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서부전선 지뢰사고와 76년 전 김일성의 명령서…“도로 교차점에 지뢰를 묻으라”

전쟁기념관에 갔다. 아내는 다른 전시를 보러 가고, 나는 6·25전쟁실로 향했다. 그곳에서 한 장의 종이 앞에 발길이 멈췄다.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명령」, 절대비밀 제0070호. 1950년 10월 14일자 명령서였다.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일성과 총정치국장 박헌영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전쟁이 시작된 지 넉 달 가까이 지난 때였다. 9월 28일 서울이 수복된 뒤이기도 했다.

명령서는 앞선 전투에서 범한 오류를 돌아보고 있었다. 적을 밀어붙이는 데 그쳐 퇴각하는 적에게 병력을 보존할 가능성을 주었다는 것, 차지한 진지를 충분히 공고히 하지 않았다는 것 등이었다. 그리고 구체적인 대책이 이어졌다. 전호를 파고, 도로 교차점에 지뢰를 묻고, 측면을 보장할 것. 나는 그 문장에서 한참 눈을 떼지 못했다. 1950년의 전쟁을 기록한 명령서에 ‘지뢰’라는 단어가 이렇게 구체적으로 적혀 있었다.

지뢰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땅속에 묻히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그것이 놓이는 순간부터 길의 의미가 달라진다. 사람이 지나가는 길이 위험한 길이 되고,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땅이 경계해야 할 땅이 된다. 그래서 전쟁에서는 땅을 보는 일이 중요하다. 진지는 단순히 병력이 머무는 장소가 아니다. 도로는 단순히 사람이 오가는 길이 아니다. 교차점은 단순히 두 길이 만나는 곳이 아니다. 그곳에서 다음에 무엇이 일어날지를 생각해야 한다.

나는 성형외과 의사다. 수술할 때 상처만 보아서는 안 된다. 피부에 난 작은 상처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살펴야 한다. 피부 아래에는 피하조직이 있고, 그 아래에는 근육과 혈관과 신경이 있다.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한 경우도 많다. 전방의 땅도 비슷하지 않을까.

풀이 눕고, 흙의 색이 달라지고, 길의 모양이 달라지고, 전에 없던 흔적이 생겼다면 그것을 단순한 풍경의 변화로만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보이는 변화만으로 그 원인을 단정해서도 안 된다. 무엇이 있었는지, 언제 생겼는지, 누가 만들었는지는 확인해야 한다. 특히 지뢰나 폭발물과 관련된 문제라면 더욱 그렇다. 눈으로 본 것과 실제로 땅속에 있는 것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확인하는 과정 자체가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

오래된 명령서는 그 점을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차지한 진지를 공고히 하고, 전호를 파고, 도로 교차점에 지뢰를 묻고, 측면을 보장하라는 것. 전쟁에서 중요한 것은 적을 발견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적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미리 생각하는 것도 중요했다.

나는 문득 ‘소를 잃고 외양간을 고친다’는 우리 속담을 떠올렸다. 소를 잃었다면 외양간은 고쳐야 한다. 그래야 다시 잃지 않는다. 전쟁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미 지나간 일을 되돌릴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일이 남긴 흔적을 살피고, 무엇을 놓쳤는지 돌아보고, 다음에는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를 생각할 수는 있다.

1950년 10월 14일의 명령서가 그랬다. 전투에서 무엇을 잘못했는지 적고, 진지를 어떻게 보강해야 하는지를 적었다. 그 가운데에는 도로 교차점에 지뢰를 묻으라는 구체적인 문장도 있었다. 나는 그 한 문장이 76년의 시간을 건너 오늘의 전방까지 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전쟁은 오래된 문서 속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전쟁은 땅에 흔적을 남긴다. 그리고 그 흔적을 읽어야 하는 사람은 언제나 현장에 있다. 땅의 작은 변화를 알아차리는 눈, 그것을 서둘러 단정하지 않는 신중함, 그리고 확인하는 사람의 안전까지 생각하는 것. 한 장의 명령서를 보고 나오면서, 나는 그것을 다시 생각했다.

▼ 아시아엔 후원계좌 ▼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후원은 아시아엔과 아시아 저널리즘의 발전에 크게 도움이 됩니다.
우리은행 1005-601-878699 (주식회사 아자미디어앤컬처)

황건

이대 해부학교실 초빙교수, 인하의대 명예교수,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세계사' 저자

필자의 다른 기사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본 광고는 Google 애드센스 광고이며, 본 사이트와는 무관합니다.
Back to top button
AI 에이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