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서원인가, 독단인가?

민수기 30장
“그러나 그의 남편이 그것을 듣는 날에 허락하지 아니하면 그 서원과 결심하려고 경솔하게 입술로 말한 서약은 무효가 될 것이니 여호와께서 그 여자를 사하시리라”(민 30:8)
서원은 하나님과 약속하는 것입니다. 목사나 선교사가 되겠다고 서원하는 경우도 있고, 어떤 상황에서는 헌금과 같은 물질적인 것을 드리겠다고 서원을 하기도 합니다. 서원의 특징은 하나님과 개인적인 관계 속에서 약속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약속이 은밀하고 비밀스럽습니다. 나와 하나님만 아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과거 젊은 시절 혼자 조용히 서원했던 것이 기억나서 뒤늦은 나이에 목회자나 선교사가 되시는 분들을 종종 만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서원이 하나님과 일대일의 관계 속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민수기 30장은 서원이 단순히 개인과 하나님 사이의 약속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제 3자가 그 약속 사이에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서원을 한 사람과 책임적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그 서원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하나님은 충분히 헤아리고 계셨습니다.
민수기 30장에 의하면 내가 하나님 앞에서 서원했다고 해서 내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인간관계가 배제된 하나님과의 관계를 하나님은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사 입다의 서원은 독단적 서원의 어두운 면을 잘 보여 주는 이야기입니다. 경솔한 서원으로 인해 그는 자신의 딸을 죽음으로 내몰고 말았습니다.
세상 조직을 운영하는 리더들만 하더라도 구성원들 간의 관계를 세심하게 고려할 줄 압니다. 하물며 하나님 아버지는 더욱 그렇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과의 관계 때문에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망가지는 것을 하나님께서 정말 원하실까요?
하나님의 뜻은 공동체적입니다. 성경은 개인 이전에 공동체에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삼위일체라는 개념 자체가 하나님은 공동체적으로 존재하신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관계가 배제된, 개인적이기만 한 신앙을 하나님이 기뻐하실 리가 없습니다. 더불어 사는 내 곁의 사람이 고려되지 않은 하나님의 뜻이란 나의 독선과 고집을 종교적 언어로 포장한 것일 수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과 하는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그 약속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과 충분히 상의하는 수고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수고야말로 하나님의 백성답게 서원을 이행하는 태도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