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외국인노동자 규제 고삐 죄는 속내

사우디가 자국인 실업률을 떨어뜨리기 위해 외국인노동자 규제를 대폭 강화했다. 사진은 사우디에 취업해 출국하는 중국 깐수성 출신 노동자들 <사진=신화사>

사우디 아라비아는 중동지역에서 한국 건설기업 활동이 가장 활발한 곳 중 하나다. 낮은 에너지 가격과 각종 외국인 투자 유인책으로 제조업 진출도 매력적인 나라다. 하지만 최근 자국인 우선고용정책과 외국인노동자 규제 강화로 사업환경 악화 우려를 낳고 있다.

사우디 정부는 1994년 자국인 우선고용정책(Saudization)을 처음 도입했으나 잘 이행되지 않았다. 이 제도는 노동법 26조에 따라 기업 규모와 상관없이 총 인력의 75% 이상을 사우디인으로 고용하는 것을 의무화한 것이다. 그러나 △민간기업의 저임금 고효율 외국인 노동자 선호 △사우디인의 공공부문 취업 선호 △노동 당국의 허술한 감독체계 등으로 인해 의무고용비율을 유지하지 않는 기업들이 점차 늘어났다. 그 결과 2011년 사우디인 실업률은 12.4%에 달했다.

사우디인 실업인구의 92.5%가 19~34세 사이의 청년층이어서 이에 따른 사회불안도 높아졌다.

사우디 정부는 ‘아랍의 봄’ 민주화 바람이 일자 청년실업 문제가 정권안정을 위협하고 정정불안을 부추길 것으로 판단하고 적극적인 해결책을 모색했다. 이에 따라 자국인 우선고용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고 감독기능을 강화한 니타카트(Nitaqat) 제도를 2011년 6월에 새롭게 선보였다. 니타카트는 아랍어로 ‘범주, 범위’라는 뜻으로 기업 규모·직종별로 의무적으로 고용해야 할 사우디인 비율을 다르게 지정하였다. 기업규모가 클수록, 사우디인이 종사하기에 적합한 서비스직일수록 높은 비율의 사우디인 의무고용비율을 적용하고 이행 정도에 따라 제재와 인센티브를 부여하도록 했다.

니타카트 제도는 처음에 10인 이상 기업에만 적용되었으나 도입 이후 60만 개 일자리가 사우디인에게 돌아가는 등 실효를 거두자 올 3월부터 적용대상이 모든 기업으로 확대됐다. 사우디 노동부는 4월부터 3개월 유예기간을 주고 불법노동자 합법화와 출국을 유도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들을 대체할 인력이 부족한 실정이다. 또 사우디에 많은 노동력을 파견하고 있는 예멘, 인도 케랄라 주정부 등이 우려를 표명하자 압둘라 사우디 국왕은 유예기간을 11월4일로 추가 연장했다.

성장보다 불안요인 제거가 우선

이와 함께 사우디 당국은 외국인 노동자 체류기준을 강화하고, 불법 외국인 노동자 고용·경제활동 조사를 위해 1000여 명의 감시관을 고용하는 등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규제 고삐를 죄고 있다. 민간기업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사우디 정부는 앞으로 자국민의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외국인 노동자 제한 조처를 더욱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아델 파키흐(Adel Fakieh) 노동부 장관은 “11월 이후 외국인 노동자 합법화에 대한 유예기간 연장은 더 이상 없을 것이며, 유예기간 종료 후 사업장에서 불법 외국인 노동자가 적발될 경우 노동자와 고용인 모두 처벌받게 된다”고 강조했다.

사우디 정부는 이같은 강공책이 단기적으로 혼란을 야기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사우디 경제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리라 판단하고 있다. 또한 경제성장보다 정정불안 요인 제거가 사우디 정부의 우선순위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같은 맥락의 고용·노동 정책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 리야드 시내의 한 주유소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노동자 <사진=AP>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규제 강화로 사우디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 기업들은 그동안 현지 인력업체를 통해 외국인 노동자를 많이 고용했으며 이들이 불법 외국인 노동자를 알선하는 사례도 많았다. 최근 들어 사우디 정부 단속이 강화되면서 한국 건설·제조 기업에서 일해온 불법 외국인 노동자들의 이탈이 일어나는 등 사업 수행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사우디 정부는 앞으로 지정된 5~7개 인력회사에서만 노동자를 수급할 수 있게 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인력난 장기화가 예상된다. 또한 공기 지연과 외국인 노동자 임금상승 등으로 인해 외국기업의 수익성 악화가 우려되고 있다.

사우디 진출 외국기업들은 현상황에서 니타카트 기준을 충족시킬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는 것이 유일한 대응방안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신뢰할 만한 인력회사 확보가 급선무다. 장기적으로는 사우디의 우수한 인력을 사전에 확보할 수 있도록 캠퍼스 리쿠르팅, 직업훈련 등을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최근 증가하고 있는 고학력 여성인력의 행정직 고용도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

새로 사우디 진출을 계획하고 있는 기업은 새 노동정책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사우디 진출 전에 사우디인과 고용계약을 체결해 의무고용 비율을 충족해야만 투자 승인이 나기 때문에 현지 인력회사와의 사전협력이 필수적이다. 고용된 사우디인에 대한 직업훈련 시행도 의무화돼 좀더 치밀한 준비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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