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전두환 법정 출두···광주 출신 예비역 장군이 말하는 호남의 ‘한’과 ‘희생’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일제 강점 하 목포는 경성, 부산, 평양, 대구, 원산 다음의 6대 도시였다. 목포상고는 부산상고나 동지상고보다는 훨씬 명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전남의 젊은이라면 모두 동경하는 명문 광주일고를 연상하게 하는 전남제일고로 개칭한 것은 지나쳤다. 그보다는 디자인 고등학교나 정보고등학교로 바꿨어야 옳았다.
상무대는 대한민국 장교라면 모두 거쳐 가는 곳이다. 해공군 장교도 보병훈련은 여기서 받는다. 따라서 광주 사람들은 상무대가 광주에 있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며 군인에 대해 매우 친근하다. 여기서 맺은 인연으로 광주가 처가가 되고 대학을 다닌 군인들도 많다.
‘광주민주화운동’은 특전사 7여단의 광폭한 진압으로 촉발됐다. 4.19 당시 계엄사령관 ‘석두장군’(石頭將軍) 송요찬 장군은 칼빈 총으로 무장한 경찰에 M-1 실탄을 갖다 주라고 하여 시민들의 살상을 막는 지혜와 절제를 발휘하였다.
4월혁명의 성공은 이러한 군의 엄정한 자세가 크게 작용했고, 이때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군의 위신은 최고조에 달했다. 5.16후 수차례의 계엄령과 위수령 사태를 겪으며 ‘국민의 군대’인 군의 행태는 거칠어지기 시작하였다. 10.26으로 박정희가 사라짐으로써 크게 눈에 띄지 않고 묻혔지만, 부마사태는 광주사태의 예고편이었다.
그 때 부산과 마산에 투입되어 강경진압으로 물의를 일으킨 특전사 3여단이 12.12때 직속상관 특전사령관에 총을 들이대는 패륜을 저지른 것이 우연이 아니다.
아무리 거칠어졌다고 하여 “임산부를 유린하였다”는 만행은 국군장병으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5.18은 재조명되어야 한다. 민주당으로서는 모든 것을 당시 신군부와 전두환의 잘못으로 몰아가는 것이 편하고 쉽겠지만 가려야 할 것은 분명 가려야 한다. 물론 당시 보안사령관 겸 중앙정보부장 직대로서 전두환의 책임이 클 수밖에 없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광주사태가 자신 때문에 일어났고, 자신 때문에 희생당한 것으로 말해왔다. 도의적 책임을 굳이 피하지 않겠다는 지도자다운 면모는 틀림없다. 하지만 광주는 김대중 때문에만 일어난 것도 아니고, 김대중을 위해서만 희생을 당한 것도 아니다. 더구나 김대중 정권에서 상무대가 장성으로 이전되면서 군과 광주의 인연도 별로 없다.
전남도청이 무안(목포의 코앞)으로 이전하면서 호남웅도(湖南雄都)로서의 광주의 위신도 스러졌다. 김대중 정권에서 일부 인사는 혜택을 받았지만 광주의 한과 희생은 그것으로 보상할 수 없다.
광주의 명예가 살려지는 것은, 호남의 한 도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적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