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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야 “‘주자학파’라고 아시죠? 그 수괴가 내 꿈!”
*다음은?2012년 6월5일 한비야씨와의 인터뷰 기사입니다. 이 기사는 한비야씨와의 약속에 따라 두번째 인터뷰인 7월31일 기사와 함께?발행됩니다. “나는 꿈을 말하는 사람, 한국은 원조받은 경험 탓에 ‘두손’ 원조 가능” 바람의 딸 한비야가 6월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명륜동 아시아엔(The AsiaN) 사무실을 찾았다. 유엔 중앙긴급대응기금 자문위원으로 스위스 제네바에서 유엔회의를 마치고 귀국한 다음날이다. 네팔 프라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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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수단 떠나는 한비야 “구호는 위험하지만 무한히 창조적인 일”
‘바람의 딸’ 한비야가 아프리카 남수단으로 떠난다. 2년 반만에 현장으로 간다. “가슴이 뛴다”고 했다. “손꼽아 기다리던 그리운 현장”이라고 했다. 7월 마지막 날 오후 서울 종로구 명륜동 아시아엔(The AsiaN) 사무실에 한비야씨가 왔다. 아시아엔과 인터뷰를 하고 또 방송사로 가야하는 바쁜 일정 중이었다. 수단으로 가면 5개월 후에 한국으로 돌아온다. 떠나기 전에 국적도 다양한 아시아엔?가족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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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소영의 CQ] “내 책상 위의 호적등본”
가끔 책상 서랍 속 호적등본을 들여다 본다. 부모형제 조부모 증조부모 이름은 물론 들어 보지도 않았던 할아버지 형제들 이름도 있다. 각자의 생년월일 본적 원적이 있다. 어린시절 아버지가 내는 시험 중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성함 한자로 쓰기가 있었다. 왜 그리 어렵던지 아버지한테 혼나 눈물 찔끔 흘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미국 유학을 위해 짐을 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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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임인사장’ 보낸 NHK 전 지사장···떠났어도 서울은 제2 고향”
일본 NHK 한국지사장으로 3년 반 서울에서 주재원 생활을 마치고 일본으로 다시 돌아간 이토료지 기자가 귀국 후?한달 뒤인 지난 7월27일 경?한국에 있는 지인들에게 감사 편지를 보냈다. 감사 편지의 제목은 바로 ‘이임인사장(離任人事狀)’. 사임, 즉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전화나 이메일이 아닌 카드로 감사 인사를 표했다. 이토 료지 전 지사장은 “서울은 어학연수를 겸한 주재기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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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쓰나미 당시 장애인 희생, 일반인의 2.5배
2012년 7월30일 <교도뉴스>: 쓰나미 당시 장애인 희생, 일반인의 2.5배 지난해 3월 일본 동북부를 덮친 쓰나미 사태로 미야기 현 해안지역에 살던 장애인들의 피해가 일반인 피해자에 보다 2.5배 높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 장애인은 당시 쓰나미 현장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희생된 것으로 보인다고 미야기 현에서 열린 ‘일본 장애인 포럼’에서 밝혀졌다. 이는 미야기 현 1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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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성이 읽고 밑줄 긋다] 쿨하게 한걸음
75년생 작가가, 서른 네 살에 33세 작중화자이자 주인공을 내세워 쓴 소설. 너무 구체적이고 생생한 인물캐릭터들이 내 주변 친구, 가족들을 하나하나 떠올리게 한다. 서른?세 살 때 난 왜 이토록 질풍노도 사춘기인가, 원래 사춘기는 영원히 끝나지 않는건가 아님 사춘기는 비정규직의 특성인가, 이런 고민을 하는 나와 너무나 비슷한 소설 속 서른셋 인물들의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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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현의 중국이야기] 직장인의 처세와 ‘따즈루오위’의 의미
‘대지약우(大智若愚)!’ 노자가 남긴『도덕경』에 보이는 글이다. 이 말은 ‘큰 지혜는 우둔함과 같다’로 풀이한다. 이 풀이만으로는 뭔가 부족한 느낌이다. 무엇이 큰 지혜인가. 진정한 의미에서 큰 지혜를 지닌 자는 자신의 예리함, 총명함을 감추는 법이다. ‘대지약우’란 고상한 문어적 표현으로서 우리에게는 생소하게 느껴진다. 중국 사회에서 “따즈루오위!”라는 말은 생동감 넘치는 구어식 표현이다. 드라마에서도, 방송국 사회자들도, 출연자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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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위원의 포토차이나] 신흥무관학교
일제에 의한 강제 병합이 다가오자 신민회 회원들은 국내에서의 대일항쟁의 한계성을 절감하고 서간도에 제2의 독립운동 기지를 선정할 것과 무관학교를 설립해 독립군을 양성하고 독립전쟁을 전개한다는 방침을 추진했는데 1909년 봄에는 후보지로 유하현(柳河縣) 삼원포(三源浦)를 선정했다. 이회영·이시영 일가와 6형제는 이상용·김동삼·이동녕·김창환·여준·주진수 등 망명한 신민회 회원들과 함께 1911년 4월 성경성(盛京省) 유하현 삼원포 대고산(大孤山)에서 이주한인 300여 명을 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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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귀만의 포토월드]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멋, 박재희
무용에 대한 최초의 기억은 6살 때 쯤 부채춤 영상을 우연히 보게 된 것이다. 그때 받은 충격은 지금도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무용이라는 것에 대해 완전히 매료되었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동요에 맞춰 안무를 친구들에게 가르친 후 학교 장기자랑 같은 대회에 내보냈어요. 지금 생각하면 유희에 불과하지만 춤에 관한 관심은 어렸을 때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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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참 쉽지요] 호텔 실습과 오믈렛
명동 한복판이다. 여기저기서 일본인 상대로 화장품을 파는 소리가 들려오고 길거리에는 외국인 여행객들로 빼곡히 차있다.?설레는 마음 가득하고, 큰 길로 나와 지하철 10번 출구를 찾는다. 바로 앞이 세종호텔이다. 내가 실습을 시작할 세종호텔에서 유니폼과 모자, 오렌지색 스카프를 제공받고 선택 받은 부서 주방에 들어선다. “이곳은 이제부터 여러분이 실습을 시작하게 될 주방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분주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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