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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억류 희생자 유족 도쿄서 추모사…”전쟁은 끝났지만 평화는 오지 않았다”

문용식씨가 23일 도쿄 전몰자묘원에서 추모사를 하고 있다. 가운데는 아리미스 겐 시베리아억류자지원 및 기록센터 대표. 일본 신문사 방송사 기자 20여명이 취재에 나섰다. <사진 문희찬>

시베리아 억류 희생자 유족인 문용식씨는 8월 23일 일본 도쿄 지도리가후치 전몰자묘원에서 열린 추모행사에 한국 억류자 후손 대표로 참석해 “전쟁은 끝났지만 고인들에게 평화는 찾아오지 않았다”며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한국인 억류 피해자들의 아픔과 명예회복의 과제를 되새겼다.

문씨는 이날 3분 추모사에서 “고국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았던 1945년, 전쟁은 끝났지만 고인들에게 평화는 찾아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수많은 억류자가 낯선 땅에서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 강제노동 속에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고, 끝내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억류자도 적지 않았다”며 “가족을 그리워하며 잠든 영혼들을 생각하면 슬픔을 금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시절, 전쟁이 고인들의 삶과 미래를 송두리째 앗아간 비극만큼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며 “억류 생활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애쓴 분들과 끝내 고국의 하늘을 보지 못한 모든 분의 영령 앞에 깊은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문씨는 일본인 억류 피해자들과 함께 한국인 억류 피해자들의 존재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에도 억류자들이 있었다”며 “일본의 동료들은 생전에 한국 동료들을 응원하고 여러 도움을 주었다. 후손의 한 사람으로 감사 인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본과 한국의 억류 피해자들이 전후 겪은 현실에는 차이가 있었다고 짚었다.

문씨는 “일본은 고인들을 기억하고 이곳 묘원에 모셨지만, 한국 동료들은 1949년 2월 돌아온 뒤 반공국가가 된 고국에서 소련 체류 경험이 있다는 이유로 요시찰 인물로 관리되며 1990년 한·소 수교 이전까지 사회적 불이익을 감수하며 살아야 했다”고 말했다. 전쟁과 억류에서 살아 돌아온 뒤에도 또 다른 고통이 이어졌다는 것이다.

문씨는 한국인 억류 피해자들의 모임이 결국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사라진 과정도 전했다. 그는 “지치고 병든 80대 후반의 노인들은 억류자 모임을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어 2012년 2월 모임을 끝냈다”며 “후손들에게 ‘우리의 억울함을 풀어 달라’는 말씀을 남기고 모두 생을 마감했다”고 했다.

문씨는 이날 추모의 의미를 단순히 과거를 돌아보는 데 두지 않았다. 그는 “오늘의 추모는 과거를 미화하거나 잊기 위한 것이 아니다”며 “전쟁이 남긴 상처를 기억하고 인간의 존엄과 평화의 소중함을 다시 새기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역사의 아픔을 있는 그대로 마주할 때 우리는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고, 미래 세대에게 평화의 가치를 온전히 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문씨는 “부디 모든 고통과 슬픔을 내려놓으시고 영원한 안식 속에서 잠드시기를 바라며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기원한다”며 묘원 방문 기회를 마련한 관계자들과 행사 참석자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이번 추모사는 시베리아 억류 희생자들을 기리는 동시에 한국인 억류 피해자들이 귀환 뒤에도 오랫동안 겪어야 했던 또 다른 상처를 환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마지막 생존자들이 후손들에게 남긴 “우리의 억울함을 풀어 달라”는 말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과제를 남긴다. 피해자 명단과 억류 기록의 확인, 한국인 억류 피해의 역사적 성격 규명, 귀환 뒤 겪은 감시와 사회적 불이익에 대한 조사, 국가 차원의 기억과 명예회복 등이 그것이다.

문용식씨의 추모사는 전쟁이 끝난 날과 개인에게 평화가 찾아온 날이 반드시 같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다시 일깨운다. 1945년 이후에도 계속된 억류와 강제노동, 귀환 뒤 이어진 고통까지 함께 기록하고 기억할 때 비로소 이들의 전쟁도 역사 속에서 온전히 끝날 수 있다.

문용식씨가 추모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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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

아시아엔 기자, 전 한국기자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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