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근식의 스산별곡] ‘어머니’…”나도 엄마처럼 늙어가야겠습니다”

번개가 하늘을 가르니
새벽보다 먼저 세상이 밝아옵니다

그 틈 사이로 빗소리 쏟아내립니다
이어지는 우람한 천둥소리에 빗소리가 잦아들고
비로소 물기 먹은 새벽이 밝아옵니다

모든 기억이 엉켜버린 엄마의 목숨
하루 더 이어지려나 하루 더 짧아지려나

어제처럼 쌩쌩히 일어나 강아지와 하루종일
의미 없는 말씀 나누시려나

하루 더 이어진들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이며
하루 더 짧아진들 무슨 애석함이 있으리오

번개빛 천둥소리에 엄마 주변을 함께 지킨 강아지가
내 품에 다가와 낑낑거립니다

외롭고 무서웠을 시간…

며칠 전에는 엄마의 혼란한 말씀과 정신에 화가
났었습니다

며칠 후부터는 같이 상대를 해드립니다

“지난 밤엔 애들이 방안 가득 들어와서 떠드느라
잠을 못 잤어”

“그려유? 문에다가 애들 출입금지 써붙일테니
엄마가 써봐유”

“싫다, 니 큰형 군대갔을 때 편지 보냈더니 맞춤법
틀렸다고 낄낄 대기에 그때부터 글씨 안 쓴다”

어제처럼 주무시던 침구를 말끔히 개어놓고 다시
어제처럼 엉뚱한 기억 속에 마늘까기에 몰두하시려나

기침 소리를 확인하고 다시 내 방으로 올라가려니
강아지가 나를 따라옵니다

이 녀석은 평소에 내가 하는 좀비 놀이에 절대 곁에
오지 않던 녀석인데도요

문을 열어주어도 밖을 나가지 않고
자꾸만 나를 따라옵니다

밖에서 기르던 Outdoor Dog으로
더위를 피할 겸 엄마 상대할 겸 잠시 집안으로
들여놓았는데 …

오늘도 시간을 멈춰놓고 나도 엄마처럼
늙어가야겠습니다

그렇게 예측할 수 없는 엄마의 시간은 거꾸로 가고
이렇게 내 시간은 오늘로 멈추었습니다

곁을 지키다니요
그저 겨우 함께 할 따름입니다

훌쩍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