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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시] ‘아가야 나오너라’ 박노해

    한 점은 온전하다 씨앗은 온전하다 둥근 것은 작아도 온전하다 둥근 엄마 뱃속의 아가는 처음부터 이미 온전한 존재 신성하여라 너는 우주의 빛과 사랑으로 잉태된 존재 다만 너를 가두고 누르고 한쪽만을 키우려는 낡은 생각이 둥근 원을 깨뜨리고 온전함을 망치는 것이니 둥근 빛의 아가야 지금 작고 갓난해도 너는 이미 다 가지고 여기 왔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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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시] ‘놓아지지 않는’ 김영관

    놓아야 하는데… 내가 놓아줘야 하는데… 미련맞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잡아주는 말 한마디에 다시 움켜진다… 얼굴은 점점 두꺼워지고 마음은 점점 무거워지고 참 바보같다 오늘도 다시 꽉 움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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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시] ‘나무가 먼저였다’ 박노해

    나무가 먼저였다 사람보다도 나무가 오래였다 역사보다도 나무가 지켜줬다 군사보다도 나무가 치유했다 의사보다도 나무가 가르쳤다 학자보다도 나무가 안아줬다 혼자일 때도 나무가 내주었다 죽는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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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시] ‘흰 철쭉’ 박노해

    이 땅의 봄의 전위, 진달래가 짧게 지고 나면 긴 철쭉의 시절이다 화려한 철쭉은 향기가 없다 그런데 어쩌자고 흰 철쭉에서만 이리 청아한 향기가 나는 걸까 4월에서 5월로 가는 아침에 하얀 얼굴에 이슬관을 쓰고 가만가만 내게로 걸어오는 너 의로운 벗들은 진달래 꽃잎처럼 붉은 피를 흩뿌리며 앞서갔는데 난 살아남은 자의 부끄러움으로 이리 무거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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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시] ‘물구나무서기’ 송경상

    두 팔을 짚고 가볍게 한 발로 차올라 구름 낀 하늘과 땅을 바꿔 놓는다 반도를 가로질러 장백산 너머 만주 벌판까지를 두 팔은 떠 받치고 있지만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곳은 하늘이 아닌 빈 공중일 뿐 우리가 지금까지 머리 위에 이고 살아 온 것이 허공일 줄은 몰랐다 팔에 저려오는 무게만큼이나 세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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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시] ‘무임승차’ 박노해

    두 손에 짐을 들고 저상버스를 오르다 고마웠다 미안했다 나의 무임승차가 나 대신 불편한 몸을 끌고 울부짖고 나뒹굴고 끌려가면서 끝내 저상버스를 도입한 휠체어의 사람들 오만하게 높아만 가는 세상을 모두 앞에 고르게 낮춰가는 지상의 작고 낮고 힘없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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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시] ‘엄나무’···”나의 가시에게 묻는다/ 너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새싹을 둘러싼 가시의 기세가 드세다 찔레 가시보다 굵게 아카시 가시보다 촘촘하게 무장하여 어린 생명을 호위하고 있는 것이다 새싹이 무럭무럭 자라서 광합의 일터로 나갈 정도로 어른 잎이 될 즈음 엄나무 가시들은 하나둘씩 떨어져나간다 남아있는 가시들도 사천왕처럼 험상궂은 인상에서 좌정한 부처의 온화한 표정으로 변모한다 때로 그 가시가 호위 중 무참하게 잘려나가 양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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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시, 부활절] ‘빈 무덤 앞에서’ 서삼석

    무덤은 비어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슬피 울었습니다 옷깃을 여미며 살며히 동굴안을 살펴 보았습니다 여인이여 왜! 슬피우느냐 마리아야! 친밀한 그 목소리에 마리아는 랍오니! 대답합니다 그 목소리는 죽었던 영혼을 살리는 생명의 목소리였습니다 빈 무덤 앞에서 부활하신 주님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렇게 나타나셨습니다 너는 나를 믿고 자신을 확증하라고 하십니다 빈 무덤 앞에서 죽음의 정복자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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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시] ‘봄비’ 김흥기 “그대 단비!”

    그냥 시간이 지나면 흐르는 눈물 혹은 그 추운 겨울 뚫고 선뜻 다가서는 安心 그 무엇으로 가릴 수 있을까? 아무런 조건없이 내게 마냥 다가서는 그대 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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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시] ‘벚꽃 쏟아지다’ 송경상

    꽃잎이 쏟아진다 벚꽃잎이 무진장 쏟아진다 금수산 옥순대교, 청풍호수 위에 앞을 못 볼 만큼 그렇게 함박벚꽃잎이 바람에 날리며 온통 가슴 속까지 하얗게 머릿속이 울긋불긋 하얗다 아무 생각없이 그저 좋다 벗꽃 하나, 열, 백의 의미는 없다 그냥 온 세상이 꽃잎이다 온 우주가 꽃잎, 꽃잎이다 나는 없고, 우주가 꽃잎이다 나도 바람에 날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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