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산책] ‘나무를 심은 사람’···프로방스 산악에 40년간 숲을 일군 부피에의 삶
[아시아엔=임소희 나눔문화 이사장, 도서출판 느린걸음 대표] “어떻게 살 것인가?” 나에게 이 책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황무지에 홀로 도토리 알을 심어가던 고독한 한 노인의 이야기. 1시간 남짓이면 읽히는 분량, 그러나 감동의 여운은 길다. <나무를 심은 사람>은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후, 평화를 갈구했던 저자 장 지오노가 무려 20년간 원고를 다듬은 끝에 1954년 세상에 내놓은 책이다. 1900년대 프랑스의 프로방스 산악지대에서 40년간 숲을 일군 엘제아르 부피에의 생애를 담았다. 책의 곳곳에 담긴 아름다운 판화는 동화책을 읽는 것 같은 즐거움을 선사한다.
속도와 성과를 쫓는 시대, 이 책은 ‘삶의 방향과 태도’에 대한 근원적 돌아봄을 준다. 전쟁 중, 황폐해진 마을의 사람들에게 절망은 일상이었다. 물기 하나 없는 황량한 땅처럼 사람들의 가슴도 메말라서 자살과 정신병은 유행처럼 번져갔다. 하지만 노인은 밤바람이 야수처럼 불어대는 돌집에서, 등불 밑에 앉아 정성스레 건강한 도토리 알을 골라내어 하루하루 심어갔다. 100개의 도토리 알 중에 절반은 싹도 트지 않고, 또 일부는 말라죽고, 또 나머지는 갉아 먹히고 소수의 싹만 살아남았다. 그래도 그는 아주 단순하게 자신이 할 일을 고집스럽게 해나갈 뿐이었다.
실의에 빠지거나 자신이 하는 일에 의심을 품지도 않았다. 그리고 40년, 모든 것이 변해있었다. 메마르고 거친 바람 대신 향기롭고 부드러운 바람이 불고, 숲에서 내려온 맑은 샘물이 흐르고, 그 옆엔 보리수나무가 부활의 몸짓으로 서 있고, 젊은 부부들은 잘 단장된 농가에서 꽃과 채소를 가꾸고 웃음꽃을 터트리며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도토리 알은 땅에만 심긴 것이 아니라, 사람들 가슴에 심어져 마을을 살리고 기적을 일구어낸 것이다. 그는 햇살 속에 반짝이는 나무들을 바라보며 평화롭게 잠들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해야 할 일에 대한 믿음으로 끈질기게 밀어 가는 삶. 그의 보상 없는 선의, 이익 없는 사랑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나무 심는 노인의 고결한 행위는 내게 큰 위안과 용기를 주었다.
이 책을 읽고 집 앞 작은 모퉁이 밭에 나무를 심었다. 흐린 하늘과 탁한 공기 속에 닥쳐올 재앙을 막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세계 곳곳에는 덜 해치고 더 나누면서 좋은 삶을 앞서 살아가는 ‘나무를 심은 사람들’이 희망의 산맥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