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무

노체리안드리자애병원 의무부원장, 외과전문의
  • [박선무의 진료실] 잠 못드는 밤에

    하얀 눈이 내렸다.? 속삭이듯 내리는 눈이 언제 멈출지 모르겠다. 도심의 눈은 회색빛 고층 건물에 비쳐 어두운 회색인데 비해 가평의 눈은 자연을 베개 삼아 내리는 눈이라 그런지 정말 하얗다. 문득 솜이불을 덮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평의 첫 겨울은 이렇게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족히 십리는 될 듯한 먼 산기슭에서 흉물처럼 높게 뻗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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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선무의 진료실] 의사에게 ‘폼잡는 것’이란?

    오늘날 좋은 일이란 돈을 잘 버는 것이 되고 있다. 그것도 아주 자~알 버는 것이다. 그 수단과 방법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는 그나마 폼이라는 것을 중요시하기도 한다. “폼을 잡는다”라고 함은 일의 시작형태를 잡거나, 으쓱대고 뻐기는 예를 말한다. ‘개발에 편자’,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 등은 어울림이 없다는 것, 폼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외제차 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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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선무의 진료실] 환자의 향기

    가난한 이들에게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불편한 것’이라고 체면을 세워주고,?어린아이가 노상방뇨를 하거나 실수하여 대변을 지리면 달래주거나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님을 상기시켜 그 아이의 기 (氣)를 살려 주었다. “아니 누가 이렇게, 누고 아이고, 아침마다 이게 무순 일이고, 치우지도 않고 말이데이.” 동네 아주머니는 어김없이 아침마다 마주치는 배설물에 대고 한마디 하셨다. 그렇다고 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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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선무의 진료실] ‘미스’라고 불러주세요

    어느 날 진료실에 한 할머니가?돌보는 이와 함께 들어왔다. 키는 매우 작았다. 언뜻 보기에 내 허리에도 올 것 같지 않은 작은 키, 눈은?실눈처럼 아주 작게 뜨고 있었다. 얼굴은 둥글면서 오목조목 눈, 코, 입이 제자리에 잘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 예쁜 편은 아니었지만 귀여운 얼굴이었다.?목소리는 힘이 있었고, 약간 쉰 듯한 목소리가 진료실에 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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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선무의 진료실] 봉사는 이기심에서 시작된다

    핸드폰 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진료 중 들려오는 벨소리는 신경을 매우 거슬리게도 했지만, 진동으로 바꾸지 않은 자신을 나무라면서, 걸려온 전화번호를 확인했다. 아니나 다를까 알 수 없는 번호다. 뚜껑을 툭 치면서 끊어 버렸다. 그렇지만 알 수 없는 상대에게 약간의 미안함이 들어 진가 끝나면 확인해 보기로 마음 먹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다시 그 번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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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선무의 진료실] 명의(名醫)를 찾습니다

    어느 병원이 좋은 병원인가, 어느 의사가 좋은가라는 문제는 많은 환자들이 묻고 싶어하는 질문입니다. 제 주변에도 누구의 병세가 이러한데 어떻게 하면 되지요, 혹은 어디로 가야하나요, 라고 물어 오기도 합니다. 저는 세간(世間)에서 말하는 유명의사와는 거리가 멉니다. 오히려 지금 만나는 환자들은 제게 과분합니다.자주 헛다리짚는데 뭐 반갑다고 인사하고 아침에 만나면 ‘선생님’하고 달려오기도 합니다.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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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선무의 진료실] 호칭(呼稱)

    꽃동네에는 정신시설이 있습니다. 한 시설에 많은 가족들이 생활합니다. 여기서는 생활인이라고 부르는 것이 좋다고 하여 그렇게 부르지만 그보다는 같이 먹고 생활하다 보니까 가족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쉽고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정신시설에 있는 모씨는 내가 멀리서 나타나면 멀리서? “아버~지 ~”라고 부릅니다. 그럴 때마다 돌보는 분이나 근무자 혹은 간호사가 ‘아버지가 아니고 선생님’이라고 힘주어 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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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선무의 진료실] 결핵환자의 마지막 인사

    20대 초반의 여성이 있었습니다. 오래전 꽃동네에는 활동성 결핵환자라고 하여 당분간 다른 환자들과 별도로 거주하는 공간으로 상당히 큰 방이 하나 있었습니다. 삼면이 모두 창으로 되어 환기가 잘 되었던 곳으로 다른 방들보다 두배 이상은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의무실-당시 시설에는 적절한 설비도 없었던 시절이라 그렇게 불렀습니다-에 도착해보니 한 20대 초반의 앳된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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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건소에서②] 어느 할머니의 기나긴 여행

    일흔이 넘어서 열심히 수영장을 다니는 할머니가 계셨다. 경상도 사투리에 목소리는 장부 못지않게 컸다. “내 스포츠센터 다닌다. 내가 칠십이 넘어도 아침에 수영갔다가 장보고 그래 한바퀴 돌고 나문 하루가 훌쩍 간다. 그라고 이렇게 보건소 한번 들르는 게 와! 선생 한번 보고 가야제.” 그러던 분이었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스포츠센터에서 수영을 하고 오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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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보건소에서①] 어르신들의 사랑방을 아시나요?

    난데없이 가을비가 쏟아질 듯한 기세다. 날씨가 짓궂게 장난을 친다. 잠시 푸른 하늘에 흰구름이 내비치더니 저녁이 되면서 붉은 노을은 흔적도 없이 잿빛 하늘로 금세 변해 버렸다. 드문드문 내리던 빗방울이 조금 지나니 기세가 점점 드세지기 시작했다. 어릴 적 할머니는 묘하게 비가 오는 것을 어찌 알았는지 미리 빨래를 거둬들이셨다. 가끔 외출하셨다가 돌아 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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