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20일] 중동 이교도들 만나러간 교황
2007년 북한청소년축구대표팀, 제주도 전지훈련
2007년 3월20일 오전 북한의 17세 이하 (U-17) 청소년축구대표팀이 인천공항을 통해 남한에 입국, 한 달 일정의 국내 전지훈련에 들어갔다. 대회 참가가 아닌 순수 전지훈련을 목적으로 북한 대표팀이 한국을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찬명 단장과 김예근 감독을 비롯한 32명의 북한 대표팀은 전날 밤 중국 쿤밍을 출발해 4시간의 비행을 거쳐 이날 오전 4시50분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밤새 비행해 입국한 북한대표팀은 인천공항에서 간단한 아침을 마친 뒤 이날 오전 8시 아시아나항공편을 통해 제주공항으로 향했다.
북한 대표팀은 그 해 1월26일부터 중국 쿤밍에서 전지훈련을 해왔다. 8월 한국에서 열리는 세계청소년(U-17) 선수권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한 달 일정으로 한국을 찾았다. 3월31일까지 제주도에서 머문 뒤 광양과 창원, 수원, 고양, 서울로 이동하면서 전지훈련을 이어나갔다. 그동안 각 지역에서 2차례 정도 연습경기를 치렀다.
이찬명 단장은 지난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북한 축구가 8강 신화를 이룰 당시 골키퍼를 맡았던 원로 축구인이다. 북한 청소년축구대표팀은 2006년 9월 아시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해 2007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본선 진출권을 따냈다. 다시 강조하는데 2007년 일이다.
한편 이날로부터 꼭 34년 전인 1973년 3월20일에도 남북관계의 좋은 소식이 있었다. 제5차 남북 적십자 회담이 평양에서 열렸던 것이다. 남측의 이범석 단장과 북측의 김태희 단장이 대표로 참석했다. 남북적십자 회담은 이산가족 상봉과 자유방문 실현 등을 의제로 1972년 8월부터 시작됐다.
5차 본회담에서는 남한의 반공법과 국가보안법 폐지 문제, 재일동포 문제 등에 대한 의견이 엇갈려 이렇다 할 성과를 얻지 못하고 폐막됐다. 이후 5월 9일의 6차 회담과 7월11일 제7차 회담도 쌍방의 현저한 의견 차이만 확인하고 끝났다. 같은 해 8월28일 김영주 남북조절위원회 평양측 공동위원장의 대화 중단선언과 함께 남북적십자회담은 그예 단절됐다.
천수이벤 재선…대만 독립은 무산
2004년 3월20일 실시된 제11대 타이완 총통선거에서 집권 민진당의 천수이볜(陳水扁ㆍ당시 53세) 후보가 치열한 접전 끝에 야당연합의 롄잔(連戰ㆍ당시67세) 후보를 2만9518표(0.22%)의 근소한 차이로 누르고 재선에 성공했다. 하루 전인 3월19일 그는 총격을 받았다.
가족이 연루된 엄청난 부정부패 혐의로 2009년 9월11일 1심에서 종신형과 2억 달러의 벌금을 선고받았고, 3심에서는 징역 19년형을 선고받았다.
며칠 뒤인 같은 달 23일치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천수이볜이 “대만은 미국영토”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구금기간 중 쓴 글을 묶어서 <1.86평>이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그 책에서 “현재 진행 중인 자신에 대한 재판은 대만독립 성향 때문에 후임자 마잉주(馬英九) 총통이 가하는 정치적 보복”이라고 비난했다. 천수이볜은 징역형을 선고 받은 첫 번째 중화민국 총통이다.
이날 총통 선거와 함께 실시된 ‘방어성 국민투표’(중국에 대한 타이완의 국방능력 강화 여부를 묻는 국방 강화안과 중국과의 협상 재개로 안정적인 양안관계 설정 여부를 묻는 대등 담판안)는 투표율이 50%를 넘지 못해 부결됐다. 타이완 독립을 주장해 온 천 총통의 정책에 제동이 걸리게 된 것이다.
2000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중동 성지 순방
2000년 3월20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 1920~2005)가 역사적인 중동 순방길에 나섰다. 이틀간 요르단 방문에 이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의 성지들을 차례로 돌아보며 종교적 화해를 호소한 뒤 같은 달 26일 바티칸으로 돌아갔다.
현대인 교황으로서는 최초로 이집트를 방문한 그는 그곳에서 콥트교회 지도자와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를 접견했다. 교황의 이스라엘 방문은 1964년 교황 바오로6세 이후 36년 만이다. 예수탄생 2000년을 기념해 이루어진 순방은 기독교의 부활절 준비기간인 사순절에 맞췄다.
교황은 예수가 탄생한 베들레헴과 성장지 나사렛 등을 순례했으며 유대교 성지 ‘통곡의 벽’과 이스라엘의 홀로코스트, 이슬람교 3대 성지중 하나인 하람 알 샤리프도 방문했다. 댜드 바솀에선 홀로코스트 당시 침묵을 지킨 가톨릭 교회의 과거에 대해 사죄했다.
중동 순방을 앞둔 3월5일 교황청은 요한 바오로 2세의 지시에 따라 <회상과 화해 : 교회의 과거 범죄>라는 제목의 문건을 발표해 과거 교회가 하느님의 뜻이라는 핑계로 인류에게 저지른 각종 잘못을 최초로 공식 인정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일주일 뒤인 3월12일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집전한 미사에서 갈릴레오 갈릴레이 등에 대한 이단 심문, 십자군 원정, 유다인에 대한 차별, 다른 종교와의 반목, 여성에 대한 억압, 기독교의 분열 등 교회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일일이 거론하면서 그에 대해 용서를 구했다.
1995년 일본 지하철 독가스 테러 발생
1995년 3월20일 오전 8시쯤 동경 지하철 내에서 신경가스의 일종인 사린(Sarin)이라는 독가스가 살포돼 12명이 사망하고 한국인 등 외국인을 포함한 5510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날 독가스는 일본 관청가를 지나는 히비야선과 마루노우치선,지요다선 등 3개 노선을 달리던 지하철 객차와 가스미가세키역,가미야초역 등 18개 역구내에 거의 동시 살포됐다.
사건이 발생하자 독가스로 쓰러진 사람들을 후송하려는 앰뷸런스와 경찰 차량 등이 일시에 출동하면서 출근길 동경시내가 극심한 체증 속에서 큰 혼란상태에 빠졌다. 시민들은 독가스를 마신 사람이 코에서 피를 흘리며 여기저기 쓰러져 나뒹구는 모습에 경악했다.
사린은 중추신경을 마비시키는 화학물질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개발했다. 유기인제를 응용한 무색무취의 독가스로 사상 최강의 독가스로 불린다. 비교적 제조가 쉬워 ‘빈국(貧國)의 핵무기’로도 불리고 있다.
경찰은 옴진리교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200여명의 신도를 체포했으며 5월16일 주동자로 한 종교시설에 숨어있던 옴진리교 교주 아사하라 쇼코(麻原彰晃) 등 지도부 16명을 검거했다. 그의 본명은 전직 침구사 겸 요가 교사 출신의 마쓰모토 치즈오(松本智律夫)였다. 옴진리교는 1984년에 발족된 ‘옴신선모임’이 1987년 ‘옴진리교’로 개칭된 사교집단으로, 1989년 합법적 종교단체로 등록됐다. 사건 발생 당시 신자수가 약 1만 명에 이르렀다.
일본 당국은 사건 발생 며칠 뒤 2000여 명의 경찰관을 동원해 도쿄 옴 진리교 사무실과 야마나시 현(山梨縣) 가미쿠이시키의 연구소를 급습, 도쿄 지하철 독가스 테러에 사용된 신경 독가스 사린의 제조약품을 압수했다. 1952년 제정된 파괴활동방지법에 따라, 옴 진리교 교단은 해산됐다.
1990 필리핀 이멜다 부패혐의로 재판 회부
1990년 3월20일 필리핀 제10대 대통령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의 부인 이멜다 마르코스(Imelda Romu?ldez Marcos, 1929년 7월 2일~)가 뇌물과 횡령, 갈취 혐의로 재판에 회부됐다.
그녀는 마닐라에서 태어났다. 스페인 안달루시아 인과 일본인의 피가 그녀에게 흐르고 있다. 1986년 독재자로 군림하던 남편이 실각하면서 함께 미국 하와이로 망명했다. 이후 대통령 궁의 호화로운 생활이 알려지면서 화제가 됐다. 하지만 그녀의 사치가 나라를 부패정치에 빠뜨렸는데 그녀는 한 번도 빠짐없이 패션쇼에 참가하고 성대한 파티를 열었다. 그녀의 신발은 무려 3000켤레나 돼 지구촌 전체를 놀라게 했다.
2010년 81세였던 이멜다는 하원의원 선거에 도전해 당선됐다. 장녀 아이메 마르코스도 일로코스 주지사에 당선됐고, 장남 페르디난드 (봉봉) 마르코스도 필리핀 15대 국회 상원의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