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때가 제일 즐거웠던 때야.” 이형균 선배는 2002년 중국 언론인들과 함께했던 시간을 이렇게 기억했다. 중국에서 돌아온 뒤 내가 기자상 심사위원장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던 일도 떠올렸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선배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그러나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묻자 한동안 걷는 이야기를 했다.
“넘어지는 게 제일 걱정이야.” 선배는 올해 여든여덟이다. 걷기가 힘들어졌고 기억력도 예전 같지 않다고 했다. 언론계에서 행사가 열려도 되도록 나가지 않는다. 가야 할 자리인데도 못 갈 때가 있다고 했다. 길을 걷다 넘어질까 봐서다.
그날 선배는 지팡이를 가져왔는지 내게 물었다. 가져오지 않았다고 하자 다시 한번 확인했다. 꼭 필요한 모임이 있으면 내가 차로 모시러 오겠다고 했지만, 선배는 이제 외출 자체를 삼가게 된다고 했다.
중국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며 좌중을 웃게 하던 선배였다. 일주일을 함께 다니는 동안 나는 선배가 낯선 사람과도 금세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았다. 그런 선배에게 가까운 곳으로 나가는 일조차 걱정거리가 됐다는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선배는 위암 수술을 받은 뒤 몸이 약해졌다고 했다. 패혈증으로 위중한 순간도 겪었다. 건강 이야기를 하다 보니 먼저 세상을 떠난 동료와 후배들의 이름이 나왔다.
“어떻게 후배들이 먼저 죽냐.”
한 사람을 떠올리면 다른 사람의 이름이 이어졌다. 함께 일하던 기자, 술잔을 나누던 동료, 언론단체에서 힘을 보태주던 선배들이다. 이형균 선배는 남중구 선배(전 동아일보 기자)를 두고 “젠틀맨”이었다고 했다. 서울대관악언론인회에서 함께 활동하던 시절을 이야기할 때는 안병훈 선배의 이름도 나왔다.
안병훈 전 조선일보 편집인이 지난해 가을 세상을 떠났을 때, 이형균 선배는 빈소를 찾아가 엉엉 울었다고 한다. 오래 함께한 동료를 보내는 슬픔이었다. 이제는 한자리에 모이기 어려워진 사람들과 그 시절이 겹쳐 떠올랐을지도 모른다.

지난 9월 24일 추석 전날 필자와 차를 마시던 선배는 자신에게 도움을 준 사람들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 문득 말을 멈췄다. “후회되는 일이 많아. 내게 많은 도움 주신 분들께 보답을 못해 정말 후회돼.”
선배는 눈물을 훔쳤다. 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앞서 선배가 동료들의 이름을 하나씩 꺼낼 때에도 느꼈지만, 그 이름들은 지나간 경력의 일부가 아니었다. 지금도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선배는 정치부 기자와 편집국장을 지냈고 한국기자협회, 서울대관악언론인회, 아시아기자협회에도 참여했다. 그동안 선배에게 도움받은 사람이 많을 것이다. 나 역시 그중 한 사람이다. 그런데 선배는 자신이 받은 도움을 떠올리며 보답하지 못했다고 했다.
누구에게 어떤 빚을 마음에 남겨두고 있는지 하나하나 묻지는 않았다. 다만 그날 선배가 흘린 눈물은 분명히 보았다. 함께 일하고 어울렸던 사람들을 오래 기억하는 선배의 마음도 알 수 있었다.
화제가 술자리로 옮아가자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선배는 와인을 즐겼고, 여러 사람과 어울리는 시간을 좋아했다. 술을 마신 뒤 토하거나 시비를 걸고 싸우는 사람은 딱 질색이라고 했다. 즐겁자고 모인 자리가 불편해지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나는 술 마시면 신이 나.” 나는 그 말을 듣고 예전의 선배를 떠올렸다. 중국 언론인들과의 만남에서도 선배는 먼저 사람들을 웃게 했다. 나는 웃음을 참지 못해 헛기침을 핑계로 잠시 자리를 뜬 적도 있었다. 선배가 한마디 하면 사람들의 굳은 표정이 풀렸다.
선배는 자신을 두고 “재밌게 살려고 노력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 말도 맞다. 하지만 내가 아는 선배에게는 또 다른 모습이 있다. 안병훈 선배의 빈소에서 엉엉 울었던 사람. 지난 9월 24일에는 도움을 준 이들에게 보답하지 못했다며 눈물을 훔친 사람이다.

이 글을 마무리하며 이형균 선배의 두 문장이 번갈아 떠올랐다. “넘어지는 게 제일 걱정이야.” “보답 못해 정말 후회돼.” 하나는 지금의 일상을 말하고, 다른 하나는 오래 함께한 사람들을 향한 마음이다.
※ 이형균 선배에 관한 글은 이번 네 번째 편에서 일단 멈춘다. 그러나 그날 선배가 눈물을 훔치며 한 말은 오래 잊히지 않을 것 같다. 본문에서 ‘선배’라는 호칭을 쓴 것은 필자와 이형균 기자가 언론계 선후배로 맺어온 인연을 반영한 것이다. <필자 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