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단상] 신평 변호사 “법무장관 초기 사퇴했으면 대통령도 됐을 것”

조국 전 법무장관. 뒤는 김오수 현 차관. <사진=연합>

[아시아엔=편집국] 신평 변호사가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조국 전 법무장관과 관련해 글을 올렸다. ‘조국단상’이란 제목의 글에서 그는 “그가 조금 자제하여 법무장관 초기에 사퇴했다면 내년 총선과 2020년 대선에서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썼다.

다음은 신평 변호사의 페북 글 전문이다.

얼마 전 인터뷰하러 온 시사저널의 박성의 기자와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가 박 기자가 불쑥 말하였다. “아니, 교수님은 조국 교수에 대하여 대단히 긍정적으로 좋게 평가하시네요.”

조 교수는 내가 봐도 잘 생겼다. 얼굴이나 체형 어디 하나에도 매력이 없는 곳이 없다. 그리고 그 음성은 얼마나 부드럽고 혼을 쏙 빼놓는가. 일찍이 한국 정치사에서 이만한 스타 정치인은 없었다. 더욱이 서울대 교수가 아닌가! 사람에 따라서는 그의 학자로서의 능력에 의문을 표하기도 하나, 적어도 젠더문제에 관한 한 나는 그를 신뢰한다. 법학계에서 그만큼 진정성을 갖고 젠더주제에 임하는 사람은 적어도 남성 교수에 관한 한 없다. 이 주제에 관한 그의 글은 진실성으로 펄펄 살아있다.

나는 그가 욕망을 조금 자제하여 초기에 법무장관 후보자를 사퇴하였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한다. 몇 달 쉰 다음 내년 총선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기는 식은 죽 먹기였다. 그리고 2022년의 대선에서는 그는 무난하게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을 것이라고 본다.

그가 법무장관 후보에서 물러나는 것이 옳다는 글을 발표한 이후, 나는 많은 비난에 직면해야 했다. 경주에 사는 심○○라는 이는 입에 거품을 물고 나를 성토했다. 나는 언론의 자유 신봉자다. 석, 박사 논문을 모두 언론의 자유와 관계된 주제로 썼고, 이에 관한 책을 내었으며, 권위 있는 학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나는 그가 언론의 정화작용에 의해 점차 맥이 빠져들 것으로 짐작했으나, 그 반대였다. 점점 더 수위를 높이더니 더럽고 비루한 용어까지 서슴없이 썼다. 내 관용이 오히려 못된 그의 버릇을 키우고 있음을 알고, 그를 페북에서 어쩔 수 없이 차단하였다.

또 한 사람이 내 마음을 슬프게 했다. 그는 나와 오랜 친구이다. 대구에서 치과를 운영하는 그는 주위의 신망이 높은 사람이다. 내 이름을 직접 호명한 것은 아니나, 조 교수의 딸 문제를 지적한 내가 위선자라고 밝혔다. 그럴까? 나는 아이들을 늦게 가져 조 교수의 딸과 내 첫 딸은 같은 시기에 대입을 치렀다. 나는 여기에 직접 개입, 아니 올인하여 수시입시에 관한 모든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였다. 커다란 상황판을 만들어 점검하기까지 했다. 그런 내 눈에도 조 장관 부부가 한 짓은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었다.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한다고 하여 어찌 위선자인가?

한 가지 짚히는 일은 따로 있다. 내가 서울에 있다가 내려가 대구지역에서 판사를 할 때 당시 우울증의 깊은 늪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스스로를 황폐화시켜갔다. 교통사고가 나서 죽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망상뿐이었다. 위안을 술에서 찾았다. 법조계는 다른 직역보다 당시 술을 많이 마시는 곳이었다. 법조계 전체를 통틀어, 주량이 1등 아니면 2등 아니겠느냐는 평을 들었다. 하룻밤에 양주 20병을 전부 폭탄주로 해서 마신 기억이 있을 정도이다. 서울에서는 작가 이문열 선생의 술동무를 많이 해드렸으나, 대구에서는 그와 자주 술을 했다. 그는 너그러운 인품에 당시 치과가 잘 되어 돈도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이런 과도한 음주에 어찌 실수가 없었으랴! 지금 생각하면, 공연히 손에 땀이 날 정도로 그 실수들이 살아난다. 그리고 다른 이들이 관련되어, 내가 무덤에까지 안고 가야 할 비밀들도 많이 있다. 어찌 됐든 그는 그 당시의 내 모습을 떠올리며, 내가 조 교수의 작은 잘못을 침소봉대하니 위선자라고 말했을까? 모를 일이다.

그런데 기적적으로 나는 그 우울증에서 생환했다. 그리고 이후 수십 년 동안 적어도 내 의사에 기해서는 룸살롱 같은 곳에 가지 않았다. 따라서 이때의 기억들은 대부분 망각의 창고 속에 버려진 채 있은 셈이다.

그러나 나를 향한 이런 거칠고 매몰찬 비난에도 불구하고, 또 조 교수의 능력에 대한 나 자신의 고평가에도 불구하고, 나는 조 교수의 살아온 행적에 대해 그렇게 호감을 갖지는 않는다. 조 교수는 ‘진보귀족’이라는 이름에 딱 어울리게 꽃길만을 걸어왔다. 노무현 정부 때의 사법개혁을 위한 그 호기를 놓쳐버린 잘못도 크다. 그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변형시킨 로스쿨을 도입하여 그 이익을 즐겼다. 그러면서 로스쿨을 마치지 않고도 법조인이 될 수 있는 작은 문을 마련해달라는 애달픈 호소를 무시했다. 그리고 한국 법학은 이 로스쿨 도입 이래 현저하게 쇠락과 붕괴의 길을 걷고 있음에도 이를 모른 체해왔다. 아니 나아가 이를 덮으려고 했다.

더욱이 그가 직접 개입하여 그리고 그를 수사에서 보호하기 위하여 사법개혁은 심하게 왜곡되었다. 검찰을 무력화시키고, 권력에 순종하는 경찰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사법개혁의 본질인양 호도되고 있다. 그는 다시 이 정부에서 사법개혁을 망치는 주된 역할을 한 것이다. 도대체 이 정부나 여당에서 사법개혁에 관해 제대로 된 식견을 가진 사람을 단 한 사람도 발견할 수 없다.

찬 겨울을 재촉하며 추적추적 내리는 늦가을 비를 바라보며 어두운 예감에 사로잡힌다. 언젠가 이 정부 하에서 이루어진, 국가의 근간인 사법체계를 자신들의 호불호에 따라 심하게 왜곡시킨 잘못이 그대로 역사의 그물을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사법개혁농단’에 관한 수사가 어느 날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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