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인터뷰

“환우들 목소리가 법을 바꾼다”…15년 현장기록 『환자샤우팅카페』

2012년 6월 27일 저녁 7시 서울 종로 ‘엠스퀘어’에서 열린 제1회 환자샤우팅카페에서 아들의 항암제 빈크리스틴 투약오류 사망사건에 대해 샤우팅하는 정종현 어머니 김영희 씨. 옆에서 듣고 있던 이날 진행을 맡은 최현정 MBC 아나운서가 눈물을 훔치고 있다.

2012년 시작 ‘환자샤우팅카페’ 26회·환우 60명 참여
종현이법·재윤이법·예강이법·동희법으로 이어진 환자들의 외침
안기종 “계란으로 바위 치기 아니다…환자의 경험이 보건의료를 바꿔”

“세어보니 사무실에서 잔 날이 200일이 넘더군요.”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책 한 권을 쓰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을 줄였다. 김포에서 서울까지 출퇴근하는 데 하루 3~4시간이 걸렸다. 낮에는 의정 갈등과 의료분쟁조정법 개정, 환자기본법 제정 등 의료 현안에 대응하고, 밤에는 원고를 써야 했다. 결국 사무실에 요가 매트를 깔고 항공 담요를 덮었다.

2025년 5월 무렵부터는 일주일에 닷새 정도를 사무실에서 보냈다. 출퇴근 시간이 사라지자 두 시간 더 잘 수 있었고, 두 시간 더 글을 쓸 수 있었다. 그렇게 1년 10개월에 걸쳐 한 권의 책이 완성됐다.

<환자샤우팅카페: 대한민국을 바꾸는 환자들의 목소리>. 환자와 가족들이 자신의 경험을 세상에 내놓고, 그 목소리가 법과 제도의 변화로 이어진 과정을 기록한 책이다. 안 대표가 책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단순하다. “환자의 경험과 목소리가 보건의료 제도와 법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환자샤우팅카페

“환자들은 늘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 생각합니다”

―책을 쓰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입니까?
“2024년 10월 31일 출판사와 첫 미팅을 했습니다. 그때부터 자료를 모으고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약 1년 동안 글을 쓰고, 이후 10개월 정도 출판사와 계속 원고를 검토했습니다. 결국 1년 10개월 만에 책이 나오게 됐습니다.”

―왜 이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까?
“예전부터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환자샤우팅카페에 나온 분이 60명 정도 됩니다. 그 가운데 자신의 경험과 목소리로 법이나 제도를 바꾸는 데까지 이어진 사례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역사로 남기고 싶었습니다.”

결정적인 계기 가운데 하나는 2024년 2월 시작된 의정 갈등이었다.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으로 의료공백이 발생하면서 환자들이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때 다시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환자의 경험과 목소리가 얼마나 중요한가.’ 그래서 책도 쓰고 환자샤우팅카페도 다시 제대로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책에서 독자들이 가장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무엇입니까?
“환자들은 권리를 침해당하거나 의료사고를 당한 뒤 문제를 제기하면 흔히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백전백패다’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환자의 경험과 목소리가 실제 보건의료 법과 제도를 바꿀 수 있다는 것입니다.”

119구급차로 이송중인 중증 응급환자인 아들이 정당한 사유 없는 권역응급의료센터의 수용 거부로 사망한 김동희 군 어머니 김소희 씨가 2024년 9월 10일 제24회 환자샤우팅카페에서 샤우팅하고 있다.

국회가 아닌 카페에서 시작된 ‘샤우팅’

환자샤우팅카페는 2012년 6월 27일 시작됐다. 국회 토론회나 정부 공청회처럼 전문가가 발표하는 자리가 아니다. 환자나 가족이 카페에 나와 기자와 환자와 환자가족, 시민 앞에서 자신의 경험을 자신의 언어로 이야기한다. 전문가들은 해결책을 찾고, 청중은 그 이야기에 공감한다. 언론 보도로 문제가 알려지고 여론이 형성되면서 경우에 따라 법과 제도의 변화로 이어진다.

안 대표는 이를 ‘샤우팅(Shouting)-힐링(Healing)-솔루션(Solution)’이라고 설명했다. “환자들이 자신의 불만과 피해를 이야기합니다. 사람들이 그 목소리를 듣고 공감합니다. 전문가들이 해결 방법을 제안합니다. 그리고 기자들을 통해 세상에 알려집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도 보건의료 제도를 바꿀 수 있구나, 법을 만들 수 있구나’ 하는 자신감을 환자들이 갖게 됐습니다.”

입소문이 나면서 참여하려는 환자와 가족도 늘었다. 2012년 첫 행사 이후 2025년 8월까지 모두 26차례 열렸고 약 60명의 환자와 가족이 무대에 섰다.

책은 이 가운데 환자와 가족, 환자단체가 함께 움직여 실제 법이나 제도의 변화를 이끌어낸 대표적인 9개 사례를 담았다.

첫 번째 외침이 ‘종현이법’이 되기까지

환자샤우팅카페의 첫 번째 주인공은 정종현 군의 어머니였다. 종현이는 항암제 빈크리스틴 투약 오류로 숨졌다. 어머니는 아들의 죽음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국내에서도 같은 투약 오류로 사망한 환자들이 있었고, 해외에서는 이미 이 문제가 사회적으로 알려져 투약 매뉴얼과 재발 방지 대책이 마련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세상에 알리기로 했다. “종현이 어머님은 의료사고를 낸 의사를 처벌해 달라고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의사를 형사처벌한다고 아이가 돌아오는 것도 아닌데 무슨 소용이 있느냐. 잘못을 인정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만들어 다른 환자들이 같은 일을 겪지 않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당시 카페에서 일하던 직원들까지 주방에서 나와 종현이 어머니의 샤우팅을 들었다. 눈물을 흘리는 직원도 있었다. 그날 솔루션 자문단으로 참석한 권용진 교수는 “종현이법을 한번 만들어보자. 환자안전법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안기종 대표는 “국민 1만 명의 문자 청원을 받아 국회에 환자안전법 제정을 청원하는 운동을 전개하자”며 구체적인 방안까지 제시했다.

환자단체연합회는 이후 1년 동안 ‘1만 명 문자 청원 운동’을 벌였다. 1만 명의 청원을 모아 당시 오제세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에게 환자안전법 제정을 요구했다. 오 위원장이 법안을 대표 발의했고, 이후 국회를 통과해 2016년 7월 29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른바 ‘종현이법’, 환자안전법의 탄생이었다.

안 대표에게는 그날의 또 다른 장면도 잊히지 않는다. “권용진 교수님이 종현이 어머님에게 ‘만일 제 사과가 종현이 어머니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된다면, 제가 한 사람의 의사로서 진심으로 사과하겠습니다’라고 사고를 낸 의사는 아니었지만, 의사의 과실로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슬픔에 대해 의사로서 대신 사과한 것입니다. 종현이 어머님도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첫 번째 샤우팅에서 ‘샤우팅-힐링-솔루션’이 모두 구현됐고, 결국 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이후 26차례 계속된 환자샤우팅카페의 기본 모델이 됐다.

서울대병원 공공진료센터 권용진 교수, 법무법인 제현 구영신 변호사,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

종현이법·재윤이법·예강이법·동희법

환자들의 이름은 이후 여러 법과 제도 개선 과정에 남았다. 환자안전법은 ‘종현이법’으로 불렸다. 환자안전사고 의무보고제 도입을 위한 법 개정은 ‘재윤이법’으로 이어졌다. ‘응급실 뺑뺑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동희법’도 추진됐다.

의료분쟁 조정을 신청해도 의료기관이나 의료인이 동의하지 않으면 절차가 시작되지 못하던 문제를 개선해, 사망이나 중대한 의료사고의 경우 조정절차가 자동으로 시작되도록 한 법 개정도 있었다.

처음에는 ‘예강이법’으로 추진됐지만. 가수 신해철 씨가 의료사고로 숨진 뒤 유족과 팬들이 의료사고 피해자의 어려움을 알리는 데 동참하면서 널리 ‘신해철법’으로도 불리게 됐다.

안 대표는 환자의 이름을 법에 붙이는 데도 이유가 있다고 했다. “환자들은 자신의 아픈 경험을 공익적으로 사용해 달라고 환자단체연합회에 기부했습니다. 실명과 얼굴도 공개합니다. 자신과 같은 일을 다른 사람이 겪지 않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런 공익적 활동을 기억하기 위해 환자의 이름을 법안에 넣기도 했습니다.”

“돈 없어 신약 기다리다 세상을 떠나는 환자가 있어서는 안 된다”

환자샤우팅카페에서 나온 문제는 의료사고에 국한되지 않는다. 생명과 직결된 신약의 건강보험 적용을 앞당겨 달라는 요구가 있었고, 폐암 환자의 퇴원 약제비를 실손보험에서 제대로 보장하지 않는 관행을 개선해 달라는 목소리도 나왔다.

장애인이나 기초생활수급자라는 이유로 진료를 거부당한 사례도 있었다. 이런 문제 제기는 의료인뿐 아니라 의료기관 개설자도 정당한 이유 없이 진료를 거부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 개정 운동으로 이어졌다.

암 등 중증질환자에게 적용되는 건강보험 산정특례 제도의 문제점도 환자의 목소리를 통해 드러났다. 첫 번째 암에 이어 두 번째, 세 번째 암이 발생했을 때도 필요한 기간 동안 산정특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였다.

“환자샤우팅카페에서 환자가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를 이야기했을 뿐인데 그것이 환자단체연합회와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고 결국 법과 제도를 바꿨습니다. 이번 책에는 그런 사례 9개를 중심으로 담았습니다.”

“공무원들이 환자 앞에서 직접 들어야 합니다”

안 대표에게는 아쉬움도 있다. 지금까지 열린 26차례 환자샤우팅카페 가운데 공무원이 참석한 것은 한 차례뿐이었다고 한다. “결국 많은 문제를 보건복지부가 해결해야 하는데 공무원들이 잘 오지 않습니다.”

그는 ‘환자샤우팅카페’라는 이름 자체가 공무원들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짐작했다. 울분에 찬 환자들이 격하게 항의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환자나 유족 앞에서 정부 입장을 설명하거나 “안 된다”고 답하는 것도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현장은 다르다고 강조했다. “환자들이 와서 분통만 터뜨리는 자리가 아닙니다. ‘우리 아들 같은 일이, 우리 딸 같은 일이 다시 생기지 않게 해달라’고 재발방지 대책과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자리입니다.”

국회의 정책토론회나 정부 공청회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환자들은 전문가가 아니니까 전문가처럼 말하지 않을 뿐입니다. 가족이나 친구, 이웃에게 이야기하듯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합니다. 요구하는 내용 자체는 국회 토론회나 정부 공청회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국회의원뿐 아니라 보건복지부 담당 과장과 국장들도 환자샤우팅카페에 직접 와야 한다고 했다. “정책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환자의 경험과 목소리를 직접 들어야 합니다.”

“법을 만든 것은 한 번의 외침만이 아니었다”

책을 집필하면서 안 대표 자신도 새삼 발견한 것이 있었다. 환자의 용기 있는 ‘샤우팅’과 그것을 가능하게 한 ‘환자샤우팅카페’라는 플랫폼도 중요하지만, 그 목소리가 사라지지 않도록 오랫동안 붙잡고 법과 제도 개선으로 연결한 환자단체와 활동가의 역할이었다.

“처음 책을 쓸 때는 저도 몰랐습니다. 책을 다 쓰고 보니 환자샤우팅카페라는 플랫폼만 중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환자단체 활동가가 그 문제를 놓치지 않고 계속 대응하고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에 법과 제도가 만들어질 수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해온 일의 의미도 책을 쓰며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내가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구나’라는 것을 책을 쓰면서 새삼 깨달았습니다. 동시에 환자단체와 환자단체 활동가가 더 성장해야 한다는 것도 느꼈습니다.”

200일 이상을 사무실에서 보내며 그가 기록하고 싶었던 것은 아홉 사람의 ‘승리담’만은 아니었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가 용기를 내 입을 열고, 시민들이 공감하고, 전문가가 해결책을 찾고, 기자들이 기사를 쓰고, 환자단체연합회가 끈질기게 문제를 제기하고, 언론과 국회가 움직이면서 마침내 법과 제도의 한 줄이 바뀌는 과정이었다.

“환자의 경험과 목소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안 대표가 1년 10개월 동안 책을 쓰며 독자들에게 가장 전하고 싶었던 말이다.

안기종 대표의 신간 『환자샤우팅카페: 대한민국을 바꾸는 환자들의 목소리』(엔자임헬스)는 2012년부터 이어진 환자샤우팅카페의 14년을 기록했다. 환자와 가족 약 60명이 26차례 무대에 올라 직접 증언한 가운데 법·제도의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낸 대표 사례 9건을 중심으로 사건의 경과와 해결 과정, 제도 개선까지 담았다. 모두 5장, 276쪽으로 구성됐으며 9월 1일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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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

아시아엔 기자, 전 한국기자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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