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함안 경찰승전기념관에 갔다. 관람객은 나 혼자였다. 직원 한 분이 곁에서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혼자 전시를 둘러보는 동안 키오스크처럼 생긴 화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화면을 터치하자 두 사람의 인터뷰가 나왔다. 한 사람은 당시 대산지구 전투에 참전했던 노경찰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그 전투에 관한 기록을 찾아낸 이 지역 출신의 군의관이었다.

노경찰은 당시의 무기부터 이야기했다. 개인화기가 부족해 구식 무기를 사용했다고 한다. 소대장은 권총과 카빈총을, 여덟 명의 분대장은 8발을 장전하는 M1 소총을, 나머지 경찰관들은 구형 소총을 들었다. 포탄이 여기저기 떨어지고 있었으니 어디로 피할 수도 없었다.
그때 서장이 말했다고 한다. “우리 몸이 가루가 되더라도 오늘 여기서 가루가 되어야지.”
경찰관들은 한 발자국이라도 물러나면 대한민국이 끝난다는 각오로 싸웠다. 그렇게 아홉 시간 반 동안 버텨낸 전투가 경남 함안군 대산면 구혜리 일대에서 벌어진 송도나루터 전투(대산지구 전투)였다.
화면 속 두 번째 증언자는 당시 군의관으로 복무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6·25전쟁이 끝난 지 50년이 지난 뒤 미 제25사단에 서북산지구 전투기록을 요청했다고 한다. 1년 만에 700쪽에 이르는 기록이 우편으로 도착했다.
그는 워커 장군의 말도 전했다. 한국에 와서 전쟁에 참여해 보니 세계 전투사에서 경찰이 이처럼 큰 전과를 올린 사례를 본 적이 없다는 취지의 발언이었다.
그 군의관은 경찰의 전투력을 움직인 원동력으로 애국심을 들었다. 내 민족과 가족, 자신의 미래를 지키려는 마음, 더 나아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는 마음이었다고 했다. 기념관 밖 잔디밭에는 기념탑이 서 있었다. 두 명의 경찰관이 총을 들고 앞으로 나아가는 조각상이 보였다.

나는 그들의 머리를 살펴보았다. 철모가 없었다. 군용 철모 대신 경찰모를 쓰고 있었다. 전쟁터에 나선 군인과 경찰의 차이는 장비와 복장에서도 드러났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마주한 포탄과 총탄은 신분을 가리지 않았을 것이다. 철모도 없이 총을 들고 전진하는 두 경찰관의 모습 앞에서, 나는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그 자리에 섰을지 잠시 생각했다.
기념관 벽에는 경남·전남·전북 경찰관 6,800여 명이 참전했다는 기록이 있었다. 지역별 전투와 피해 상황도 적혀 있었다. 그러나 전사자 가운데는 신원을 확인하지 못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군번도 없이 전선에 나선 경찰관들이 있었다. 그들의 이름과 희생은 얼마나 온전히 기록되어 있을까.
경찰은 평소 민중의 지팡이라 불린다. 그러나 국가의 존망이 걸린 순간, 이들은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이라는 직분을 넘어 총을 들고 전선을 지켰다. 경남에서, 전남에서, 전북에서 모여든 이들이었다. 출신 지역은 달랐지만 그들이 지키려 한 나라는 하나였다.
기념탑 앞을 떠나면서 다시 두 경찰관의 조각상을 바라보았다. 철모 없는 머리 위로는 아무런 보호 장비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총을 든 두 사람의 몸이 앞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그들이 남긴 전투의 기록을 오늘 한 사람이 읽었다. 기록에서 누락된 이름까지 되살릴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들이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만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