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장관이 링컨 대통령에게 배울 것은?
요즘 유명 정치인들이 SNS에 글을 올렸다가 구설수에 휘말려 곤욕을 치르는 것을 자주 본다. 대부분 남을 비방하고 비판하기 때문에 화를 자초하는 것이다.
그렇다. 죽을 때까지 다른 사람으로부터 비난을 받고 싶다면, 얼마든지 남을 비판해도 좋다. 그리고 비난이나 비판의 횟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또한 정확하고 타당할수록 그 효과는 높아진다. 인간을 다루는 데 있어서 상대방이 논리적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커다란 오산이다.
어디까지나 상대방은 감정의 동물일 뿐이며 편견과 자존심, 허영심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비난 비방하는 것은 위험한 불꽂놀이를 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그 불꽂놀이는 자존심이라는 화약고의 폭발을 유발하기 쉽다.
거기다가 한번 폭발이 일어나면 사람의 목숨까지도 앗아가는 일이 발생한다.
소설 <테스>를 쓴 영국의 소설가이자 시인, 극작가인 영문학의 귀재 토마스 하디(1840~1928)가 영원토록 소설을 쓰지 않게 된 이유도 매서운 비평 때문이었다. 그가 영국의 천재 시인 토마스 채터톤을 자살로 몰아넣은 것도 역시 날카로운 비평 때문이었다.
남을 비난하거나 비평하는 것, 그리고 잔소리를 하는 것은 어떤 바보라도 할 수 있다. 그리고 바보일수록 그렇게 하고 싶어한다. 반면 이해와 관용은 어디까지나 뛰어난 성품과 극기심을 갖춘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미덕이다.
영국의 위대한 사상가 카알라일은 이렇게 말했다.
“대인은 소인을 다루는 솜씨로써 그 위대함을 보여준다.”
미국의 역대급 대통령이자 세계적 위인으로 추앙하는 에이브러햄 링컨은 애초부터 두루뭉술하고 원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요즘 SNS에서 그럴듯한 논리를 펴며 특정 정파나 인물을 마구 욕하는 그런 사람처럼 링컨도 그런 부류에 지나지 않았다.
빼어난 말솜씨로 다른 사람 뒤통수에 이러쿵저러쿵, 화려한 글 솜씨로 특정인 야유 뺨치는 시를 써서 길가 게시판에 걸어두곤 했다. 그런 비판과 비평이 겹치자 드디어 자기도 당하고 말았다. 허세 잘 부리고 시비 걸기 좋아하는 제임스 쉴즈라는 아일랜드 출신 정치인을 조롱하는 글을 썼다가 당사자의 화를 폭발시켰던 것이다.
<스프링필드> 지에 실린 링컨의 글을 보고 사람들은 온통 쉴즈를 비웃었다. 링컨이라는 걸 한눈에 안 그는 자존심과 불같은 성격을 못 이겨 곧장 말을 타고 달려가 결투를 신청했다. 속으로 몹시 겁이 난 링컨은 싸우고 싶지 않았지만 자기 또한 ‘옳은 말’했다는 것을 굽히지 않으려면 대결에 응해야 했다.
두 사람은 미시시피 강변 모래사장에서 만났다. 서로 총을 뽑으려는 찰나 쌍방 입회인의 적극적인 중재로 결국 결투는 중지됐다. 목숨을 잃을 뻔한 끔찍한 사건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링컨은 사람을 다루는 방법에 대해 소중한 교훈을 얻었다. 그리고 다시는 남을 조롱하는 말글을 삼갔다.
나중에 링컨은 이런 말을 자주 했다. “남의 비판을 받고 싶지 않으려면, 남을 비판하지 말라.” 남북전쟁 중 자기 아내와 주변인들이 남부 사람들에 대해 지나친 적대감을 보이자 “그 사람들 비난할 것 없어요. 우리도 그들 처지였다면 역시 그렇게 말했을지 몰라요!”
앞에 아닐 ‘비(非)’ 자가 붙는 말은 일단 부정적으로 느껴진다. 가짜뉴스, 야유하기, 조롱, 따지기, 혹평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비난(非難), 비방(誹謗), 비평(批評), 비판(批判) 같은 말을 되도록 삼가는 좋다.
그 뜻을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비난은 “남의 잘못이나 결점을 책잡아서 나쁘게 말함”이다.
둘째, 비평은 “사물의 옳고 그름, 미(美)와 추(醜) 따위를 분석하는 것”이다.
셋째, 비판은 “사물의 옳고 그름을 가리어 판단하는 것”이며 넷째, 비방은 “남을 비웃고 헐뜯음”이란 뜻이 있다.
이런 네 가지 부정적인 말들은 상대를 깨우치게 하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그 효과는 나빠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남의 말 함부로 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요즘 카톡, 유튜브 같은 SNS에서 특정인을 향한 조롱과 비난, 그리고 단지 의혹만으로 남을 공격해대는 것을 보면 모골이 송연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