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 해 전 중국에 갔을 때 황후들의 초상화를 보다가 마황후의 눈썹에 눈길이 머물렀다. 함께 있던 중국 출신 학생이 “이분은 마황후예요. 중국 교과서에도 나와요”라고 했다.
역사에 특별히 관심이 있어서 본 것은 아니었다. 눈썹이 이상하게 눈에 들어왔을 뿐이다. 귀국한 뒤 황후들의 초상화를 다시 찾아보다가 결국 그 눈썹을 주제로 논문까지 쓰게 되었다. 명나라 역사 때문이 아니라 눈썹 때문에 알게 된 황후였다.
그런데 이번 베이징 여행에서 다시 마황후의 이름을 떠올리게 되었다.
자금성이 내려다보이는 경산공원에 올랐다. 이곳은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 숭정제가 나라가 기울자 목을 매어 생을 마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자금성의 붉은 지붕들이 눈 아래로 펼쳐져 있었다.
그곳에서 가이드가 명나라 황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영락제가 조카인 건문제에게서 황제의 자리를 빼앗았다는 이야기였다.
숙부가 조카의 자리를 빼앗았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조선의 세조가 떠올랐다. 세조 역시 조카 단종에게서 왕위를 빼앗은 숙부였다. 이광수의 <단종애사>와 김동인의 <대수양>도 생각났다.
중국에서는 인터넷 검색이 원활하지 않아 그 자리에서 자료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귀국한 뒤에야 영락제와 건문제, 정난의 변에 관한 자료를 조금 찾아보았다. 영락제가 황제의 자리에 오른 것은 1402년, 세조가 왕위에 오른 것은 1455년이었다. 두 사건 사이에는 53년의 간격이 있었다.
세조가 영락제의 일을 알고 있었을까. 조선과 명나라의 관계를 생각하면 그럴 가능성을 떠올려볼 수는 있다. 그러나 세조가 영락제를 본보기로 삼았다고 단정할 만한 자료를 찾아본 것은 아니다.
돌이켜보면 묘한 일이다.
몇 해 전에는 황후의 초상화에서 눈썹 하나를 보았다. 이번에는 그 황후의 아들로 기록된 영락제가 조카에게서 황제의 자리를 빼앗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다시 조선의 세조와 단종으로 이어졌다.
눈썹에서 시작한 생각이 왕위에 닿았다.
가족이라는 가장 가까운 관계도 권력 앞에서는 달라질 수 있는 것일까. 아버지와 아들, 형제와 형제, 숙부와 조카라는 관계보다 황제와 왕이라는 자리가 더 중요해지는 순간이 있는 것일까.
경산공원에서 내려다본 자금성은 말이 없었다. 그 붉은 지붕 아래에서는 황제가 태어나고 죽었으며, 황위가 이어지고 끊어졌다.
나는 문득 생각했다. 인간은 혈연을 먼저 생각하는 존재일까, 아니면 권력을 먼저 생각하는 존재일까. 몇 해 전 내가 바라보았던 것은 그저 한 황후의 눈썹이었는데, 그 눈썹에서 시작한 생각이 여기까지 와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