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은 생각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하고, 지나가 버린 일을 다시 꺼내어 아파하며, 내가 옳다는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한다. 생각이 생각을 낳고, 생각은 감정을 만들고, 감정은 말이 되어 흘러나온다. 그래서 가족이 부딪치고, 사람과 사람이 갈라지고, 때로는 민족과 나라까지 충돌한다.
문제는 언제나 환경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환경을 바라보는 내 생각이 함정이 될 수 있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잠 4:23)
나는 내 생각이 나를 지켜 줄 것이라 믿었지만, 어느 순간 그 생각이 나를 가두는 감옥이 되었다. 염려라는 방, 두려움이라는 창문, 상처라는 문을 만들어 놓고 그 안에서 세상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은 아무 생각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생각을 기도로 바꾸라는 초청이다. 염려가 찾아오면 기도하고, 두려움이 찾아오면 언약을 붙잡고, 내 판단이 앞서갈 때 그 생각을 그리스도 앞에 내려놓는다.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고후 10:5)
복음과 충돌하는 가장 가까운 것은 멀리 있는 세상이 아니라, 어쩌면 내 안에서 하나님보다 먼저 결론 내리는 나의 육신적인 생각일 수 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 8:6)
그래서 오늘 내 생각을 말씀 앞에 세운다. 내 기준보다 그리스도, 내 경험보다 그리스도, 내 상처보다 그리스도, 내 염려보다 그리스도.
믿음은 내 의지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음에서 시작된다.(롬 10:17) 말씀을 들으니 생각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니 기도가 달라지고, 기도가 달라지니 문제가 그대로 있어도 마음이 달라진다. 그때 비로소 알게 된다. 평강은 문제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는 상태라는 것을.
그러므로 오늘도 기뻐하라.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눈앞의 형편 때문이 아니라 주 안에 있기 때문에 기뻐하라. 염려를 기도로, 생각을 말씀으로, 두려움을 감사로 바꾸어라. 그러면 사람이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평강이 찾아와 내 마음의 문 앞에 망대처럼 서서 내 마음과 생각을 지키리라.
오늘도 나는 내 생각 속에 갇혀 살지 않으리라. 말씀을 듣고, 기도하며, 복음으로 생각하리라. 내 생각이 나를 끌고 가는 인생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생각을 다스리시는 인생. 거기에 참된 자유가 있고, 거기에 생명과 평안이 있다.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 안에서 내 마음도, 내 생각도 평안하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