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당초 정부는 웨스팅하우스 지분 20% 안팎을 요구했으나 미국 측이 난색을 표하면서 5∼10% 지분 확보를 목표로 내걸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와 대우건설의 지분 투자 참여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1월 웨스팅하우스와 한전·한수원이 체결한 타협협정(Settlement Agreement)으로 인해 우리 측은 원전 1기를 수출할 때마다 1조 원이 넘는 규모의 기술 사용료 부담을 떠안았다. APR1400의 미국 내 건설도 불가능했다. 이 협정에는 지식재산권(Intellectual Property) 관련 합의 내용과 로열티(기술 사용료) 지급 조건이 포함돼 있다. 기술 사용료는 원자로 1기당 8억2500만 달러(1조1200억 원) 수준에 달하고, 합의 효력이 최소 50년에 이르는 불평등한 계약이기도 하다.
우리가 웨스팅하우스의 지분을 5∼10%만 확보해도 의결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웨스팅하우스의 경영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특히 2009년 47조 원 규모의 바라카 원전과 지난해 체코 두코바니 원전 수주 당시 웨스팅하우스로부터 강력한 태클을 받았던 경험에 비추어 이번 지분 참여 계획은 경천동지할 사건이다. 그만큼 향후 원전 수출이 수월해진다는 뜻이다.
기실 대한민국 원전의 미국 진출에는 이미 상당한 진척이 있었다. 미주리대학에 연구용 원자로 수출이 이미 확정됐는가 하면,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가 와이오밍주 케머러(Kemmerer)에 건설할 AI데이터센터에 전력을 공급할 비경수로형 첨단 소형모듈원전(SMR) 건설에도 한국형을 선택하기로 지난 3월 결정한 바 있다.
원전 종주국인 미국에 다각적으로 진출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이 기회를 K-원전이 세계 1위로 도약하는 지렛대로 삼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