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 새비지 칼럼] 2011년 싱가포르 ‘선거판 민심’ 왜 변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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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총선거와 8월의 싱가포르 대통령선거 결과는 1959년부터 권력을 잡고 있는 유일한 집권여당인 인민행동당(People Action Party, PAP)이 대경실색할 만한 것이었다. 싱가포르 국민들이 어렸을 때부터 인민행동당을 싱가포르의 정치, 국가공동체, 나아가 싱가포르 그 자체로 동일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올 만한 결과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지금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은 인민행동당에 어떤 악재들이 있었는지, 또는 해당 지역구 주민들이 왜 등을 돌리게 되었는지 등, “인민행동당이 어떻게 해서 5석이나 잃었는가?”에 대한 분석이 아니다. 그보다는 좀 더 넓은 맥락에서, 이 같은 선거 결과가 세계적인 도시로 발돋움한 싱가포르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2010년 싱가포르 경제지표는 아주 좋았다. 경제성장률이 14.5%였으며 2011년 1분기 경제성장률 역시 8.3%로 호경기를 유지하고 있다. 이 와중에 집권여당이 받아든 선거 성적표는 분명히 정치학적인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싱가포르 같은 세계적인 도시들이 어떻게 그들 나름의 정치체제를 만들어 가는지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대부분 도시에서는 지역적 이동과 사회적 이동이 쉽지 않다. 한 도시에 오랫동안 터를 닦고 살아온 사람이라면 지역적 기반과 함께 인맥 네트워크, 안정된 직장, 사회적 지위 등이 모두 한 지역에서 이뤄진다. 싱가포르의 경우 다른 어떤 도시보다 지역적?사회적 이동이 어려운데 그것은 싱가포르라는 나라 자체가 하나의 도시국가로서 미국이나 호주처럼 맘에 안 든다고 다른 도시로 훌훌 떠날 수 있는 여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싱가포르의 거의 모든 식량과 천연자원, 원자재는 외국으로부터 수입되고 있기 때문에 싱가포르 국민들은 바깥 시장 경제상황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싱가포르에서 지역적 이동이 어려운 다른 한 가지 이유는 전 국민의 90% 이상이 자가주택 소유자라는 사실이다. 본인소유의 집에 살면서 좀처럼 다른 지역으로 이사하지 않는 가운데 정부정책에 의해 무시 받거나 소외당하면 지역적 이슈는 정치적 이슈로 변모한다. 야당은 바로 이 점을 파고들었고 높은 물가와 주택관리비, 교통 문제, 사회적 부조리, 빈부격차 증가 등을 부각시켜 싱가포르의 중산층과 퇴직연금자, 빈곤층 등의 공감을 얻는 데 성공했다. 2011년 국제경쟁력지수에서 싱가포르는 높은 물가와 인플레이션 때문에 미국, 홍콩 뒤로 밀려서 3등을 기록하는 굴욕을 겪기도 했다. 한편, 싱가포르의 젊은 세대들은 교육도 많이 받고 기술적인 능력과 수완이 좋아서인지 기성세대와 달리 자유로이 옮겨 다닌다. 무언가 맘에 안 들거나 불평거리가 생기면 다른 데로 금방 이사하는 경향이 있다.

둘째, 전 세계 모든 대도시에서 볼 수 있는 난제 하나는 불행히도 세계화와 도시화 때문에 빈부격차가 계속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는 곧 상대적 박탈감으로 연결된다. 지구상의 그 어떤 잘난 도시라도 가난한 사람이 살지 않는 도시는 없다. 저명한 지리학자인 도린 매시(Doreen Massey)는 런던처럼 세계적인 도시에도 빈곤층이 있다고 했다. 도쿄, 뉴욕, 파리 같은 곳에서도 빈부격차는 큰 이슈다.

싱가포르 국민 평균소득은 대부분의 동남아시아 국가들보다 훨씬 높기 때문에 빈곤문제와 빈곤층은 그동안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고 집권여당이 선거에서 이들에 대해 관심을 끌게된 것도 최근의 일이다. 빈곤문제가 이렇게 불거질 때까지 방치된 데에는 싱가포르의 정치제도가 엘리트 위주인 점이 크게 작용했다. 정부나 기업의 고위 관계자들이 사회의 최상류층으로서 높은 임금과 함께 각종 혜택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점점 크게 벌어지고 있는 소득 격차와 빈곤 문제가 정치적으로 대두된 것은 싱가포르정부가 싱가포르에서 활동하고 있는 수천 개의 다국적 기업이나 세계적인 기업에 공석이 생겼을 때 외국인재를 영입하는 것을 허가한 이후다. 똑똑하고 잘 교육받은 싱가포르인들이 소득수준을 계속 높여가기도 했으나 세계적인 외국 기업들 사이에서 그들은 소수였고 글로벌 도시인으로 성공하지 못한 싱가포르인은 뒤쳐진 사람으로 간주됐다.

셋째, 세계적인 도시들은 거주 외국인이 일정 비율 이상 되는 국제적인 면모를 갖추고 있다. 획일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는 세계적인 도시란 존재하지 않으며, 다르게 표현하자면 세계적인 도시란 모든 좋은 면을 취합하면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싱가포르만 하더라도 2010년 기준으로 2천880개의 금융기관이 있으며 거래되는 자금의 규모가 미화 1조1천억 달러 이상이다.

인구 5백만에, 국토면적 710㎢, 전세계무역의 2%를 담당하고 있는 싱가포르는 앞으로의 생존을 위해서 노동력을 계속 영입하고 보강할 필요가 있다. 모든 세계적인 도시의 특징은 문을 계속 열어놓고 적극적인 외부두뇌 영입과 함께 내부 고학력자 풀을 확장하면서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싱가포르의 경우 외국전문가들을 잘 관리할 수 있는 정치적 기술이 뛰어난 ‘싱가포르인의 싱가포르’를 원하는 게 현실이다.

넷째, 이번 선거결과는 세계적인 도시로서의 보편성과 싱가포르만의 특성의 대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불행히도 세계적인 도시들은 공간활용과 사회제도에 있어서 국제적인 추세를 따라야 한다. 하지만 중앙정부는 자국국민들이 원하는 것을 경청하는 것이 중요하다. 싱가포르 정부에게 필요한 정치기술은 국제적인 추세와 싱가포르 시민의 관심사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는 능력이다. 다시 말해서 지역적 이동이 쉽지 않은 싱가포르인들에게 글로벌 코스모폴리탄으로서의 마인드를 길러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이다.

신자유주의와 국제적인 트렌드의 수용이 세계적인 도시의 상징이라면, 내일의 싱가포르 정치가 가야 할 방향은 분명하다. 바로 싱가포르의 소시민들이 만들어가는 지역정치가 ‘살기좋은 곳’이라는 명성을 얻은 싱가포르의 국제적 위치와 함께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