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 군인들은 휘파람에 맞춰 히틀러를 조롱했다(https://kor.theasian.asia/?p=419374). 그렇다면 우리 군은 어떤 노래로 주적을 조롱할 수 있을까?
육사 33기 출신 지인에게 물었더니 돌아온 답은 짧았다. “체중 140kg을 사용하라.”
군인다운 대답이었다. 긴 설명도, 복잡한 전략도 필요 없었다. 숫자 하나가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 주었다. 백마를 타고 위엄을 과시하는 지도자, 카메라 앞에서 영웅의 풍모를 연출하는 모습이었다.
영국군은 나치 지도자들의 남성성을 조롱하는 가사를 붙여 행진곡을 불렀다. 적의 위엄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도 심리전의 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익숙한 행진곡에 가사를 붙여 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영화 ‘콰이강의 다리’에 나오는 ‘Colonel Bogey March’의 경쾌한 선율을 떠올리며 몇 구절을 지어 보았다.
“백마를 타고 폼을 잡네,
백사십 킬로, 위풍당당!
촬영은 끝나고, 숨은 가쁘고,
무릎도 쉬어 가자 하네!”
막상 써 놓고 보니 조금 우스웠다. 백마 위에서는 천하를 호령하지만, 촬영이 끝나면 숨도 고르고 무릎도 쉬어야 한다. 아무리 높은 권력을 가졌어도 중력까지 명령할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물론 체중만으로 누군가의 건강 상태나 신체적 한계를 단정할 수는 없다. 내가 겨냥한 것은 한 사람의 몸 자체라기보다 백마와 사진을 통해 연출되는 과장된 위엄이었다. 권력자가 스스로 만들어 낸 영웅의 이미지와 평범한 인간의 현실 사이에는 때로 우스운 간극이 생긴다.
그런데 가사를 몇 번 읽다 보니 뒤늦게 다른 걱정이 생겼다. 이 글이 발표되면 자객이 찾아오면 어쩌지?
적의 허점을 찾아 조롱하는 것은 심리전이라면서, 정작 그 조롱이 자신을 향할 가능성은 생각하지 못했다. 남의 위엄을 웃음거리로 만들기는 쉬워도 그 웃음의 대가를 감당하는 일은 별개의 문제였다.
물론 자객이 실제로 찾아올 가능성을 걱정한다기보다, 풍자하는 사람도 자기 농담의 칼끝을 의식하게 된다는 뜻이다. 웃음은 권위의 허점을 드러내지만, 권위는 언제나 웃음을 반기는 것은 아니다.
그러고 보니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상대의 신체를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과 상대가 쌓아 올린 권위를 무너뜨리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효과적인 심리전일까?
아직 답은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는 알 것 같다. 행진곡은 발을 맞추게 하고, 군가는 사기를 북돋우며, 풍자는 때로 두려움을 웃음으로 바꾼다. 그러나 가장 좋은 풍자는 단지 상대를 낮추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과장하고 있는지까지 돌아보게 하는 것이 아닐까.
백마는 여전히 달리고, 행진곡은 계속된다. 나는 그 뒤에서 휘파람을 불다가 문득 뒤를 돌아본다.
혹시 누가 따라오고 있지는 않은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