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사와 ‘생전 장례식’···아인슈타인·안자키 사토루·데이비드 구달의 경우

생전 장례식을 알리는 광고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요즘 필자 얼굴이 굉장히 좋아졌다고 송년회에 갈 때마다 칭송을 듣는다. 얼굴 전체에 주름살 없고 민머리에 하얀 눈썹이 눈을 덮을 정도다. 다만 다리가 아파서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것이 문제다. 이런 필자를 보고 100세 장수하라고 난리다.

그런데 나는 100세 장수는 차라리 저주(咀呪)라고 생각하고 그때마다 그런 말 하지 말라고 사양한다. 이미 살만큼 살았다고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빨리 좋은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까 열심히 수행중이다. 잘 죽어야 다시 잘 태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1955년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이 ‘복부대동맥류’ 파열로 쓰러졌다.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지만 수술을 거부했다. 그는 ‘웰 다잉(Well-dying)’을 선택한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때, 품위 있게 죽음을 맞기 위해서였다. 그로부터 60여년이 지난 지금 ‘좋은 죽음’이 ‘좋은 삶’ 못지않게 중요한 시대가 됐다. 우리의 가장 확실한 미래인 죽음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난해 11월, 일본의 한 신문에 이런 광고가 실렸다. “제 장례식에 초대합니다. 평상복 입고 참석해주세요. 조의금은 받지 않습니다.” 자신의 ‘생전 장례식’을 치르겠다는 내용이었다. 광고를 게재한 사람은 안자키 사토루(당시 80세). 일본 건설기계 분야 1위 기업 고마쓰의 전 사장이었다.

그는 온몸에 암이 전이돼 수술 불가능 판정을 받은 상태였다. 연명(延命) 치료를 받을 수 있었지만 거부했다. 아픈 몸으로 버티며 사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로부터 약 3주 뒤, 안자키 전 사장의 생전 장례식이 열렸다. 회사 관계자, 동창생, 지인 등 약 1000명이 참석했다.

그는 휠체어를 타고 모든 테이블을 돌며 참석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감사편지도 남겼다. 생전 장례식을 치르고 6개월 뒤, 안자키 전 사장은 81세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말처럼 ‘몸부림치지 않는 죽음’이었다.

잘 죽어야 잘 태어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른바 ‘웰 다잉 시대’다. 사람들은 이제 죽음을 삶의 일부로 인식한다. ‘죽음의 질’에 대한 고민도 깊어졌다. ‘웰 다잉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능동적으로 마침표를 찍으려 한다. 죽음의 시기와 방법, 혹은 그 이후까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고 여긴다.

결코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죽음을 기다리며 준비한다. 이러한 인식 변화는 죽음을 맞이하는 또 하나의 문화를 만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웰 다잉’은 2009년 ‘김 할머니 사건’으로 화두에 올랐다. 대법원이 식물인간이 된 김 할머니의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존엄사(尊嚴死)를 허용하며, 환자의 결정에 따라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중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후 ‘당하는 죽음’이 아닌 ‘맞이하는 죽음’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었다. 최근에는 빨라진 고령화가 ‘웰 다잉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 정도다. 이는 ‘유병장수(有病長壽)’ 시대가 열리면서 죽음의 패러다임이 변했기 때문이다. 병든 채 목숨을 유지하기보다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웰 다잉’을 더욱 선호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노인층에서 특히 뚜렷하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가 만 65세 이상 노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노인 10명 중 8명은 존엄사에 찬성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죽음을 앞둔 환자가 연명의술 대신 평안한 임종을 맞도록 돕는 ‘호스피스 서비스 활성화’에 동의하는 노인도 87.8%나 된다.

고령인구가 늘면서 ‘좋은 죽음’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자 지자체들은 ‘웰 다잉 프로그램’을 앞다퉈 마련하고 있다. 2016년 대전광역시를 시작으로 30여 지자체가 ‘웰 다잉’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 평택시는 ‘웰 다잉’ 사업의 일환으로 민간차원에서 운영하는 호스피스 업무에 시예산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렇게 ‘웰 다잉’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면서 죽음을 준비하는 방법도 다양해지고 있다. 생전에 영정사진을 찍고, 유언장을 쓰고, 관에 들어가 보는 등 죽음을 간접체험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렇게 “죽은 뒤 장례는 의미가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생전 장례식’에 대한 인식도 높아졌다.

지난 8월엔 서울의 한 병원에서 호스피스 환자를 위해 지인들을 초대, 이별파티 분위기로 생전 장례식을 치렀다. 일본에서도 인생을 마무리하고 죽음을 준비하는 활동인 ‘종활(終活)’ 문화가 정착돼 있다. 유품 정리와 디지털 유산 상속, 사후 정리를 위한 보험 서비스 등 다양한 종활 상품이 등장했다.

‘웰 다잉 시대’에는 존엄사, 의사조력자살 등 인간에게 ‘좋은 죽음’을 맞이할 권리가 있다는 시각이 크다. 故데이비드 구달 박사는 죽기 전,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고 지난 5월 9일 104세로 의사조력을 통해 사망했다.

“나는 늙고 있습니다. 시력을 포함해 내 모든 능력은 퇴화했습니다. 이제 나는 집에 24시간 갇혀있거나 양로원에서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행복하지 않아요. 죽고 싶어요. 슬프냐고요? 아뇨, 내가 슬픈 건, 죽어야 해서가 아니라 죽을 수 없어서입니다.”

범상한 사람들은 현세에 사는 것만을 큰일로 생각한다. 그러나 지각(知覺)이 열린 사람들은 죽는 일도 크게 안다. 왜냐하면 잘 죽는 사람이라야 잘 태어나서 잘 살 수 있으며, 잘 태어나서 잘 사는 사람이라야 또다시 잘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집, 내 침상에서 죽고 싶다. 그것이 어렵게 되면 연명치료는 하지 말라고 가족들에게 이미 유언을 해 두었다. 100세 장수하라는 말은 사양한다. 그냥 자는 듯이 가는 것이 나의 간절한 염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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