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25일] 한국전쟁 터진 날
2010년 ‘한일병합 무효’ 입증 문서 공개
2010년 6월25일 한국의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은 ‘대한제국’ 특별전(6월29일~8월29일)의 준비 과정에서 새롭게 확인한 한·일 병합 전후 시기의 주요 공문서들을 공개했다.
1910년 8월29일 한·일 강제병합 당시 일제 통감부가 대한제국 내각 회의를 거치지 않고 병합조약안 처리를 강행했으며, 조약 관련 주요 문서들도 날조한 사실을 입증하는 문서였다.연구원은 병합조약 4대 문서로 꼽히는 국문·일문 조인문과 총리대신 이완용을 협정 전권위원으로 임명하는 순종 황제의 칙유(임금이 이른 말을 적은 포고문), 조약 체결에 대한 양국 황제의 조칙을 동시 발표하기로 한 각서의 필체를 분석한 결과 모두 통감부 쪽 인사가 같은 글씨체로 썼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날 공개된 ‘병합조약 및 양국 황제조칙 공포에 관한 각서’에는 판심(책장 가운데 접힌 부분)의 서식 부분에 ‘통감부’ 글자가 인쇄되어 이 문서들을 통감부 인사가 작성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또 하나 주목되는 것은 1910년 8월29일 이완용이 통감 데라우치에게 순종 황제의 통치권 양여에 관한 칙유안을 빨리 승인해 달라고 요청한 ‘지급’(至急: 매우 급한 용무라는 뜻)조회 문서와 이를 당일 즉시 승인한 통감부 문서인 ‘기밀통발’이다. 이는 순종이 끝까지 반대해 조인 시한을 앞두고 다급하게 자기들끼리 절차를 처리하는 공문서를 주고받았음을 입증하고 있다.
2010년 중국 현대미술 거장 우관중 타계
2010년 6월25일 11시57분 중국 현대미술의 거장 우관중(吳冠中)이 세상을 떠났다. 향년 91세. 우관중은 노환으로 입원해 있던 베이징의 병원에서 세상과의 인연을 끝냈다.
중국 현대미술의 가장 중요한 작가로 꼽히는 우관중은 동서양의 예술을 결합시켜 “유화의 중국화” “중국화의 현대화”를 이뤘다는 평가를 받으며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중국 장쑤성 이싱에서 태어나 1942년 항저우 국립예술학교를 졸업한 뒤 프랑스에 유학, 1947년 파리 고등미술학교에서 학위를 받았다. 공산당이 정권을 잡은 이듬해인 1950년 그는 조국으로 돌아와 칭화대, 중앙미술학원의 교수로서 중국 전통 화법에 서양 미술의 추상화 기법을 조합해 중국 현대미술을 개척했다.
문화대혁명 당시에는 순수미술을 주창했다는 이유로 노동수용소로 보내져 분뇨 지게를 이젤 삼아 그림을 그렸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문화대혁명이 끝난 뒤 59살에 첫 개인 전시회를 열었고, 1992년에는 생존 중국 예술가중 처음으로 대영박물관에서 그의 작품 전시회가 열리기도 했다. <창장싼샤> <루쉰의 고향> 등 유화 작품과 <봄눈> <장성> 등 중국 전통화 등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2009년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 사망
2009년 6월25일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Jackson, Michael)이 51세 나이로 사망했다.
마이클 잭슨은 1958년 8월29일 미국 인디애나주 게리에서 9남매 중 7번째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클라리넷 연주가, 아버지는 기타리스트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어릴 때부터 음악적 재능이 남달랐던 마이클 잭슨은 5살 때 아버지에게 이끌려 ‘잭슨 파이브’로 데뷔한다. 리드 보컬을 맡은 그는 미성의 고음 처리로 눈길을 끌었고 잭슨 파이브는 당시 흑인 그룹 최초로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랐다.
마이클 잭슨의 음악인생은 최고 뮤지션이자 실력파 작곡가인 퀸시 존스를 만나면서 도약대에 선다. 79년 발표한 첫 솔로앨범 ‘오프 더 월’에서 그는 재즈, 펑크, R&B, 댄스 등 다양한 장르의 화려한 흑인음악을 선보였다. 폴 매카트니, 스티비 원더 등이 게스트로 참여한 이 앨범은 전 세계적으로 1500만장 넘게 팔리며 79년 당시 가장 많이 판매된 앨범으로 기록됐다.
이후 ‘스릴러’(82년)가 전 세계적으로 1억400만장 판매되는 등 지금까지 팔린 그의 앨범은 모두 7억5000만장이 넘는다. 특히 ‘스릴러’에 수록된 곡 중에서 ‘비트 잇’과 함께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빌리 진’은 문워크(Moon walk)라 불리는 독특한 안무로 전 세계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성형중독, 1993년 아동 성추행 고소사건 등으로 힘겨워했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 때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2010년 영국 런던 등에서 콘서트를 열고 화려한 부활을 선포하려 했지만 한해 앞서 세상을 떴다.
2007년 캄보디아 여객기 추락
2007년 6월25일 오전 10시께(현지시각) 22명의 승객을 태운 캄보디아 국내선 U4-241편 여객기가 캄보디아 남쪽 해안도시 캄포트 인근 밀림으로 추락했다. 시엠립 공항 관계자는 이 항공기에 한국인 관광객 13명과 체코인 3명, 러시아인 조종사, 캄보디아인 승무원 5명 등이 타고 있었다고 밝혔다. 공항 관계자들은 사고기가 매우 낡은데다 이날 사고 현장에 많은 비가 내린 점 등으로 미뤄 기체 결함과 기상악화를 사고 원인으로 추정했다.
1996년 사우디 다란 부근 미군공군기지 폭탄테러
1996년 6월 25일 밤10시30분쯤 사우디아라비아 동부 항구도시 다란 부근 미공군기지 앞 도로에서 차량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이 폭발사건으로 도로와 접한 기지 내 8층 건물이 부서지면서 19명이 숨지고 중상자 73명 등 270여명이 부상했다. 사망자 19명은 전원 미군이었다.
파괴된 건물은 사우디아라비아 국방부 소유로 미군 가족 아파트와 미공군 4404비행단 사령부로 사용돼 왔다. 폭발현장은 깊이 11m 폭 28m의 구덩이가 파여졌으며 사건 현장에서 5km 떨어진 주택가 유리창들도 모두 박살나 폭발물의 위력을 실감케 했다. 클린턴 당시 미대통령은 폭발사건 직후 이번 사고를 테러공격으로 규정, 응징 의지를 표명했다.
1984년 프랑스 철학자 미셀푸코 사망
1984년 6월25일 프랑스의 철학자 미셀 푸코가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으로 사망했다. 포스트구조주의의 대표자로 파리대학교 반센 분교 철학교수를 거쳐 1970년부터 콜레주 드 프랑스 대학 교수를 지냈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푸코는 정신의학에 흥미를 갖고 그 이론을 연구했다. 정신의학 역사 연구를 통해 ‘광기와 비이성-고전시대에서의 광기의 역사’와 ‘임상의학의 탄생’ 등을 저작했다.
‘언어와 사물’, ‘앎의 고고학’ 등의 개념을 통해 무의식적 심적 구조와 사회·언어구조가 일체를 결정하며 “주체로서의 인간이나 자아라는 관념은 허망하다”는 반(反)인간주의적 사상을 전개했다. 그것이 ‘구조주의’란 용어의 핵심이 됐다.
1950년 한국 전쟁 발발
1950년 6월25일 새벽 4시 북한군이 38선 전역에 걸쳐 국군의 진지에 맹렬한 포화를 퍼부으며 기습공격을 시작했다. 6.25전쟁이었다. 북한의 야크(YAK)전투기는 김포비행장을 폭격하고 서울시가지에 기총소사를 가했다. 국군은 비상경계령이 해제돼 병력의 3분의1 이상이 외출한 상태였다.
서울은 곧바로 북한군에 함락됐다.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은 UN안전보장이사회의 긴급소집, UN안보리는 유엔군 파병을 결정하고 16개 나라, 30만여 명으로 구성된 유엔군이 한반도에 투입된다. 같은 해 9월 15일 유엔군 총사령관 맥아더 장군은 인천상륙작전을 전개, 전세를 반전시킨다.
6.25전쟁은 발발 2년 뒤인 1953년 7월27일 북한군과 유엔군 사이에 휴전협정이 조인됨으로써 막을 내렸다.
1876년 미 리틀 빅혼의 결투
1876년 6월25일 인디언 전사 리틀 빅혼은 미국 중북부 사우스다코타 주의 블랙 힐스 산자락에서 남북전쟁 불패 신화의 주인공 조지 암스트롱 커스터가 이끄는 제7 기병대를 전멸시켰다.
당시 미국 정부는 수우족 보호구역에서 금광이 발견되자 인디언을 또다시 쫓아내기 위해 군대를 동원했다. 남북전쟁 영웅인 조지 A 커스터 중령이 지휘하는 제7기병대가 급파돼 인디언 토벌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위대한 추장 앉은 황소(Sitting Bull`1831~1890)가 이끄는 수우족과 샤이엔족 연합군은 침략을 좌시하지 않았다. 1000여명의 전사 상당수가 활로 싸워 기병대를 협곡에 몰아넣어 전멸시켰다. 이날 커스터 중령 등 미군 305명이 죽었다.
앉은 황소는 후속 전투에서도 여러 차례 이겼으나 궁극적인 승리는 불가능했다. 굶주림과 미군의 공세에 쫓겨 캐나다를 떠돌다가 1881년 항복했다. 9년 후 집에서 자신을 체포하려던 인디언 경찰의 총에 죽었다. 전투에서는 용맹했으며 아버지를 죽인 원수의 아내와 자식을 살려주고, 비무장한 적에게는 무기를 건네준 후 다시 싸움을 벌인 ‘남자다운’ 전사였다. 수우족은 그를 ‘인디언의 자존심을 지킨 전사’로 자랑스러워한다.
이상현 기자 ?coup4u@theasian.as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