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인 크나이더씨가 한국 최초 외국인 동장을 맡은 까닭은?
[아시아엔=인터뷰 이상기 기자, 정리 김아람 인턴기자] ‘명예동장’. 그리 흔치 않은 직함이라 고개가 갸우뚱하다. 그 ‘흔치 않은’ 명예동장 중 외국인도 있단다. 그래서 찾아가봤다. 외국인 중 최초로 명예동장직을 맡은 독일 출신의 한스 알렉산더 크나이더(60)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현재 한국외국어대 독일어과 교수로 재직중인 크나이더씨는 독일 보훔 루르 대학에서 한국학, 국민경제학, 동아시아경제학을 전공했다. 이후 대한민국 정부 장학생으로 선발돼 서울대 대학원 국사학과 박사과정을 이수했다.
한국이름은 구내덕. 한국 유학 당시 서울대 은사가 붙여준 이름이다. 크나이더와 발음이 비슷하다고 붙여진 이름인데, 제법 뜻도 근사하다. 한자로 올 래(來)자에 큰 덕(德)자를 쓴다.
<아시아엔>은 성북글로벌빌리지센터를 방문해 지난 2009년부터 7년째 서울 성북구 명예동장을 맡아온 한스 알렉산더 크나이더씨를 인터뷰했다.
한국에는 언제 처음 오셨나요?
“1988년 2월23일에 왔습니다.(웃음) 아직도 정확하게 날짜를 기억하고 있어요. 당시 박사과정을 이수하기 위해 한국에 왔었는데, 88올림픽 준비가 한창이었죠. 그때는 학생들이 데모도 많이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당시와 비교해보면 지금 한국 사회는 참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 같아요.”
언제부터 명예동장직을 맡아오셨나요?
“원래 성북구에서 계속 살다가 2009년 11월 성북 글로벌 빌리지 센터가 설립된 이후 지금까지 명예동장을 맡고 있습니다. 처음 명예동장을 맡았을 때 무척 기뻤어요.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던 게 명예동장을 맡은 가장 큰 이유입니다. 타국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현지화’가 필요합니다. 따라서 외국인들도 그 나라의 문화를 공부해야겠죠. 그동안 만나온 많은 외국인들이 이런 질문을 합니다. ‘모국에선 당연한 건데 한국에서는 왜 하면 안되나’, 반대로 ‘한국사람들은 왜 이런 행동을 하는가’ 이런 질문들 말입니다. 문화적 차이로 힘들어하는 외국인들이 한국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제 역할입니다.”
성북글로벌빌리지센터는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성북구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의 한국 정착을 돕기 위해 세워진 기관입니다. 외국인들이 센터에 와서 한국어를 배울 수 있어요. 수준에 따라 반을 나누기 때문에 자신에 맞는 수업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세라믹 아트 공예, 한지 공예, 김치 만들기 등 다양한 한국문화 체험활동도 할 수 있습니다. 한국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외국인의 경우에는 대사관, 근로자센터, 경찰서 등과 연계해 도움을 드리기도 합니다.”
매년 성북구에서 ‘유러피언 크리스마스 마켓’을 개최하는 걸로 압니다.
“처음 기획했던 행사가 2010년 독일 전통 크리스마스 마켓입니다. 시간이 촉박하고 예산도 적어서 애를 좀 먹었었지요. 하지만 주한독일대사관의 도움으로 성공리에 개최할 수 있었습니다. 이듬해부터는 ‘유러피언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명칭이 바뀌었어요. 지금까지 매해 개최해왔으니 5년동안 이어져온 셈이네요. 해마다 평균 2만5천명이 방문할 정도로 인기가 좋습니다.”
유러피언 크리스마스 마켓의 히트상품이 있다면요.
“독일에 글뤼바인(Gluhwein)이라는 와인이 있습니다. 와인과 향신료 등을 섞어 따뜻하게 만들어먹는 핫 칵테일의 일종입니다. 독일에서 크리스마스 시즌에 즐기는 술이죠. 너무 뜨겁게 만들면 알코올이 증발하기 때문에 적당히 따뜻한 온도로 유지하는게 중요합니다. 2010년 열렸던 첫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선보였는데 반응이 아주 좋았어요. 따뜻한 와인이라 독특했던 모양인지 한국사람들도 무척 좋아해주더라고요. 그 덕분에 크리스마스 마켓도 매년 성황리였고요”
유러피언 크리스마스 마켓 외에도 다양한 문화행사를 기획하셨다고요.
“유럽 외 다른 대륙의 문화도 많은 사람들이 경험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2012년에 새로운 축제를 2번 기획했습니다. 6월에는 라틴아메리카 축제, 10월에는 이슬람문화축제를 열었어요. 이듬해 9월에는 아프리카 축제도 했었고요. 라틴아메리카 축제는 지금까지 매년 개최하고 있어요. 올해는 6월13일 열릴 예정이었는데 메르스 사태로 9월까지 연기되었습니다. 성북구에 있는 주한대사관저만 40곳이 넘어요. 덕분에 문화행사 때마다 멕시코, 브라질, 체코 등 많은 대사님들께서 도움을 주시곤 합니다.”
의미 있는 행사들을 많이 준비해오셨네요. 보람도 크겠지만 힘든 적이 있진 않으셨는지?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과 한국사람들이 서로의 문화를 공유할 수 있는 장을 만들었다는 데 보람이 큽니다. 하지만 이슬람문화축제는 일부 기독교 단체들의 반발이 심해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했었어요. 또 이슬람 국가들의 종교적 이해관계 때문에 대사관의 지원을 제대로 받기가 힘들었어요. 이슬람축제는 아쉽게도 한 번에 그치긴 했지만, 앞으로도 매년 9월마다 새로운 축제를 기획할 예정입니다.”
한-독 관계를 30년동안 연구하셨다고요.
“맞습니다. 특히 한국과 독일이 처음 외교관계를 수립한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까지를 중심으로 연구 했습니다. 이 내용을 담은 책이 2009년 독일어로 출간됐습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에게 전달하기도 했고요. 한국어판은 2013년에 <독일인의 발자취를 따라>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지금까지 명예동장을 해오면서 뿌듯한 점이 있다면?
“제가 살고 있는 지역의 발전을 꾸준히 지켜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발전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 무엇보다 보람찹니다. 또한 외국인들에게 한국 문화를 알릴 뿐만 아니라 한국사람들에게도 타 문화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 같아 기쁩니다. 후에 기회가 된다면 박원순 서울시장을 만나 서울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 의견을 나누어보고 싶습니다.”
외국인 관광객 천만 시대에 돌입한지도 오래다. 그만큼 인적 교류가 활발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국내에 거주하는 결혼이민자 수는 30만명으로 그 자녀들만 20만명이 넘는다. 특히 서울 성북구에는 40곳이 넘는 대사관저가 밀집한 만큼 약 3천가구가 넘는 다문화가정이 존재한다. 이렇듯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특색 있는 지역이지만, 그만큼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외국인들이 많다.
한스 알렉산더 크나이더 교수는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으로서 누구보다 그들의 현실을 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다. 수업으로 바쁜 와중에도 꼭 시간을 비워둬 빌리지센터에 들를 만큼 지역에 대한 애착도 대단하다. 성북동 거주 외국인들에 한국 문화를 소개하고, 반대로 한국인들에게 타 문화를 소개해 ‘문화의 가교’ 역할을 해온 그. 성북구 명예동장으로서 손색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