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

88서울올림픽 앞둔 특전사 707부대 특별훈련…그들은 왜 여장을 하고 걸음걸이를 배웠나

1987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민병돈 특전사령관의 지휘 아래 김익환 707특수임무대대장이 추진한 대테러훈련을 형상화한 이미지. 707 대원들은 인질 구출과 위장 침투 능력을 높이기 위해 여성 복장과 걸음걸이까지 익히는 특수훈련을 실시했으며, 이는 단순한 자세 교육이 아니라 국가적 행사 안전을 지키기 위한 실전형 대비의 한 단면이었다. (AI 생성 이미지)

민병돈 특전사령관 지시, 김익환 707대대장 지휘…모델 전문가까지 초빙한 대테러훈련의 숨은 이야기

최근 특전사 장병들에게 패션모델의 걸음걸이와 포즈를 가르쳤다는 보도를 접했다. 지난 10월 29일 육군 제1공수특전여단에서 실시한 교육이었다. 부대 측은 장병들에게 바른 자세와 걸음걸이를 익히게 하고 자신감을 높이기 위한 인성교육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보도를 접한 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707특수임무대대에서 실시했던 특별한 훈련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 707대대장이었던 김익환 예비역 대령과 최근 전화로 나눈 대화에서다. 김 전 대령은 놀랍게도 1987년 707에서도 남성 대원들에게 여성의 걸음걸이를 가르쳤다고 했다.

그것도 유명 패션모델 업체의 대표를 초빙해 전문적인 교육을 실시했다는 것이다. 남성 대원들에게 여성의 옷을 입히고 걸음걸이와 몸짓을 익히도록 했다. 최근 특전사 모델워킹 교육과 얼핏 비슷해 보이는 대목이다.

그러나 두 교육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바로 훈련의 목적이었다.

1987년은 서울올림픽을 1년 앞둔 시기였다. 냉전이 계속되고 북한의 테러 위협이 심각하게 받아들여지던 때였다. 세계 각국 선수와 관중들이 서울에 모이는 올림픽에서 테러가 발생한다면 인명 피해는 물론 대회 운영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당시 특전사령관은 민병돈 장군이었다. 1987년 1월 제8대 특전사령관에 취임한 민 장군은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대테러 대응능력을 강화하는 데 힘을 쏟았다. 그 지휘 아래 707특수임무대대를 이끌며 실질적인 훈련을 담당한 인물이 김익환 중령이었다.

김 전 대령은 당시 707의 병력이 여성 대원 20명을 포함해 약 520명이었다고 기억했다. 여성 대원들도 대테러작전을 위한 강도 높은 훈련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김 대대장은 당시 여성 대원들의 전투력과 임무 수행 여건을 검토한 결과, 특정한 위장작전에서는 남성 대원들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가 구상한 것은 여장을 한 남성 대원의 대테러작전 투입이었다. “테러 상황에서 인질과 인질범이 함께 있을 때 여성이 접근할 수 있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여성이 들어가 차를 나눠 주거나 다른 일을 하는 척할 수 있지요. 그런데 작전이 개시되면 즉시 대테러 요원으로 임무를 수행해야 합니다.”

김 전 대령의 설명에 따르면 이러한 임무를 위해 남성 대원들을 여성으로 위장시키는 훈련을 실시했다. 단순히 여성의 옷을 입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걸음걸이와 자세, 몸짓까지 자연스러워야 상대가 의심하지 않을 수 있었다.

김 대대장은 전문 모델 교육기관의 대표를 초빙했다. 남성 대원들이 여성처럼 걷고 행동하도록 집중적으로 훈련시켰다. 평소 전투복을 입고 강인한 체력훈련을 받던 특수부대원들이 여성의 걸음걸이를 익히는 모습은 상당히 이색적이었을 것이다.

훈련 성과를 검증하기 위한 시험도 실시했다. 당시 민병돈 특전사령관과 사령부 참모들이 참석한 자리에서 실제 여성 대원들과 여장한 남성 대원들을 함께 세워놓고 누가 남성인지 골라내도록 했다는 것이다.

김 전 대령은 그날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민병돈 사령관님을 모시고 사령부 참모들까지 모두 참석한 자리에서 시험을 했습니다. 실제 여군과 여장한 남군을 구분해 보라고 했는데, 한 명도 골라내지 못했습니다. 전부 여군으로 생각했던 겁니다.”

김 전 대령은 당시 부대원들의 훈련 수준이 그만큼 높았다고 설명했다. 이후 언론인들을 초청한 자리에서도 시범을 보였으며 관련 사진이 남아 있다고 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민병돈 사령관과 김익환 대대장이 왜 이런 훈련을 시켰느냐는 점이다. 여성의 걸음걸이를 배우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다. 테러 상황에서 상대를 기만하고 인질을 구출하기 위한 작전 능력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였다. 훈련의 내용은 임무 수행에 필요한 수단으로 선택된 것이었다.

여성 대테러 요원들의 훈련도 혹독했다. 김 전 대령은 당시 여성 대원 가운데 임미란이라는 이름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언론인과 군 관계자들이 참관한 시범에서 임 대원은 맥주병을 이마로 깨는 동작을 수행했다. 그러나 동작이 제대로 맞지 않아 이마에서 피가 흘렀다고 한다.

이를 지켜본 참석자들은 놀라 훈련을 중단하고 치료부터 하라고 요청했다. 민병돈 사령관도 현장 지휘를 맡은 김 대대장을 불러 해당 대원을 조치하도록 지시했다.

김 대대장은 임 대원에게 다가가 계속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괜찮습니다. 하겠습니다.” 그는 임 대원이 이렇게 답했고 시범을 끝까지 마쳤다고 회고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 대원의 이름과 당시 모습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김 전 대령에 따르면 707은 서울올림픽 주경기장을 포함한 13개 주요 경기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테러 상황에 대비했다. 각 작전팀에 여성 대원들을 함께 배치하는 계획도 마련했다고 한다.

그는 당시 대테러작전의 목표를 이렇게 설명했다. “만약 테러가 발생하면 우리 요원들이 진압하고 올림픽은 계속한다. 그것이 우리의 목표였습니다.”

세계 각국 선수와 관중들의 생명을 지키면서 대회가 중단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김 대대장은 부대장으로 취임하면서부터 부하들에게 국가적 임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했다. “이것을 전쟁으로 생각하라. 너희들이 목숨을 걸고 훈련하고 작전을 수행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그는 부하들의 헌신을 이야기하면서 특히 전역을 연기한 대원들을 떠올렸다.

김 전 대령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부사관 52명이 서울올림픽이 끝날 때까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전역을 1년 연기했다. 장교 5명도 장기복무를 지원했다고 한다. 자신의 군 생활 계획보다 국가적 임무를 우선한 선택이었다. 김 전 대령은 이러한 대원들의 헌신이 충분히 알려지지 않은 점을 지금도 아쉬워했다.

그는 서울올림픽을 준비하고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한 가지 원칙을 지켰다고 강조했다. “공은 부하에게, 책임은 지휘관에게.” 김 전 대령은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었던 표창보다 부하들의 공적을 인정하는 일을 우선했다고 회고했다. 올림픽이 끝난 뒤에도 부하들이 표창을 받을 수 있도록 했으며 자신은 표창을 받지 않았다고 했다.

이 대목에서 당시 민병돈 특전사령관과 김익환 대대장의 관계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민 장군은 1987년 6월 민주화항쟁 당시 군 병력을 동원해 시위를 진압하려는 움직임에 반대한 인물이다. 훗날 공개된 증언에 따르면 그는 군이 국민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사태를 막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당시 707대대장이었던 김익환 중령은 민 사령관이 가장 신뢰하던 부하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1987년의 정치적 격변 속에서 군의 역할과 책임을 놓고 중요한 경험을 함께했다.

민 장군은 1987년 12월 특전사령관직을 떠났다. 따라서 그가 서울올림픽 개막 당시까지 특전사를 지휘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가 사령관으로 재임하는 동안 김익환 대대장과 707 대원들이 추진했던 훈련과 준비는 서울올림픽을 앞둔 대테러 대비 과정의 한 부분이었다.

김 전 대령은 민 장군이 훗날 자신을 잊을 수 없는 부하로 꼽았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그가 회고한 민병돈 사령관은 부하들에게 임무를 부여하면서도 국가와 국민에 대한 군인의 책임을 강조했던 지휘관이었다.

그렇다면 오늘날 특전사의 모델워킹 교육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군인에게 바른 자세와 자신감이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다. 군인도 문화와 예술을 경험할 수 있고, 다양한 인성교육을 통해 소통 능력과 품성을 키울 수 있다. 강인한 군인정신이 반드시 거칠고 획일적인 태도만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어떤 교육이든 목적은 분명해야 한다. 특히 특수부대에서는 교육의 내용이 임무 수행과 어떤 관련이 있고 장병들에게 어떤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1987년 707의 여성 위장훈련은 당시 대테러작전에서 필요하다고 판단한 능력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민병돈 사령관의 지시 아래 김익환 대대장이 훈련을 지휘했고, 실제 작전에 활용할 수 있는지 검증하는 과정까지 거쳤다.

반면 최근 실시된 특전사 모델워킹 교육은 장병들의 자세와 자신감을 높이기 위한 인성교육이었다. 두 교육 모두 걸음걸이를 다뤘지만 목적과 성격은 분명히 달랐다. 군대에서 전투와 직접 관련이 없는 교육을 모두 배제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군인의 전문성에는 전투 능력뿐 아니라 판단력, 책임감, 협력 능력, 시민으로서의 품성도 포함된다.

그러나 군 교육이 본래 임무와 얼마나 부합하는지, 제한된 시간과 자원을 적절히 활용하고 있는지는 언제나 점검해야 한다.

김 전 대령은 통화 말미에 자신이 옛날이야기를 꺼낸 이유를 분명히 했다.

“나를 알리는 데 목적이 있는 게 아닙니다. 군인정신이 국민의식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국민의 군대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그는 군의 존재 이유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데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 말은 단순한 군인정신의 강조를 넘어선다. 군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하고, 지휘관과 장병들은 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전문성과 책임감을 갖추어야 한다는 뜻이다.

1987년 707 대원들이 여성의 걸음걸이까지 익혔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그들은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걷는 법을 배운 것이 아니라 필요한 순간 국민을 구하고 국가적 행사를 지키기 위해 훈련했다.

당시의 모든 훈련방식이 오늘날에도 적절하다는 뜻은 아니다. 시대가 바뀌면 작전 환경과 인권, 안전에 관한 기준도 함께 발전해야 한다. 그러나 변하지 않아야 할 원칙이 있다. 군대의 교육과 훈련은 국민을 보호한다는 본래의 임무를 중심에 두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김익환 전 대령이 강조한 “공은 부하에게, 책임은 지휘관에게”라는 말도 이 원칙과 맞닿아 있다. 군인정신은 단순히 강한 체력을 갖추거나 명령에 복종하는 데서 완성되지 않는다. 자신의 임무를 이해하고 동료의 헌신을 존중하며 결과에 책임지는 태도에서 드러난다.

39년 전 서울올림픽을 준비했던 한 지휘관의 증언은 오늘날 우리에게 다시 질문을 던진다.

군인을 군인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그 답은 걸음걸이의 모양이 아니라 그 걸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으며 무엇을 지키기 위한 것인지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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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

아시아엔 기자, 전 한국기자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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