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등학교 시절 교련 검열을 받을 때면 밴드부의 반주에 맞추어 열병과 분열을 했다. 이후 3사관학교에서 훈련받을 때도 사열 경연대회를 앞두고 행진 연습을 수없이 반복했다. 팔을 앞으로 100도, 뒤로 30도 흔들며 발을 맞추었다. 그 노력 덕분이었을까. 우리 7중대는 경연대회에서 1등을 차지했다.
당시 행진곡으로 자주 접했던 곡 가운데 하나가 영화 《콰이강의 다리》에 나오는 주제 선율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영국군의 행진곡인 ‘커널 보기 행진곡(Colonel Bogey March)’이다. 이 곡은 군악대가 없어도 좋았다. 영화 속 병사들처럼 휘파람만 불어도 발을 맞출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 전 유튜브를 보다가 익숙한 선율에 처음 듣는 영어 가사를 붙인 짤막한 노래를 발견했다. 제목부터 도발적인 노래였다. 가사는 나치 독일의 지도자들을 향해 이렇게 노래한다.
“Hitler has only got one ball, Göring has two but very small, Himmler is rather sim’lar, And poor old Goebbels has no balls at all.”
히틀러에게는 고환이 하나뿐이고, 괴링의 것은 두 개지만 아주 작으며, 힘러도 비슷하고, 불쌍한 괴벨스에게는 아예 없다는 뜻이다. 적국의 지도자들을 남성성의 결함에 빗대어 조롱한 노래다. 점잖은 군악곡에 이런 노골적인 가사가 붙었다는 사실이 우습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궁금증이 생겨 노래의 유래를 찾아보았다. 선율을 작곡한 사람은 영국 육군 군악대장이었던 케네스 J. 앨퍼드(Kenneth J. Alford, 본명 Frederick Joseph Ricketts, 1881~1945)였다. 1914년에 발표된 이 행진곡은 제1차 세계대전 시기부터 널리 알려졌으며, 영화 《콰이강의 다리》(1957)를 통해 더욱 유명해졌다. 영화에서 병사들이 휘파람으로 부는 바로 그 곡이다.
그러나 지금 익숙한 조롱의 가사는 제1차 세계대전 때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이 가사는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던 1939년 무렵 영국 병사들 사이에서 불리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누가 처음 만들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누군가는 전쟁 선전용으로 작사했다고 주장하지만, 그 기원도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았다.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익숙한 행진곡의 선율이 나치 지도자들을 조롱하는 병사들의 노래로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가사에 담긴 내용은 사실일까? 히틀러가 한쪽 고환에 이상이 있었다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제기되었다. 1923년 그의 신체검사 기록에 오른 오른쪽 잠복고환 진단이 그 근거로 거론되기도 한다. 그러나 노래에 등장하는 괴링과 힘러의 신체적 특징, 괴벨스에 대한 묘사까지 의학적으로 확인된 사실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 노래의 목적은 의학적 사실을 전달하는 데 있지 않았을 것이다. 적의 위엄을 깎아내리고, 두려움의 대상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데 있었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한국전쟁 당시의 장면도 떠올랐다. 중공군은 야간 기습 때 꽹과리와 나팔 등을 사용해 소리를 키웠다. 갑작스러운 소음과 대규모 병력의 공격은 방어하는 쪽에 심리적 압박을 주었다. 반면 지평리 전투에서 프랑스 대대는 이러한 공격에 맞서 완강하게 저항했다. 프랑스군의 전통적인 전투 정신을 상징하는 ‘까마롱(Camerone)’의 이름과 외침도 이들의 전투 문화를 생각하게 한다.
전쟁에서 소리는 단순히 명령을 전달하는 수단만은 아니다. 군악은 병사들의 발을 맞추고, 군가는 긴 행군의 고단함을 덜어준다. 때로는 적의 위세를 무너뜨리려는 조롱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상대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웃을 수 있는 존재로 바뀌는 순간, 병사들은 심리적 여유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확성기 방송을 비롯한 심리전은 군사적 수단의 하나로 활용된다. 그렇다면 우리 군은 어떤 방식으로 장병들의 사기를 높이고 적의 위압감을 낮출 수 있을까? 무조건 큰 소리로 위협하거나 상대를 비난하는 것만이 답은 아닐 것이다. 역사와 문화, 유머와 음악을 활용해 병사들의 긴장을 풀고 서로의 결속을 다지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오래전 사열 경연대회에서 발을 맞추던 나는 이제 행진곡의 다른 용도를 알게 되었다. 같은 선율이 때로는 군대의 위엄을 세우고, 때로는 적의 권위를 비웃는다. 전쟁터에서 휘파람은 발을 맞추는 도구이면서 두려움을 이겨내는 방식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번 행군에서 우리가 부를 노래는 무엇이어야 할까. 적을 조롱하는 노래일까, 아니면 함께 걷는 전우의 발걸음을 가볍게 하는 노래일까. 어쩌면 두 가지는 서로 다른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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