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100주년 특집⑥] 윤치호 신흥우 이승만 이상재 등 기독교 세력이 주도

만민공동회 장면

[아시아엔=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장, 방송문화진흥회 전 이사] 3.1운동은 대한민국의 독립과 민주주의 발전으로 가는 길에 가장 빛나고 명확한 이정표를 만든 사건임에 틀림이 없다. 대중운동의 형식으로 민족에 기초한 근대적 주권국가를 지향하고 내용적으로도 봉건 조선(朝鮮)체제를 극복하며 근대민주주의를 여는 기점이었기 때문이다.

3.1운동은 독립운동이자 민주주의운동이었음에도 그 전반에 걸쳐 기독교라는 종교 기반을 강하게 갖는 것도 또 다른 대표적 특징이다. 그것은 아시아 등 다른 신생독립국들과의 커다란 차이이기도 하다.

조선사회와 일제 식민통치기에 기독교의 확장과 내면화는 곧 민주주의운동이었다. 특히 유교(儒敎) 기반의 조선과 달리 3.1운동과 대한민국의 출범에는 기독교가 가진 민주적 가치가 뒷받침되어 있다. 그것은 3.1운동을 주도했던 인물과 사건 및 지역이란 측면에서도 확연히 나타난다.

왕조에 대한 충(忠)과 조상 및 가부장에 대한 효(孝), 그리고 신분 및 가문의 존망이 결부된 봉건구조가 온존되어온 사회에 기독교는 민주주의 기초가 되는 인간평등과 독립적 인격 및 권리의 존중을 성립시켜내는 정치사회적 인식변화의 동력이었다.

그것은 윤치호, 신흥우, 이승만, 이상재 등의 독립협회(獨立協會)활동이나 만민공동회(萬民共同會)를 개회하는 사회변화운동으로도 나타났었고, 기독교가 주도한 1911년의 105인 사건도 마찬가지다. 3.1운동을 대표한 인물로 독립선언서를 만든 33인들도 유림(儒林)은 일체 없고, 민족독자성을 강조한 천도교를 제외한다면 절대 다수가 기독교인이었던 것은 3.1운동이 서구적 근대화를 모델로 한 문물 변화와 함께 신분차별을 거부하고 모든 인간의 인격을 존중하는 기독교적 가치관에 기초한 보편가치를 지향했기 때문이다.

권력과 신분제로 이미 결정된 신민과 백성적 인간이 아니라, 절대자인 신(神) 앞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누구나 인간은 가치와 기본권을 가진다는 측면에서 기독교는 한국 전통사회에서 민주적 가치를 확산시키는 기반이었다. “권력은 하늘로부터 받은 것”이라는 왕권신수설이나 “왕은 하늘이 내린 것”이란 명제와 “인권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라는 천부인권(天賦人權)은 정면으로 배치되고 공존될 수 없는 것이었다.

“주권은 각 개인에 있고, 그 개인이 합의하고 위임한 것이 아니”라며 통치의 정당성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신에 의지하며 스스로 개척해가야 한다는 것이 곧 공동체의 민주적 운영의 기원이 되었다. 개신교가 신분제적 봉건왕권에 저항하고, 교황과 카톨릭의 권위체계를 거부하며 개별 공동체는 각 공동체 구성원들 스스로가 스스로를 조직하고 운영해야 한다는 사상적 기반과 운영원리는 민주주의적 원리와 부합하는 것이었다.

서유럽에서도 근대민주주의 도입과 정착에 기독교의 개신교는 구체제의 붕괴나 신질서를 만드는 것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는 가치체계를 갖고 있었다. 주권자들이 주체가 되어 어떤 질서를 만들어, 어떻게 운용할 것인가를 합의하고 그에 따른 입헌적 통치체계를 운용하는 것이 자체가 곧 민주주의였다.

그런 측면에서 3,1운동에서 보인 기독교는 일본이란 제국주의적 차별을 극복하는 가치체계이면서도 조선이란 전근대적 착취 및 신분구조와 차별까지도 동일한 원리로 적극적으로 극복해낼 기반이 되었다. 기독교가 주도했던 3.1운동은 근대민주주의의 확립으로 가는 주요한 과정임을 보여준다.

그것은 3.1운동 이전에 있었던 1885년 이래 30년 이상 한국사회에 축적되어온 기독교 중심의 교육과정에서 나타난 것이기도 했다. 기독교의 교육기능은 근대화 과정에서 계몽적 성격이 매우 강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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