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 서남수 교육부장관께

장관님, 올해 스승의 날은 가장 슬픈 가운데서 맞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교육행정의 수장이신 장관님께 지난 한 달은 몇 년 이상으로 느껴질 지도 모릅니다. 특히 세월호 참사 직후 수행직원의 실수와 장관님의 사소한 부주의로?생긴 일로 뜻하지 않은 구설에?오르시니?무척 속상하실 것 같습니다.

1998년 여름 한겨레신문 교육 담당기자로 당시 국장급이던 장관님을 처음 만난 이후 16년이 훌쩍 지났군요. 우선 고뇌의 시간을 보내고 계실 장관님께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장관님.

평소 제가 생각하고 있는 ‘교육부장관이라는 자리’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지난 11일 밤 EBS에서 ‘선생 김봉두’ 영화를 방영하더군요. 스승의 날을 앞두고 고른 것 같습니다. 두어 번 봤지만 다시 봐도 ‘참 좋은 영화’다 싶더군요. 장관님께서도 보셨지요? 강원도 산골 분교에 부임해온 김봉두 선생은 서울로 되돌아갈 궁리만 하며 수업은 뒷전, 자습시키는 게 일상이지요. 초등학교 시절, 김봉두 학생은 아버지를 모셔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엉덩이에 불이 나도록 두들겨 맞았지요. 아버지가 바로 그 학교 소사였거든요. 담임교사는 교실 창문 밖에서 청소하는 아버지를 가리키며 “이 새끼들아, 공부 안하면 저 사람처럼 학교 소사나 해야 돼”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았지요. 김봉두는 20년이 흐른 뒤 자신이 그토록 미워하던 그때 그 담임교사를 빼닮고 있었던 거지요. ‘자신에게 바칠 촌지’를 마련하려고 학교도 빠진 채 산나물을 온종일 캐 3만원을 봉투에 담아 집에 놓고간 어린 제자 소석이 종아리를 내리치는 김봉두 ‘선생님’ 눈에서는 어느새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지요.

장관님.

장관 취임 후 두 번째 맞는 올 스승의 날, 우리 사회 곳곳 김봉두 선생님과 그의 제자들에게 희망을 심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지금 받고 계신 비판과 비난으로 많이 지치시죠? 억울하기도 하구요. 엊저녁 전화로 말씀 나눴듯, 이해 갑니다.

그래도 장관님, 힘내십시오. 국민들 특히, 꿈과 사랑을 자양분으로 하여 성장하는 학생들 위해, 그리고 그들 위해 눈물과 땀을 아끼지 않은 이땅의 선생님들을 결코 외롭고 지치게 해선 안 되지 않겠습니까?

장관님

저는 장관 가운데 특히 두 자리엔 아무나 앉아서 안 된다고 믿습니다. 바로 국방부 장관과 교육부 장관입니다. 안보와 교육은 우리 사회의 두 축입니다. 안보가 국민들의 현재를 지켜준다면, 교육은 미래를 준비하여 주기 때문입니다. 군인과 선생님들을 최일선에서 지휘하고 도와줘야 하는, 상머슴 역할을 하는 자리라고 봅니다. 당연히 딴 부처와 달리 엄격한 잣대로 검증돼야 하고, 업무역량과 함께 높은 수준의 인품을 지닌 분이 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장관이면서 동시에 국정을 총괄해 논의하는 국무위원이기도 한 분들이 자신의 부처 이해에만 매달리는 건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더군요.?그래서 더욱 이 두 자리가 엄중한 것이라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장군 출신으로 시골 군수를 하고 있는 분 얘기를 소개하지요. 그분은 사단장 시절, 민간인 접촉은 거의 피했지만 관내 초등학교 방문은 빼놓지 않았습니다. 군인들의 위세가 대단하던 25년 전, 별판을 단 세단차에서 내린 장군은 교장실로 들어가 부동자세로 거수경례를 합니다. 교장실 앞에 우루루 몰려있던 학생들 입에선 “교장선생님이 장군보다 높은가봐” 이런 말이 터져나옵니다.

권위는 스스로 만들어 지켜가야겠지만, 옆에서 도와주면 훨씬 더 높아지지 않을까요?

서남수 장관님.

이번?스승의 날, 하루 종일 참 바쁘시겠지요? 학교현장도 여러 곳 들르시겠지요? 한가지 부탁 드리면서 이 글 마치려 합니다. 학교 방문하며 사진 촬영하실 때 선생님들을 맨 앞줄 한가운데 앉으시라고 권하세요. 그리고 내일 말고 다른 자리에서도 선생님들 만나면 꼭 그렇게 챙겨주십시오.

선생님들의 권위를 바로 세워드리는 일, 그것은 제2 제3의 세월호 참사를 예방할 수 있는 대안 중 하나가 될 수도 있겠지요. 장관님 한달이 다 되도록 진도에 머물며 애간장 태우는 그 엄마, 아빠들 내일 밤이라도 찾아 뵙고 두 손 꼭잡고 위로해주시면 더욱 좋겠습니다.

존경하는 서남수 장관님.
퇴임 그날까지 튼튼하고 믿음직한 ‘대한민국호’의 진수를 위해 최선을 다해주시길 기원합니다.

2014년 스승의 날을 앞두고 아시아엔 발행인 이상기 드림

*추신=역대 교육부 장관 상당수가 그만 둔 뒤 대학총장이나 남들 부러워하는 자리로 옮겼더군요. 장관님께선 그런 생각 아예 안 해도 되시니 참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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