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종교와 관습 2] ‘절벽에 매달린 관’, ‘인도의 아기 던지기’, ‘키르키스스탄 신부 납치’
<아시아엔>은 키르기스스탄 신부 납치와 필리핀의 십자가 재현 등과 같은 아시아의 숨어있는 종교 및 문화 의식을 두 차례에 걸쳐 소개합니다. 이번 특집은 특정 민족과 문화, 종교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뤘음을 알려드립니다. 아시아 각지의 생활습관과 전통을 알아가며 아시아를 더욱 넓고 열린 시야로 바라보았으면 하는 것이 편집진의 바람입니다. 작고 사소하게 보일지라도 문화라는 것은 인류의 삶, 그 자체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편집자
[아시아엔=서의미, 알레산드라 보나노미 기자] 한 나라의 문화나 관습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자신하나? 그렇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봐라. 당신이 미처 알지 못했던 아시아의 종교와 문화적인 관습들이 곧 펼쳐진다.
천국으로 가는 계단 ‘절벽에 매달린 관’
이번엔 ‘절벽에 매달려 있는 관’에 대한 이야기다. 이 관들은 중국과 필리핀 등지에서 볼 수 있다.
중국 남동부 위난과 쓰촨 성 사이의 지역에는 수직으로 매달린 공동묘지들이 있다. 이는 약 3,000년 전 고대 중국에서 독창적인 문화를 간직했던 소수민족 ‘보 족’의 풍습이다. 이들은 단단한 통나무를 잘라 관으로 만들어 매달곤 했다. 그러나 이 의식은 보 족의 불가사의한 실종과 함께 자취를 감췄다.
보 족은 관을 나무 막대를 지지대 삼아 매달거나, 절벽 동굴에 매달거나, 혹은 바위 돌출부에 매달곤 했다. 관은 지상으로부터 낮게는 10미터, 높게는 130미터의 높이에 매달렸다. 학자들은 마땅한 장비도 없던 시대에 보 족이 관을 높은 곳에 매달을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한 답을 여태껏 찾지 못했다. 보 족이 하늘을 날 수 있었다는 믿기 힘든 전설만이 남아 있다.
이 신비스러운 소수 민족은 왜 높은 곳에 관을 달았을까? 이에 대해선 보 족이 망자를 적이나 동물로부터 지키고자 했을 것이란 가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학자들은 또한 보 족은 천국이 하늘에 존재할 것이라 믿었으며, 그들에게 관은 천국으로 가는 계단을 의미했다는 가설을 내놓기도 했다.
관을 매다는 풍습은 필리핀 북부의 루손 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망자가 높은 곳에 묻혀야 천국에 가까워 질 수 있다고 믿은 이고르트 족은 약 2,000년에 걸쳐 이 전통을 지켜왔다. 이고르트 족은 사람이 막 세상에 태어났을 때와 같이 웅크린 자세로 세상을 떠나야 한다고 믿었기에 관의 크기는 상당히 작았다고 한다.
두 민족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각기 다른 시대를 살았지만, 그들이 망자를 대하는 태도와 관습만큼은 비슷했다.
아기가 건강하고 부자 되길 바라는 ‘인도의 아기 던지기’
자녀를 위험한 상황으로 내모는 부모. 상상조차 힘들다. 그러나 인도 남부의 마하라시트라와 카르나타카 지역에선 약 700년간 ‘아기를 던지는 의식’이 행해졌다.
이 의식은 유아사망률이 높았던 시대의 전설에서 유래했다. 한 성자가 죽어가는 아기의 부모에게 “신전을 지어라. 병든 아기를 건물의 꼭대기에서 떨어뜨려 전지전능한 신에 대한 믿음을 증명하라”고 말했다. 그 후 높은 곳에서 떨어졌던 아기의 병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고 한다.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출생률이 낮았던 농촌지역에선 아기 던지기 전통이 오랜 세월 이어졌다. 성직자를 동반한 가족들이 신전 높은 곳에서 아기를 던지면 남은 가족들은 지상에서 담요를 펼쳐 아기를 받는다. 아기를 담요로 받고 나면 기쁨과 격려의 함성이 주변을 가득 메운다. 가족들은 이 의식을 통해 아기가 건강해지고 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왔다.
그러나 2009년 이 광경을 담은 영상이 온라인을 통해 확산됐고, 영상을 본 사람들은 어린 아기들이 느꼈을 심리적인 공포에 치를 떨었다. 결국 지역운동가들은 인도 아동인권국가위원회에 청원을 제출했고, 2011년 아기 던지기는 법적으로 금지됐다.
하지만 아기 던지기가 완전히 사라지기까진 시간이 좀 더 걸릴 듯 하다. 미신을 믿으며, 또한 전통이 보존되길 바라는 일부 부모들은 지금도 생후 2개월이 채 안된 아기들을 건물 아래로 내던지고 있다.
“내 신부는 내 손으로 구해온다” 키르키스스탄 신부 납치
키르키스스탄 농촌 지역에선 남자가 여자를 길에서 납치해 강제로 혼인하는 풍습이 있다. 신랑과 신부가 실제 연인 관계인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예비신랑과 그의 친구들은 거리에서 여자를 납치하고 차에 태워 남자의 집으로 데려온다. 일행이 집에 도착하면 남자 가정의 모든 여자들은 납치된 여자에게 면사포를 쓰라고 설득한다. 여자가 이를 받아들이면 남자 가족의 대표가 여자의 부모를 방문해 결혼에 동의해 줄 것을 요청한다. 부모의 승낙이 떨어지면 이슬람 성직자 이맘이 입회하는 결혼식이 열린다.
키르기스스탄 농촌 지역 주민들은 일반적인 프로포즈는 실패할 확률이 높다고 말한다. 여자가 결혼을 원할지라도 순결해 보이기 위해 부정적인 대답을 내놓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신부 납치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됐다. 이 요상한 풍습의 기원에 대해선 “키르기스스탄 고대 영웅 마나스 시대 때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키르기스스탄의 구전에는 이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질 않다. 대신 19세기 일부 부족들이 다른 마을로 쳐들어가 말과 여성을 훔쳤다는 기록은 있다. 이는 부족간의 다툼을 유발했고, 그래서 이 관습은 지속돼선 안 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와 달리 신부 납치가 남녀평등 체제를 구축하려 했던 구소련 시대에 나왔다는 설도 있다. 구소련은 15세 이하의 혼인을 금했다. 대신 10대 소년, 소녀에 고등교육 받을 권리를 공평하게 보장해 줬다. 10대들은 고등학교 또는 대학교에서 자신의 배우자가 될 사람을 만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의 부모는 자녀가 시골로 돌아와 그들의 허락을 받고 혼인을 치르길 바랐다. 결혼을 승낙 받으려는 두 남녀가 고향에서 신부를 납치하는 다소 과격한 방법까지 동원한 것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는 설이다.
현재 키르기스스탄에서 신부 납치는 법적으로 금지돼 있다. 하지만 경찰과 공무원들은 이를 알고도 모른 척 넘어간다. 지켜야 할 전통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한편 신부 납치는 키리기스스탄의 주요 종교인 이슬람 규율에 어긋나기도 한다. 그래서 2013년 알마즈벡 아탐바예프 키르기스스탄 대통령은 신부 납치범에 최고 10년의 형벌을 내리는 개정안을 승인했다.
납치된 여성들의 자살률이 유독 높아 신부 납치는 키르기스스탄의 사회문제로 비화됐다. 그러나 서로 몰랐던 사이라 할지라도, 여성의 95%는 자신을 납치한 남성과 함께 지내는 길을 택한다. 이는 소녀들이 남성에 복종할 것을 미덕으로 여기며 자라온 탓이 크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