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사람

[이상기의 사람읽기] 임만택 라파엘나눔 전 후원회장…”병마 이겨내고 다시 광장에서 만납시다”

2026년 5월 30일 라파엘나눔 감사의날 임만택 회장이 부인과 함께 라파엘센터 앞에서

코로나 한복판, 명동에서 시작된 인연

2021년 4월, 코로나19가 온 세상을 움츠러들게 하던 때였다. 서울 명동성당 안 옛 계성여고 터에 작은 의료봉사 현장이 마련됐다. 재단법인 라파엘나눔이 매주 일요일 노숙인 등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이웃들을 위해 운영하는 홈리스클리닉이었다. 나도 그곳에 봉사를 나갔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봉사라는 거창한 뜻보다는 그곳에서 활동하는 연세 지긋한 형님, 여사님들과 어울리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그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일이었다.

그때 임만택 제노 라파에나눔 전 후원회장을 처음 만났다. 당시 라파엘나눔 후원회장이었던 그는 매주 일요일 빠짐없이 그곳을 찾아 진료를 받으러 온 이웃들과 봉사자들을 따뜻하게 맞이하고 격려했다.

라파엘나눔 홈리스클리닉 사전교육을 봉사자들과 함께 참여하고 있는 임만택 회장(앞줄 왼쪽)

돌이켜보면 참 특별한 인연이다. 코로나가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던 시절, 우리는 오히려 가장 소외된 사람들 곁에서 만났다. 누군가는 진료를 받으러 왔고, 누군가는 의료봉사를 위해 찾아왔다. 나는 그곳에서 아픈 사람들의 사연을 듣고 안내하며, 평소 기자로서 만나던 세상과 조금 다른 삶의 현장을 보았다.

임만택 회장은 그 현장에 익숙한 분이었다. 라파엘나눔의 활동을 오래 뒷받침해 온 임 회장은 어려운 이웃을 대할 때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가 왜 오랫동안 봉사와 나눔의 길을 걸어왔는지 조금씩 알 것 같았다.

라파엘나눔 홈리스클리닉은 2021년 4월 11일 첫 진료를 시작해 6월 13일 당시 염수정 추기경 등이 참석한 가운데 공식 개소식을 열었다. 같은 공간 속 명동밥집을 찾는 노숙인들이 의료진의 진료를 받고, 필요한 경우 상급 의료기관과 연결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그 이후 여름 폭염과 한겨울 혹한 속에도 봉사자들과 환자들은 매주 일요일 그곳에서 만난다.

나는 그 현장에서 한 가지를 배웠다. 누군가를 돕는 일은 무엇을 얼마나 주었느냐보다 그 사람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임만택 회장에게서 그것을 보았다.

임만택 회장이 명동 센터 개소 후 줄곧 진료 받으러 나오는 이아무개씨의 안부를 묻고 있다.

새 구두와 새 외투를 입혀주다

명동 홈리스클리닉에서 만난 사람들 가운데 유난히 기억에 남는 이가 있다. H대를 나온 노숙인이었다. 대학 졸업 학력과 거리에서 지내는 현재의 삶 사이에는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그가 그곳에 이르기까지 어떤 일을 겪었는지 나는 다 알지 못한다. 그러나 분명히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임만택 회장이 그에게 새 구두를 신기고 새 외투를 입혀주던 모습이다. 임 회장은 그를 단순히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으로 대하지 않았다. 동생 챙기듯 살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여러 생각을 했다. 노숙인에게 필요한 것은 먹을 것과 잠잘 곳만이 아닐 것이다. 때로는 누군가가 자신을 한 사람으로 존중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는 것이 더 절실할 수 있다.

새 구두를 신고 새 외투를 입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거리에서 생활하는 사람에게는 잊고 지냈던 자신의 모습을 다시 마주하는 순간일 수도 있다. 임 회장이 그에게 건넨 것은 구두와 외투만이 아니었다. 한 사람에 대한 존중이었고, 다시 사람들 앞에 당당하게 설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나는 기자 생활을 하면서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에 관한 기사를 많이 읽고 썼다. 그러나 현장에서 누군가가 한 사람의 구두와 외투를 직접 챙겨주는 모습을 보는 것은 또 다른 경험이었다.

임만택 회장의 나눔은 그렇게 구체적이었다.

라파엘나눔은 2022년부터 대보름 무렵 서울역 일대 노숙인들에게 부럼 선물을 나누고 있다. 임만택 회장은 아이디어를 낼 뿐 아니라 필요한 재원 마련에도 발벗고 나섰다. 앞줄 안규리 이사장과 임 회장 모습이 보인다.

HIV 감염인과 에이즈 환자, 무연고 노숙인…눈앞의 이웃을 외면하지 않다

임 회장의 봉사는 명동에만 머물지 않았다. 서울 은평구의 ‘천사의 집’을 오래전부터 찾아가 후원해 왔다. 특히 HIV 감염인과 에이즈 환자들을 정성껏 돌본 이야기를 들을 때면 지금도 가슴이 울컥한다. HIV 감염인들은 질병 자체의 어려움뿐 아니라 사회적 편견과 고립으로 고통받기도 한다. 이들에게는 적절한 치료만큼이나 편견 없이 자신을 한 사람으로 존중하고 따뜻하게 대해주는 이웃의 존재가 절실하다.

임 회장은 그런 이들을 찾아갔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했다. 병든 사람을 찾아가는 것도 쉽지 않지만, 사회의 편견 때문에 더욱 외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꾸준히 찾아가는 데에는 특별한 마음이 필요하겠구나. 질병보다 사람을 먼저 보는 마음이다.

임 회장의 봉사 이야기가 내게 유난히 깊게 다가오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는 사회가 쉽게 지나치는 사람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명동에서 H대 출신 노숙인에게 새 구두와 외투를 마련해 주던 모습과 은평구에서 아픈 이들, 에이즈 환자들을 돌본 이야기는 내게 하나의 장면으로 이어진다.

그 중심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었다.

임만택 회장은 누군가의 병명이나 처지보다 그가 어떤 사람이며, 지금 무엇이 필요한지를 먼저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그 마음이야말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크리스마스 앞두고 열린 홈리스클리닉에서. 임만택 회장(오른쪽 3번째)과 곽재복 이사, 안규리 이사장, 이태림 서울대 생활과학대 명예교수, 김명희 후원회장, 이호영 서울대 의대 교수, 박만섭 본부장 모습이 보인다.

30년 넘게 이어온 봉사, 그러나 직함보다 오래 남는 것

임만택 회장은 천주교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에서 30년 동안 소외된 이웃을 위해 활동했다. 그 공로로 2021년 9월 표창을 받았다. 라파엘피아뜨 후원회장으로도 오랫동안 활동하며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이웃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보탰다.

2025년 초부터는 라파엘나눔 후원회장직을 내려놓았다. 사람은 어떤 직함을 갖고 있을 때보다 그 직함을 내려놓았을 때 어떤 모습으로 남는지가 더 중요할 때가 있다. 회장이라는 이름표를 내려놓는다고 수십 년에 걸쳐 쌓아온 마음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라파엘나눔의 의료진과 봉사자들이 이어가는 일에도, 명동에서 임 회장의 손길을 경험한 사람들의 기억에도 그 시간이 쌓여 있을 것이다.

봉사는 특별한 사람들이 하는 특별한 일이 아니다. 자신이 아는 사람을 잊지 않고, 어려운 처지의 이웃을 한 번 더 찾아가고, 아픈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묻는 일이 곧 봉사의 출발이다. 그런 일을 수십 년 이어온 임 회장이 존경스러웠다.

그러나 나에게 임 회장은 봉사 경력이 긴 분이기 이전에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따뜻한 ‘형님’이다.

광장시장에서. 멀리 보이는 이가 임 회장, 오른쪽으로 필자, 이원직 봉사자, 박만섭 본부장, 김근문 실장, 이정식 실장이 보인다.

광장시장에서 나눈 밥 한 그릇

임 회장과 나는 서울 광장시장에서 서너 차례 보신탕을 함께 먹었다. 지금도 종종 그와 마주 앉았던 시간이 생각난다. 특별한 격식을 차린 만남이 아니다. 그저 밥을 먹으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기자로 살아오며 수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나이가 들수록 마음에 오래 남는 사람은 함께 편안하게 밥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이다.

임만택 회장이 그런 분, ‘형님’이다. 그와의 인연이 깊어지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안부를 묻고, 하는 일을 소개하고, 때로는 도움도 청했다. 형님은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응원해 주셨다. 2024년 11월에는 비듬약을 보내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머리 감으면 시원합니다. 잘 사용하고 감기 조심하세요.”

대단한 선물이 아니어도 괜찮았다. 그것을 보내며 상대방의 건강까지 챙기는 마음이 고마웠다.

2025년 8월에는 친구들과 함께 임 회장을 뵙기로 하면서 이런 메시지를 보냈다. “형님, 월요일 이정식+김제완 그리고 저, 4인방이 탕 네 그릇.”

형님은 웃는 얼굴의 이모티콘과 함께 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때는 그런 만남이 앞으로도 얼마든지 이어질 줄 알았다. 그러나 사람의 몸은 늘 마음을 따라주지 않는다.

남을 돌보던 임 회장에게 찾아온 병마

임 회장은 과거 백혈병을 앓았고, 최근에는 암으로도 투병하고 있다. 그 사정을 직접 들었다. 마음이 무거웠다. 오랫동안 아픈 사람을 돌보고, 어려운 이웃의 손을 잡아주던 분이 이제 자신의 병과 싸우고 있다는 사실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남에게 선행을 많이 베풀었다고 병이 비켜가는 것은 아니다. 누구에게나 질병이 찾아올 수 있고, 삶은 언제나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러나 가까운 형님이 아프다는 소식을 들으니 생각이 달라졌다.

이제는 ‘형님’ 자신의 몸을 돌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2025년 말, 나는 임 회장께 한 해를 보내는 인사를 드리면서 이런 말을 덧붙였다. “형님, 탕집 모시고 갈 날 손꼽아 기다립니다.”

2026년 1월 1일, 답장이 왔다. “감사합니다. 새해에는 건강하시고 좋은 일만 있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제가 몸이 좀 안 좋아서 좋아지면 종로에서 만납시다.”

자신의 몸이 좋지 않은데도 먼저 내 건강을 기원했다. 나는 그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1월 29일 다시 안부를 물었다. “형님, 어서 훌훌 털고 나오시길 기도합니다.”

이튿날 임 회장의 답이 도착했다. “감사합니다. 몇 개월 동안 집에서 푹 쉬고 있어요. 빨리 뵙고 싶습니다.” 그 짧은 메시지에서 임 회장의 마음이 전해졌다. 병에서 벗어나 다시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나는 그날부터 임 회장과 다시 광장시장에 갈 날을 기다리고 있다.

투병 중에도 남을 걱정하는 사람

임 회장과 나의 안부는 그 뒤에도 이어졌다. 나는 그의 건강을 걱정했고, 그는 내 일과 건강을 챙겨주었다. 때로는 좋은 글을 보내주고, 때로는 사진이나 영상을 보내주었다. 2026년 3월에는 임 회장이 점심 약속을 청했지만 내가 바로 답하지 못한 일도 있었다. 뒤늦게 사정을 설명하고 송구하다는 인사를 드렸다.

2026년 5월 30일 라파엘나눔 유공자 표창 행사장에서 임만택 회장(왼쪽 두번째). 그는 라파엘나눔 후원회장을 그만 둔 후 이사직을 맡고 있다. 왼쪽은 안규리 이사장, 오른쪽으로 허석훈 신부와 김전 전 이사장.

5월 말 라파엘나눔 행사에서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했다. 그리고 사진을 몇 장 보냈다. 며칠 뒤 임 회장의 메시지가 왔다.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 역시 반가웠다.

건강이 좋지 않은 가운데서도 임 회장은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이어가려 했다. 나는 그 모습에서 회복을 향한 바람을 느꼈다. 임 회장은 자신이 아픈 중에도 다른 사람의 건강을 기원했다. 나는 그런 임 회장이 이제는 마음껏 다른 사람의 사랑과 기도를 받으면 좋겠다.

이제는 돌봄을 받으실 차례입니다

임만택 회장이 라파엘의 2020~2021년 연간보고서에 남긴 글이 떠오른다. 그는 살아 있다는 것, 아내와 마주 앉아 식사하고 지인들의 안부를 받을 수 있다는 것, 어려운 이웃을 돌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평범한 일상에서 기쁨을 찾던 그 글이 임 회장의 투병 소식을 들은 뒤 더욱 깊이 다가왔다.

이제는 임 회장 자신의 건강이 먼저다. 오랫동안 다른 사람을 돌봐온 그가 이번에는 주변의 사랑과 기도를 마음껏 받았으면 좋겠다. 병과 싸우는 고통을 대신할 수 없고 회복을 재촉할 수도 없지만, 그를 아끼는 많은 사람이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그에게 꼭 전하고 싶다.

내가 바라는 임 회장의 재기는 거창한 복귀가 아니다. 편안하게 식사하고, 바깥바람을 쐬고, 보고 싶은 사람들과 웃으며 지내는 일상을 되찾는 것이다. 명동의 라파엘나눔을 다시 찾아갈 수 있다면 더없이 기쁘겠지만, 서두를 필요는 없다. 임 회장이 걸어온 길은 이미 많은 사람의 마음에 남아 있다.

다시 광장시장에서 만날 날을 기다리며

2026년 새해 첫날 임 회장은 내게 말했다. “좋아지면 종로에서 만납시다.” 그 약속을 나는 아직 간직하고 있다.

2021년 4월 코로나 한복판의 명동에서 처음 만난 인연이 어느덧 5년을 넘겼다. 홈리스클리닉에서 시작해 광장시장의 밥상으로 이어진 인연이 내게는 참 소중하다. 그래서 임 회장이 건강을 되찾아 다시 마주 앉을 날이 더욱 기다려진다.

그동안 베풀어온 사랑과 위로가 이제 임 회장에게 돌아오기를 바란다. 부디 병마를 잘 이겨내고 다시 편안하게 웃을 수 있기를 기도한다.

언젠가 광장시장에서 예전처럼 보신탕 한 그릇을 앞에 놓고 세상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그날은 내가 밥 한 끼 대접할 생각이다. 임 회장이 건강한 모습으로 내 앞에 앉아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만택 형님, 광장시장에서 기다리겠습니다.

2024년 3월 홈리스클리닉 3주년 기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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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

아시아엔 기자, 전 한국기자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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