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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복원력 회복 시급하다
세월호처럼 균형 잃고 ‘기우뚱’···무기력 떨치고 다시 일어나야 세월호 참사는 우리들에게 “이토록 철저하게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다”는 걸 가르쳐줬다. 세월호는 여객선 선실을 확장했다. 갑판 위에 철판을 더 붙이는 일이라 무게중심이 올라가고 이에 따라 배가 기울었을 때 복원력이 떨어지리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이런 경우, 배 밑바닥에 평형수를 채워 무게중심을 아래로 내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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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혁의 조선삼국지] 1세기 전 ‘세계 조선산업’ 예측한 日 문예비평가
한·중·일이?21세기?조선산업 주름잡는 이유···線·形·色의 조화 20세기 초 일본의 문예비평가 야나기 무네요시는 중국, 일본, 한국의 예술의 특징을 형태(形態), 색채(色彩), 선(線)으로 정의하였다. 방대함과 다양함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산과 들, 강과 골짜기, 강한 힘과 역사로 이루어진 나라에 알맞은 장엄한 형태의 아름다움이 중국의 예술이라고 정의하였다. ? 그런가 하면 일본의 예술은 맑은 강, 초록 언덕, 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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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혁의 조선삼국지] 조선산업 ‘거인’ 한·중·일의 명암
세계시장 90% 거머쥔 3국 각개약진 중국은 21세기 세계경제에 새 바람을 몰고 왔다. 1991년 4000억 달러였던 중국 GDP는 2000년 1조2000억 달러로 올라섰고, 매년 두자리수 성장을 거듭하면서 2010년 5조 달러를 넘어섰다. 이에 따라 세계 해운시장에도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자원과 에너지 수출국이던 중국이 수입국으로 바뀐 것이다. 해상물동량이 늘어나고 수송거리가 늘어나면서 선박 수요가 급격히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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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혁의 나일강기행] ④ “이집트도, 아프리카도 아닌 ‘누비아인'”
*’황성혁의 조선(造船)삼국지’와 ‘인도기행’, ‘조선사(造船史)’를 연재했던 황화상사 황성혁 대표이사가 이번에는 이집트 ‘나일강’ 여행기를 연재합니다. 이집트를 남북으로 흘러 내리며 찬란한 문명의 중심지가 되었던 나일강은 20년 전 어떤 모습이었는지, 아시아엔(The AsiaN)에서 함께 여행을 떠나 보시기 바랍니다. 1994년 6월13일(월) 새벽 4시. 일어나서 호텔 체크아웃하고 카이로 공항으로 향했다. 7시에 MS0431에 탑승 오전 9시 아스완 (Aswan)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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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혁의 나일강기행] ③ “순하고 친근한 표정의 이집트 석상”
*’황성혁의 조선(造船)삼국지’와 ‘인도기행’, ‘조선사(造船史)’를 연재했던 황화상사 황성혁 대표이사가 이번에는 이집트 ‘나일강’ 여행기를 연재합니다. 이집트를 남북으로 흘러 내리며 찬란한 문명의 중심지가 되었던 나일강은 20년 전 어떤 모습이었는지, 아시아엔(The AsiaN)에서 함께 여행을 떠나 보시기 바랍니다. 1994년 6월12일(일) 아침9시에 늦으막한 아침을 먹고 천천히 걸어 Tahrir 다리를 지나 Tahrir 광장 한 모퉁이에 있는 Cai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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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혁의 나일강기행] ② “피라미드, 폐쇄된 돌덩이 속의 쾌적함”
*’황성혁의 조선(造船)삼국지’와 ‘인도기행’, ‘조선사(造船史)’를 연재했던 황화상사 황성혁 대표이사가 이번에는 이집트 ‘나일강’ 여행기를 연재합니다. 이집트를 남북으로 흘러 내리며 찬란한 문명의 중심지가 되었던 나일강은 20년 전 어떤 모습이었는지, 아시아엔(The AsiaN)에서 함께 여행을 떠나 보시기 바랍니다. 1994년 6월11일(토) 아내는 일찍 일어났다. 하루를 준비하는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나도 깊은 잠에서 조금씩 깨어났다. 벌써 일곱 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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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혁의 나일강기행] ① “일생을 꿈꿔 온 여정”
*’황성혁의 조선(造船)삼국지’와 ‘인도기행’, ‘조선사(造船史)’를 연재했던 황화상사 황성혁 대표이사가 이번에는 이집트 ‘나일강’ 여행기를 연재합니다. 이집트를 남북으로 흘러 내리며 찬란한 문명의 중심지가 되었던 나일강은 20년 전 어떤 모습이었는지, 아시아엔(The AsiaN)에서 함께 여행을 떠나 보시기 바랍니다. 1994년 6월10일(금) 저녁 7시50분 아테네 공항에서 카이로행 OA325기에 올랐다. 6월 5일부터 아테네에서 포세도니아(Posidonia) 박람회를 끝낸 다음이었다.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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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혁의 造船史] ⑤”유연한 사고와 깔끔한 마무리가 조선 르네상스 원동력”
또 한번의 위기가 왔다. 1998년의 외환위기다. 나라의 형편이 좀 좋아지는가 싶으니 돈놀이가 시작되었다. 상호신용금고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기고 이들은 금리가 싼 외국 돈을 빌려다 한국에서 높은 이자로 빌려주기 시작했다. 신용금고 자신들의 신용도 부실한데다 이자만 좇아 돈을 빌려주다 보니 부실채권이 쌓이고 외채를 갚지 못하는 사태가 일어나서 그 액수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IMF가 개입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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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혁의 造船史] ④1987년 노사분규는 ‘민주화+산업화’ 공존 계기
북한과의 관계는 우리 주변에 늘 도사리고 있던 위기의 하나였다. 1970년대 초 우리는 북한보다 살기 어려웠고 해외에서 북한 사람, 특히 김일성 초상 배지를 달고 다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두려웠다. 외국여행 하는 사람들에게 정부는 소양교육이라는 것을 받도록 하였다. “북한 사람은 모두 나쁜 사람이다. 자칫 잘못하면 당신들은 그들에게?해코지 당할 것이다” 라고 가르쳤다. 북한사람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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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혁의 造船史] ③정주영 “불황은 경제구조 재편과정이다”
우리는 제법 잘난 척도 하고 큰 소리도 쳤지만 이불 속 활개짓에 불과했다. 히드로 공항 가는 길의 큰 현판에는 한국 고아를 돕자는 그림이 있었다. 미국 군인들이 시골길을 행진하고 있었고 그들의 발길에서 일어나는 먼지를 뒤집어 쓴 새카맣게 때에 절은 어린 아이가 길가에서 울고 있는 장면이었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20년이 지났지만 그때까지 한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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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혁의 造船史] ②정주영, 지폐속 ‘거북선’ 보여주며 영국지원 이끌어내
1970년 현대중공업이 VLCC 건조를 계획했을 때 처음 협조를 요청했던 곳은 일본이었다. 50년대 중반부터 세계 조선시장을 석권하기 시작했던 일본은 협조를 거절했다. 그것은 예상됐던 일이다. 그들은 여러 가지 이유를 들었지만 경쟁자를 옆집에 두기 싫었던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잘 된 일이었다. 정주영 회장은 망설이지 않고 조선산업의 본산인 영국으로 쫓아 들어갔다. 정 회장에게는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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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혁의 造船史] ①”이병철 정주영 박정희가 ’20-50클럽’ 가입 씨앗 뿌려”
지금 세계의 조선산업은 살아남느냐 영원히 문을 닫아야 하느냐는 기로에 서있다. 이러한 때 한국 조선산업의 어제와 오늘을 돌아보고 미래를 전망하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겠다. 이 세상의 어떤 일도 아무렇게나 일어나는 법이 없다. 기적이 있다고도 하고 불가사의한 일들도 많이 일어난다. 그러나 모든 일은 일어나야 할 필연적인 원인을 가지고 있고 그 일은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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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시아
[황성혁의 인도기행] ⑩ 최초의 불교사원 ‘죽림정사’
1998. 11. 12.(목)?Rajigil ? Nalanda – Patna 라지기르(Rajgir)에 도착한 것은 낮 12시30분이었다. 부다가야(Bodhi Gaya)에서 60km 북쪽으로 떨어진 곳이었다. 라지기르(Rajgir)는 죽림정사(竹林精舍)가 있는 곳이다. 싱(Singh)은 케이블카가 있는 곳으로 우리를 데려다 놓고 산꼭대기에서 하얗게 빛나고 있는 사원을 가리켰다. “저기가 영취산인가.”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의 양산 통도사의 영취산처럼 산 꼭대기가 독수리의 나는 모습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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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시아
[황성혁의 인도기행] ⑨ ‘브라만은 혈연으로 이뤄지지 않아’
1998. 11. 12. (목) 부다가야(Bodhi Gaya) ? 네란자라강(Niranjara River) 일찍 일어나 목욕 후 6시에 다시 마하 보디 사원(Maha Bodhi Temple)을 찾았다. 우선 금강보좌부터 찾았다. 사람들이 적어서 공간이 널찍했다. 108배를 하였다. 보리수 관리인이 웃으며 다가왔다. 1불을 주었다. 그는 보리수 꽃술과 열매를 한웅큼 和의 손가방에 넣어 주었다. 그가 달라고 해서 돈을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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