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요일 저녁 영화 <암살자들>을 보고 나와 걸으면서 휴대전화에 감상을 녹음했다. 처음에는 영화의 역사 인식과 표현 방식에 관해 말하려 했다. 그런데 녹음을 이어갈수록 질문이 내 쪽으로 돌아왔다. 반세기 전 권력 앞에 섰던 기자들을 보면서, 지금 기자인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영화를 보기 전, 역사 왜곡을 지적하는 비판 글들을 읽었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출연했다는 사실도 관람을 결심한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다른 사람의 평가를 읽는 것과 직접 보고 판단하는 것은 다르다. 내 눈으로 보고 싶었다.
내 고교 시절 실제로 발생한 사건을 다룬 영화를 보면서 솔직히 불편했다. 실제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과 설정이 이어질수록, 관객이 기록과 창작을 구분할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됐다. 그 시대를 겪은 사람은 자신의 기억과 대조할 수 있다. 그러나 사건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화면 속 이야기가 역사 자체로 남을 수도 있다.
영화에는 상상과 재구성의 자유가 있다. 실제 인물과 사건을 연상시키는 작품에는 그에 따르는 책임도 있다. 확인된 사실과 창작한 이야기가 뒤섞이면 누군가의 삶과 명예가 훼손될 수 있다. 감독의 문제의식이 분명하더라도 그것이 사실관계를 대신할 수는 없다.
배우를 바라보는 내 태도 역시 돌아보게 됐다. 작품에 출연했다는 이유만으로 배우가 그 안의 모든 역사 해석과 정치적 주장에 동의했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공개적으로 한 발언은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배역을 맡았다는 사실만으로 그의 생각까지 재단하려 했다면, 나 역시 성급했던 것이다.
영화 중반을 지나면서 내 시선을 더 오래 붙잡은 것은 기자들의 모습이었다. 권력의 압박 속에서 무엇을 쓰고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고민하는 사람들. 그들의 용기와 희생은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과거에 옳은 일을 했다는 사실이 이후의 판단과 행동까지 보증하지는 않는다. 나 역시 지난날의 취재와 기사를 꺼내놓는 것만으로 오늘의 책임을 다했다고 말할 수 없다.
과거의 권력을 비판하는 일에도 의미가 있다. 밝혀지지 않은 사실을 찾고, 억울한 사람의 말을 듣고, 기록의 빈틈을 메우는 일은 계속돼야 한다. 동시에 오늘의 권력 앞에서는 말을 아끼고 있지 않은지 살펴야 한다. 과거의 기자들이 처했던 위험을 이야기하면서 정작 내가 느끼는 부담에는 지나치게 관대했던 것은 아닌가.
나는 작은 언론사를 운영한다. 취재할 사람도, 쓸 시간도, 재정도 넉넉하지 않다. 기사 한 편이 불러올 부담을 생각하며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생계와 매체의 지속을 걱정한다. 그러나 그런 현실을 설명하다 보면, 어느 순간 쓰지 않은 이유를 너무 능숙하게 말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권력을 감시하는 기준은 정권에 따라 달라져서는 안 된다. 보수정부에 던졌던 질문은 진보정부에도 해야 한다. 민주주의를 내세우는 정부라면 권한을 어떻게 행사하고 비판을 어떻게 대하는지 꼼꼼히 살펴야 한다. 내가 기대했던 정치인이라고 해서 설명할 책임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지지하는 사람의 잘못을 작게 다루고 반대하는 사람의 잘못을 크게 다룬다면, 독자는 그 차이를 알아챈다.
큰소리 자체가 용기는 아니다. 확인하지 않은 의혹을 사실처럼 쓰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몰아세우는 일로 기자의 책임을 다할 수는 없다. 필요한 질문을 하고, 자료를 찾고, 당사자의 답을 들어야 한다. 답변을 피하면 무엇을 물었고 어떤 답을 받지 못했는지 독자에게 알려야 한다. 잘못 썼으면 바로잡고, 새 사실이 나오면 판단을 고쳐야 한다. 그 과정을 끝까지 감당하는 것이 기자의 일이다.
영화가 끌어낸 분노는 극장 안에서 소비된 채 끝날 수도 있다. 언론에 대입해봤다. 독자를 화나게 하는 기사를 쓰고 반응이 크다고 만족한 적은 없었는가. 그 뒤 사실관계가 더 밝혀졌는지, 잘못된 일은 고쳐졌는지, 피해를 본 사람은 어떻게 됐는지 끝까지 살폈는가.
아시아엔을 발행하는 사람으로서, 함께 일하는 아시아 각국의 동료들이 필요한 질문을 계속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드는 것도 내 책임이다. 어려운 기사의 부담을 기자 개인에게 맡겨놓고 용기만 주문해서는 안 된다. 취재와 확인을 함께하고, 보도한 뒤의 책임도 함께 져야 한다.
<암살자들>에 대한 평가는 작품의 내용과 사실관계를 놓고 이어져야 한다. 내 성찰이 영화의 문제를 덮어주는 말이 될 수는 없다. 다만 영화를 보고 얻은 질문을 감독과 배우에게만 돌려보내고 싶지는 않다. 극장을 나온 뒤에도 내게 남은 것은 기자로서의 부끄러움이었다. 불편했지만, 그래서 내가 해온 일과 하지 못한 일을 돌아보게 됐다.
반세기 전 기자들이 무엇을 했는지 기억하겠다. 그 기억을 안고 오늘 내가 해야 할 질문도 미루지 않겠다. 다시 역사와 언론을 다룬 영화에 관해 글을 쓰게 된다면, 그때는 다짐을 되풀이하기보다 무엇을 묻고 확인했는지 독자에게 전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