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합창단에 들어가 연습하고 있다는 지인에게서 글 한 편이 왔다. “솔로가 개인의 역량을 극대화하려는 애씀이라면, 합창은 집단지성에 의한 화합을 통해 각자의 ‘삑사리’를 줄여가는 과정이 아닐까요. 그래서 합창을 하다 보면 즐겁고 행복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뜻밖의 제안을 덧붙였다. “대한민국 국회에 국회의원 합창단을 만들면 어떨까요?”
엉뚱해 보이지만 곱씹을수록 의미 있는 생각이다. 솔로에서는 한 사람의 목소리와 역량이 중요하지만 합창은 다르다. 자신의 음을 정확히 내는 것만큼 옆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 중요하다. 혼자 돋보이려고 목소리를 높이면 전체의 조화가 무너진다. 때로는 음량을 낮추고 다른 파트가 들어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지인은 최재천 교수의 <숙론>을 떠올렸다. 최 교수는 책을 펴내며 국회의원 300명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사인해 선물하고 싶다고 했다. 숙론은 ‘누가 옳은가’를 겨루는 토론이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를 함께 찾아가는 과정이다.
합창도 그렇다. 누가 가장 노래를 잘하는지를 가리는 자리가 아니다. 서로 다른 음역과 음색을 지닌 사람들이 귀를 열고 호흡을 맞춰 하나의 곡을 완성하는 과정이다.
지금 우리 국회에는 300명의 솔리스트가 있는 듯하다. 저마다 자기 목소리를 높이지만 상대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모습은 좀처럼 찾기 어렵다. 정치적 견해가 다르면 말은 금세 고성이 되고, 토론은 해법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상대를 제압하는 싸움으로 변한다.
물론 합창을 정치적 견해의 통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에는 반대 목소리와 때로는 불협화음도 필요하다. 소수 의견은 제거해야 할 ‘삑사리’가 아니라 다수가 놓친 문제를 알려주는 중요한 음일 수 있다.
합창은 모두가 같은 음을 내는 일이 아니다. 소프라노와 알토, 테너와 베이스가 서로 다른 음을 내면서 하나의 화음을 만드는 일이다. 정당과 이념이 다른 의원들이 각자의 입장을 지키면서도 공동체가 나아갈 방향을 함께 찾아야 하는 의회정치와 닮았다.
해외에는 참고할 사례가 있다. 영국 의회합창단은 2000년 창립됐다. 하원의원과 상원의원뿐 아니라 의회 직원들도 참여한다. 정당이 다른 의원들이 같은 악보를 들고 정기적으로 연습하며 매년 여러 차례 공연한다. 브렉시트로 영국 정치가 극심하게 갈렸을 때도 보수당과 노동당, 자유민주당 의원들은 같은 연습실에서 노래했다. 이 합창단에는 정당이 네 개뿐이라는 말도 나왔다.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다.
미국의 ‘의회합창단’은 의원 합창단과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1987년 의회 직원 13명이 지역사회와 음악을 나누기 위해 만들었다. 이후 성인 합창단과 청소년·노년층 합창단을 아우르는 문화공동체로 성장했다. 의회에서 출발한 합창이 시민사회와 세대를 잇는 통로가 된 것이다.
뉴질랜드 의회에서는 매년 ‘Harmony in the House’라는 자선 행사가 열렸다. 여러 정당 의원과 의회 직원들이 노래와 연주 등 각자의 재능을 선보이며 기금을 모았다. 정치적 대립을 없애지는 못하더라도 당파의 경계를 넘어 공동의 목적을 위해 호흡하는 자리였다.
독일 연방의회에도 합창단이 있다. 의원보다는 연방의회 행정부와 교섭단체, 의원실 직원들이 중심이고 전·현직 의원들도 참여한다. 2014년에는 영국 의회합창단과 함께 웨스트민스터홀에서 제1차 세계대전 발발 100년을 기념하는 합동공연을 열었다.
우리 국회에도 비슷한 시도가 있었다. 2015년 광복 70년 KBS 국민대합창 ‘나는 대한민국’을 앞두고 여야 국회의원 14명이 노량진수산시장 상인들과 ‘아침합창단’을 꾸렸다. 가수 조영남과 바리톤 고성현의 지휘로 연습해 그해 8월 15일 서울월드컵경기장 무대에 올랐다.
다만 특정 행사를 위한 프로젝트 성격이 강해 지속적인 국회 문화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국회의원 합창단을 처음 만들자는 제안이 아니다. 짧게 끝난 실험을 초당적이고 지속적인 국회 문화로 되살려보자는 것이다.
처음부터 거창할 필요는 없다. 여야와 비교섭단체 의원 20~30명이 참여해 월 두 차례라도 꾸준히 연습하면 된다. 당 대표나 원내대표가 주도하기보다 초당적 공동운영위원회를 두고 음악은 전문 지휘자에게 맡기는 편이 좋다.
의원만 참여할 이유도 없다. 보좌진과 국회 직원이 함께하고, 때로는 장애인·청소년·다문화가정 합창단과 합동무대를 마련할 수도 있다. 정기공연은 보여주기 행사가 아니라 시민과 소통하고 사회적 약자를 돕는 자선 무대로 만들면 된다.
처음에는 국민의 냉소가 따를 것이다. “노래할 시간에 민생법안이나 처리하라”는 비판이 나올 수도 있다. 당연히 감수해야 한다. 사진 몇 장 찍고 끝나는 일회성 행사가 된다면 하지 않는 편이 낫다.
중요한 것은 공연보다 연습이다. 자기 목소리를 낮추고 옆 사람의 음을 듣는 경험, 틀린 사람을 비난하기보다 전체의 화음을 회복하는 과정, 서로의 호흡이 맞을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핵심이다.
노래가 정치를 곧바로 바꾸지는 않는다. 그러나 함께 노래한 의원들이 본회의장에서 상대의 말을 조금 더 듣고, 상임위원회에서 고성을 조금 줄이며, 민생법안 하나라도 함께 처리한다면 합창의 의미는 충분하다.
합창은 각자의 실수를 감추는 기술이 아니다. 서로의 부족함을 보완해 혼자서는 만들 수 없는 소리를 완성하는 과정이다.
대한민국 국회에도 그런 연습이 필요하다. 300명의 솔리스트가 가끔은 자신의 목소리를 낮추고 옆 사람의 음에 귀 기울이는 모습, 한번 기대해볼 만하지 않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