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사자와 유니콘 사이에서…권력은 누구의 것인가

멜버른의 오래된 건물 위에 있는 사자와 유니콘

멜버른의 오래된 건물 위에서 사자와 유니콘을 보았다. 두 동물은 왕실 문장을 사이에 두고 마주 서 있었다. 처음에는 영국풍의 오래된 장식쯤으로 생각했다. 가까이 다가가니 문장 아래 프랑스어 한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Dieu et mon droit. ‘하느님과 나의 권리.’

멜버른 Government House 옛 정문에 남아 있는 영국 왕실 문장이다. 사자는 잉글랜드를, 유니콘은 스코틀랜드를 상징한다. 문장 주위에는 가터 훈장의 표어 Honi soit qui mal y pense가 새겨져 있고, 아래에는 군주의 표어 Dieu et mon droit가 자리한다. 지구 반대편 호주에서 오래전 영국 왕의 목소리를 만난 셈이다.

그런데 한 가지가 궁금해졌다. 왕은 왜 자신의 권리를 하느님과 함께 말했을까. Dieu et mon droit는 중세 왕권의 전통 속에서 이어져온 표어다. 왕의 권위가 단순히 인간의 동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높은 권위에 근거한다는 생각과 맞닿아 있다. 하지만 영국의 역사는 그 자리에서 멈추지 않았다.

1628년 권리청원, 내전과 찰스 1세의 처형, 1688년 명예혁명과 이듬해 권리장전을 거치면서 왕도 법과 의회의 제약을 받아야 한다는 원칙이 굳어졌다. 왕은 사라지지 않았다. 대신 왕의 자리가 달라졌다.

오늘날 영국의 국왕은 국가원수지만 실제 정치를 이끄는 것은 의회에 책임지는 정부다. 흔히 말하듯 왕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 그런데 멜버른의 돌 위에는 여전히 옛 문장이 남아 있다. Dieu et mon droit.

제도가 바뀌었다고 해서 역사가 남긴 문장까지 모두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그 문장을 바라보다 문득 로마가 떠올랐다. 로마에는 전혀 다른 네 글자가 있었다. SPQR. Senatus Populusque Romanus. ‘로마의 원로원과 시민.’

SPQR은 로마 국가를 나타내던 상징적 표현이다. 물론 여기서 Populus를 오늘날의 국민 개념과 그대로 겹쳐놓을 수는 없다. 로마에는 노예가 있었고 여성과 외국인은 정치적 시민권에서 배제됐다. 그럼에도 그 네 글자는 아주 오래된 질문 하나를 던진다.

국가는 누구의 것인가. 한쪽에는 왕의 권리를 내세운 문장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원로원과 시민을 내세운 문장이 있다. 서로 다른 시대가 국가와 권력의 주체를 서로 다르게 말한 셈이다.

근대에 들어서면서 ‘국민’과 ‘인민’은 국가의 정당성을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언어가 됐다. 인민의 공화국. 인민의 국가. 인민이 역사의 주인이라는 선언. 말만 놓고 보면 반대하기 어렵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그 인민을 누가 대표하는가. 인민의 이름으로 권력을 행사할 때 그 권력은 실제로 인민에게 돌아가는가. 아니면 인민을 대표한다고 주장하는 소수에게 집중되는가.

조지 오웰은 <동물농장>에서 이 질문을 잔인할 만큼 간결하게 보여줬다. 인간 주인을 몰아낸 동물들이 처음 세운 원칙은 단순했다. “All animals are equal.”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돼지들이 권력을 장악한 뒤 그 문장은 바뀐다. “All animals are equal, but some animals are more equal than others.”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

‘더 평등하다’는 말은 그 자체로 모순이다. 오웰은 바로 그 모순으로 권력의 언어를 찔렀다. 평등을 외치면서 새로운 특권층이 생겨나는 순간, 평등이라는 말조차 권력을 가리는 장막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소설 마지막 장면에서 동물들은 창문 너머 인간과 돼지를 바라본다. 어느 쪽이 인간이고 어느 쪽이 돼지인지 구별하기 어려워진다. 주인은 바뀌었지만 권력의 얼굴은 닮아버렸다.

다시 멜버른의 사자와 유니콘 앞에 섰다. Dieu et mon droit. 하느님과 나의 권리. 왕권을 정당화하던 시대를 지나 시민의 권리와 국민주권을 말하는 시대가 왔다. 혁명은 인민의 이름을 불러냈고 민주주의는 국민을 주권자로 선언했다. 하지만 권력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이름보다 더 오래 살아남는 것이 있다.

권력은 언제나 자신을 정당화할 말을 찾는다. 신의 이름을 빌릴 때도 있고, 왕의 권리를 말할 때도 있다. 시민을 앞세우기도 하고 국민과 인민을 내세우기도 한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그 이름이 얼마나 그럴듯한가가 아니다. 그 이름 뒤에서 실제로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멜버른에서 나는 낡은 왕실 문장 하나를 보았을 뿐이다. 그런데 그 문장은 나를 로마의 SPQR로 데려갔고, 영국의 왕권과 의회를 지나 오웰의 농장까지 끌고 갔다. 여행은 가끔 이런 식으로 길을 튼다. 건물 위 몇 글자를 읽었는데, 그 뒤에서 수백 년의 정치사가 걸어 나온다.

나는 마지막으로 사자와 유니콘 사이를 바라봤다. Dieu et mon droit. 그리고 생각했다. 권력의 이름이 바뀌었다고 해서, 권력의 본질까지 바뀐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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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

이대 해부학교실 초빙교수, 인하의대 명예교수,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세계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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