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된 관계, ‘구조’와 ‘기능’

애플사 창업자 故 스티브 잡스는 디자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디자인을 ‘어떻게 보이느냐’로 이해한다. 하지만 나는 디자인이 ‘어떻게 기능할 것이냐’로 생각한다.”

90년대 말, 캐나다의 토론토치과대학에서 유럽과 아시아, 북미의 대학교수와 임상가들이 모인 학술대회 콘센서스 분임토론에서였다. 임플란트 시술 후 유지관리에 대해 전적으로 특정임상과적 시각에서만 바라보는 한 발표자에게 “입안에서 치아처럼 음식을 씹는다고 하여 임플란트를 자연치아로 이해하는 발표자의 시각은 ‘꽥꽥거리며 풀밭을 걸어다니는 것은 모두 오리’라고 생각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 아닙니까?”라며 심각하게 반박하던 토론참여자가 있었다.

사물의 가치가 기능에 있는지, 구조에 있는지를 논하는 것은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다루는 치아를 포함한 구강기관을 바라보면 당연히 기능의 가치에 무게가 더 있다고 본다. 고르지 못한 치열과 어긋난 교합으로도 잘 씹고, 발음도 좋고, 기분 좋게 웃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고른 치열과 정상교합으로도 그렇지 못한 사람을 종종 보다보면 역시 치아와 입주변의 제 구실은 생긴 모습보다는 행하는 기능이라는 쪽에 마음이 기운다.

언젠가 학술행사 소모임 토론에서,“구조는 기능을 결정하고, 기능은 구조를 선택한다”는 말씀을 전제로, 치료계획과 결과의 개연성 혹은 필연성을 재미있게 이야기하던 분이 있었다. 참으로 간단한 말이지만 그 속에는 수많은 현상들을 바라보는 현명한 지혜가 담겨있다.

형체를 갖추고 구조가 만들어지면, 이미 거기에서 기능이 결정된다는 말은 전혀 어색하거나 놀라울 것도 아닌 상식이다. 하지만 기능은 구조를 선택한다는 말에는 다소 긴장감이 흐른다. 예컨대 목이 좌우로 움직이지 않거나 방향전환을 할 수 없어 뒤를 돌아볼 수 없는 구조를 가진 동물은, 뒤에서 공격하는 적으로부터 생존할 수 있는 확률이 낮아질 것이다. 당연히 그러한 구조는 그에 맞는 기능을 결정했고, 결정된(치명적 한계가 있는) 기능은 이러한 동물이 소멸되도록 작용함으로써 구조의 운명을 선택하도록 작동한다.

구조가 지속적으로 선택받아 존재하기에 적절한가에 대한 평가기준으로, 구조가 애초 지향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며, 구조자체의 통일성(integrity)을 유지하는데 소요되는 비용을 기준으로 보기도 한다. 한국의 건강보험이라는 구조가 과연 애초 설정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으며, 적절한 비용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하는 것도 따져볼 만한 일이다.

구름 잡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이러한 시각에서 여러 가지 일들을 바라보면, 다소 생각의 균형잡기가 수월할 것이다. 해방 이후 경제발전은 교육열에서 싹 텄고, 가르치고 배우는 일은 미학적 수준으로 승화돼 한국에서 교육과 관계되는 일은 숭고한 사명으로까지 받들어졌다. 누구라도 교육이라는 명분만 붙으면 이의를 달지 못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우리 교육구조가 스스로 정화기능은커녕 건강한 유기체로 진화하지 못하고, 비교육전문가들에 의해 좌우되면서 교육 본래 기능에 소모성 질환과 같은 부전이 나타났던 것이다. 이에 따라 구조존재 자체가 국가적으로 엄청난 비용을 요구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는 것은 주지하는 바다. 비용이 산출을 능가하는 구조는 소멸과 변화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우리나라 교육은 어느 것을 선택하게 될 지, 혹은 어느 것의 선택을 받을 지가 궁금한 이유다.

요즘 신세대들은 멋진 외모를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어떤 세대의 산물은 그 이전 세대들이 심어주는 것이라고 하는데, 도대체 어떤 메커니즘으로 신세대들은 이러한 가치를 선택하였는지 한번 생각해본다. 멋진 외모는 사유의 영역보다는 감각의 영역에 더 가깝다고 볼 때 신세대들은 감각의 삶에 더 관심을 두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럴 경우 과연 삶이라는 것이 감각으로 지속되고 향유될 수 있는 것인지 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도 외모가 구조인가 기능인가라는 퀴즈를 던지면 흥미로워진다. 신세대에게 외모는 경쟁력이라 했으니 분명 기능의 가치를 가질 것이다.

대부분 화석연료로 돌아가는 지구라는 구조는 우리가 볼 때 심각하게 여겨야 할 대상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지구생태는 도저히 인류생존의 터전이라는 기능을 제대로 못할 것이다. 자동차들은 연식이 바뀔 때마다 배기량이 점점 커진다. 선택될 구조의 방향이 아닌 딴 방향으로 가는 데에는 이유도 물론 있을 것이다. 향상된 배기량과 출력으로 속도를 겨루어야 할 일도 있을 것이다.

필자는 골프 스윙 때 좌우편차가 엄청나다. 연습도 잘 안하면서 장타를 낼 욕심으로 무리한 백스윙을 하고, 프로골퍼들도 자제한다는 체중이동도 욕심껏 한다. 장점이라고는 어쩌다 한 번 똑바로 가면 어마어마한 거리가 난다는 것일 뿐, 한 라운딩에 대여섯 개의 오비가 나는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이 스윙구조는 기능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미 폐기되었어야 마땅한데, 아직도 존속하는 걸 보면 기능이 구조를 선택하는 과정은 매우 더디던가, 아니면 욕심으로 인해 나쁜 습관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대학졸업반은 취업반이라고도 하고 ‘스펙장착반’이라고도 한다. 예전보다 많은 자격증과 공인인증시험 점수를 받고서도 실무현장에서는 업무능력이 태부족한 실정이라고 한다. 자기 딴에는‘구조’를 갖추고 입사하는데, 전혀 기능과 동떨어진 구조들로 장식하고 무대에 오르는 꼴인 셈이다.

근대화 과정에서 값싸게 노동력을 얻기 위해 여성의 사회진출을 장려했지만 이것이 얼마나 근시안적인 정책이었는지 지금 우리는 실감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가정과 사회에서 어머니와 아내와 며느리의 소중한 기능을 상실하고 있는 현실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여성의 사회진출로 그들의 본래 자리가 다소 비워질 것이라는 것을 예상했더라도 지금처럼 청소년문제, 노인문제 등이 심각한 수준으로까지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지 못했거나, 혹은 예상하고도 이를 미리 알리고 경계하고 싶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기능에 대한 신중한 인식과 올바른 평가가 있어야 구조가 치명적 피해를 입지 않는 법이다. 너무나도 경솔하거나, 너무나도 두려움이 없이, 구조를 두고 지루함을 못 견디는 어린애처럼 변화를 명분으로 칼을 들이대는 경우를 우리는 너무나 많이 본다.

사물의 가치가 구조의 유구함이나 기능의 합목적성으로 매겨지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존재 자체에 심오한 의미와 지고한 가치가 있다”는 다소 ‘사치스러운’ 담론은 구조와 기능의 아주 오래된 갈등이 마무리돼야 비로소 다음 담론으로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그게 그리 쉬이 풀리지 않는 일임에랴. 구조와 기능을 마주 앉혀놓고, 서로 툭 터놓고 끝장토론이라도 시키면 해답이 혹 나올는지?

*필자는 김용호치과의원 원장, 서울대병원 외래교수(치과보철과), 대한심미치과학회 이사, 서울대치대 동창회 학술부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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