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졸업생이 세 명인 학교가 있다. 함께 공부한 친구들과 운동장에 서서 졸업사진을 찍는다. 그러나 학생 수가 적다는 이유로 변변한 졸업앨범을 만들기 어렵다. 제작업체가 적은 수량의 앨범을 맡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명진은 그런 학교를 찾아간다. 학생들의 얼굴을 찍고 교실과 운동장을 찍는다. 친구들과 함께 보낸 시간도 기록한다. 사진을 골라 편집하고 앨범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건넨다.
그의 사진 봉사는 농촌학교에서 멈추지 않는다. 고명진은 자신이 직접 사진을 찍는 데서 더 나아가 주민들이 마을의 일상을 기록하도록 돕는다. 그 가운데 하나가 ‘동네 방네 신나는 기자단’, 이른바 ‘동방신기’다. 주민들은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고 이웃을 인터뷰한다. 마을의 크고 작은 소식을 직접 기사로 쓴다.
졸업앨범을 갖기 어려운 아이들, 온 가족이 모인 순간을 남기고 싶은 어르신들, 자기 마을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주민들. 그 곁에 고명진이 있다. 1987년 6월항쟁의 한복판에서 한국 현대사를 기록하던 사진기자가 지금 하는 일이다.
영월에서 다시 시작한 생활
고명진은 2011년 강원도 영월로 내려왔다. 서울에서 사진기자로 오래 일한 뒤였다. 처음부터 영월을 정해놓고 귀촌한 것은 아니었다. 퇴직 후 생활비와 주거 문제를 생각하면서 서울 밖의 삶을 준비했다. 처음에는 단양에서 땅을 알아봤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영월에 비어 있는 박물관 공간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군청을 찾아가 운영 조건을 알아봤다. 사진기자로 일하며 모아온 자료와 장비로 기자박물관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처음 몇 장에 불과했던 제안서는 내용을 보완하면서 80쪽 분량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영월에 내려왔다고 곧바로 박물관을 열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기존 공간을 정리해야 했고, 주민들에게도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야 했다.
그는 그 시간을 영월을 배우는 데 썼다. 영월희망농업대학에 다니며 주민들과 함께 공부했다. 농사짓는 사람들을 만나고 지역의 생활을 익혔다. 사진기자였다는 경력을 앞세우기보다 새로운 이웃이 되려고 했다.
귀촌하면서 정한 원칙도 있었다. 객기를 부리지 말고 낭비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서울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가 영월 생활을 대신해주지는 않았다. 농사일을 하다가 장화를 신은 채 군청을 찾아가기도 했다. 지역사회의 일원이 되려면 이곳 사람들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폐교에 문을 연 기자박물관
2012년 5월 24일, 옛 여촌초등학교에 영월미디어기자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교실에는 고명진이 모은 사진과 카메라가 들어왔다. 동료 기자들이 기증한 취재 장비와 현장의 기록도 함께 전시됐다. 카메라와 헬멧, 방독면, 완장과 출입증. 기자들이 역사를 기록하는 데 사용했던 물건들이었다.
그는 관람객들이 전시품을 눈으로만 보고 돌아가기를 바라지 않았다. 아이들이 카메라를 만져보고 기자가 되어 질문도 해보게 했다. 방문객이 자신의 신문을 만들어보는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신문은 기자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자신의 삶을 기록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박물관을 연 초기, 그를 찾았던 기자는 예초기로 풀을 깎고 밭을 가는 고명진 관장을 보았다. 방문객이 찾아오면 일을 멈추고 전시물을 설명했다. 아이들에게는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에게 박물관 운영과 농사일은 별개의 삶이 아니었다. 둘 다 영월에서 시작한 새로운 생활이었다.
졸업앨범을 들고 다시 찾아오는 아이들
고명진이 농촌학교 졸업앨범을 만들기 시작한 데는 사연이 있다. 한 학교의 졸업식에 참석했다가 졸업앨범이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모습을 보았다. 학생이 적다는 이유로 추억을 남길 기회마저 적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주로 졸업생이 10명 미만인 학교를 찾았다. 기존 앨범 제작업체가 맡는 학교와 경쟁하지 않으면서 도움이 필요한 곳을 찾아가려는 것이었다.
학교 전경부터 촬영했다. 아이들의 수업과 놀이, 함께 지낸 친구들의 모습도 담았다. 시간이 흐른 뒤 아이들은 다시 그를 찾아왔다. 초등학생이던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어 박물관에 들렀다. 부모들도 졸업앨범을 기억했다. 아이의 어린 시절을 남겨준 데 감사하다고 했다.
2024년에는 정선의 한 초등학교를 찾아 졸업을 앞둔 학생 세 명의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는 이미 학교와 아이들의 일상을 촬영해놓은 상태였다.
고명진은 농촌에서 이어온 재능 나눔 활동으로 2022년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그러나 그가 더 오래 이야기하는 것은 상이나 표창보다 자신이 찍어준 아이들이 다시 찾아온 일이다.

어르신의 가족사진에서 마을기자단까지
고명진의 사진 봉사는 농촌학교에서 멈추지 않았다. 명절이면 자녀와 손주가 모이는 마을 어르신들의 가족사진을 찍었다. 촬영한 사진을 액자에 넣어 전달했다. 가족이 함께 모이는 날은 많지 않다. 시간이 지나면 누군가는 세상을 떠나고 누군가는 멀리 이사한다. 한 장의 사진이 그날의 가족을 기억하게 한다.
고명진은 자신이 직접 사진을 찍는 일에서 더 나아가 주민들이 기록하는 방법을 배우도록 도왔다. 그 가운데 하나가 ‘동네 방네 신나는 기자단’, 이른바 ‘동방신기’다. 주민들은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고 이웃을 인터뷰했다. 마을의 소식을 기사로 썼다.
자녀와 손주들이 부모나 조부모의 활동을 기사에서 발견했다. 취재를 받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취재하고 기록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고명진은 주민들이 회비를 모으고 스스로 기자단을 운영해나가는 모습을 중요하게 여겼다. 지원사업이 끝났다고 활동까지 멈춰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주민들의 모임은 주민들 자신의 것이어야 했다.

반세기 만에 이어진 선생님의 가르침
2022년부터 그는 마차고등학교 사진동아리 학생들에게 사진을 가르쳤다. 학생들은 모임 이름을 ‘행복한 사진관’으로 지었다. 고명진은 학생들과 사진을 찍고 함께 감상했다. 잘 찍힌 사진인지 평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왜 그 장면을 찍었는지, 무엇을 느꼈는지 이야기했다.
그때마다 고등학교 시절 자신의 사진 촬영을 허락해준 변인식 선생님이 떠올랐다. 누군가의 재능을 알아보고 기회를 주는 일이 한 사람의 삶에 얼마나 오래 남는지 자신이 경험했기 때문이다.
반세기 훨씬 전 학생 고명진이 선생님에게 받은 격려가 영월의 학생들에게 이어지고 있었다.

배우는 사람이 기록하는 사람으로
2026년 9월, 고명진은 영월의 어르신들과 함께 강릉으로 향했다. ‘인생 2막 사진치유-내 삶을 다시 비추다’ 프로그램의 현장수업이었다.
참가자들은 박물관과 바닷가를 찾아 사진을 찍었다. 무엇을 보았는지, 왜 그 장면에 마음이 머물렀는지 이야기했다. 사진을 잘 찍는 기술보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과정이 중요했다.
그 가운데는 오랫동안 교직에 몸담았던 어르신도 있었다. 은퇴 후에도 농사를 짓고 새로운 기술을 배우며 이웃에게 자신의 경험을 나누는 사람이었다.
고명진은 이런 이웃들의 삶에 관심을 기울였다. 주민들이 사진과 글로 자기 이야기를 남기면 그 기록이 다른 주민들에게 배움의 자료가 된다.
그가 강조해온 생각도 여기에 있다. “사진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을 변화시키는 문화.”
그는 주민 문화동아리의 사업계획서를 작성하고 행정 절차를 돕는 일도 한다. 사진을 잘 찍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어려움이 많기 때문이다. 활동할 의지와 능력이 있어도 지원사업을 신청하는 방법을 모르거나 정산 서류를 작성하기 어려운 주민들이 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이런 사람들에게 나눈다.
영월미디어기자박물관은 오래된 카메라를 보관하는 장소이면서 새로운 기록을 만들어내는 공간이 됐다. 그리고 고명진은 이제 박물관이 자신 한 사람의 능력에 의존하지 않아도 계속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기자 시절의 카메라는 사건을 따라 움직였다. 영월에서의 카메라는 사람들 곁에 머문다. 그가 오랫동안 찍어온 것은 어쩌면 사진 그 자체보다 사람들의 삶이었는지도 모른다. 생각할 장소를 만들자는 제안이다. 과거 현장의 기자들을 사진에 담았던 관심이 새로운 계획으로 이어졌다.
고명진의 이름을 널리 알린 것은 민주항쟁의 사진이었다. 그러나 그가 오늘 남기는 사진에는 졸업생 몇 명의 학교와 마을 어르신의 가족, 이웃을 취재하는 주민이 있다. 세상을 크게 움직인 순간과 조용히 이어지는 일상 모두 그의 기록 안에 들어왔다.

그는 영월에 내려와 먼저 주민들과 함께 배웠다. 받은 도움을 사진과 교육으로 돌려주었고, 이제는 주민들이 자기 힘으로 활동을 이어가기를 바란다. 박물관은 그 과정에서 오래된 기록을 보관하는 곳이자 새로운 기록이 생겨나는 곳이 됐다.
나는 그의 암 투병을 소식을 듣고 여생을 물었다. 그는 이웃들과 더 해놓고 싶은 일을 말했다. 삶의 끝을 생각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다음을 준비하고 있었다.
고명진이 찍은 한 장의 사진은 역사의 기억이 됐다. 그가 이웃에게 건넨 사진과 배움은 각자의 삶에 남는다. 그의 기자 생활은 영월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