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군은 자멸하였다”···한국군 정치적 중립의 전제조건들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흔히들 독일군을 정예군대의 표상으로 든다. 1, 2차 대전에서 세계를 상대로 싸운 무모함은 지적하면서도, 보불전쟁의 승리이래 전설이 된 독일군의 무적신화(invincibility)는 의심하지 않는 것이 전사 연구자가의 경향이었다. 그러나 독일군 참모본부의 자존심은 2차대전 시작도 전에 무너졌다.
히틀러가 독일군을 휘어잡은 방법은 비열하기 짝이 없었다. 국방군총사령관 브롬베르그의 결혼식에 초대된 히틀러는 후에 브롬베르그 처의 신분이 불결한 여자라는 보고를 게슈타포로부터 받는다. 히틀러는 이를 빌미로 브롬베르그의 사임을 요구한다. 뒤를 이을 장군은 육군총사령관 프리츠다. 그는 히믈러에 의해 동성애자라는 모함을 받고 히믈러에게 결투로 결백을 가리려 하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사임하게 된다. 독일군 장교단은 비열한 나치에게 항변하는 것 자체를 수치스러운 일로 여겨 브롬베르그와 프릿츠의 비극을 개인의 비극으로 넘기고 만다.
그러나 이는 개인적 비극으로 끝나지 않았다. 콧대 높던 독일군 장교단이 허무하게 무너진 것을 본 히틀러는 작전지휘까지도 참모본부를 무시하고 독단하게 된다. 노르만디상륙작전이 시작된 상태에서 연합군을 가장 취약한 선상에서 격멸할 생각을 하지 않고 귀중한 기갑사단을 움켜쥐고 있다가 연합군의 상륙을 허용하고 말았다. 독일군의 장로인 서부군사령관 룬트슈테트 원수도 히틀러를 설득하지 못하였다. 이는 몰트케, 쉴리히펜, 폰 젝트 등에 의해 길러진 독일군 참모본부가 종말을 고하였음을 의미한다.
프러시아 장교단에서 직업장교단의 원형(prototype)을 추출하여 민군관계의 이론을 정립한 헌팅턴은 이 사례를 건전한 민군관계를 위하여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교훈으로 제시한다.
군의 정치적 중립은 군인이 정치적 중립을 견지하는 게 필수지만, 정치인이 군의 명예를 존중하고 전문성을 존중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지적한다.
12.12 당시 전두환 등의 행적은 이미 사법적 심판을 받았다. 이와는 별개의 문제로 최규하 등의 행적은 민군관계와 법치주의 관점에서 여전히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문민정부가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5대째 이어지고 있다. 과거의 3, 4, 5공이 正이라 한다면 그 다음은 反인데, 문재인 정부는 合을 모색할 때이다.
이를 위해 군은 물론, 정치·언론·학계 등의 여러 분야에서 이 문제를 심중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 국민들은 장군들에게 민간관료들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높은 도덕적 기준과 냉철한 분별력을 요구한다.
문관이 군을 너무 우습게 안다고 했다가 하나회가 날아갔죠? 잘 됐네, 이거 쓴 사람 포함 싹 날아가면 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