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군의 날을 맞아 특전사령관과 육사교장을 지낸 민병돈 예비역 중장이 들려준 군의 이야기를 한 편으로 묶었다. 육사 15기 출신인 민 장군은 2026년 6월 6~8일 충북 영동의 한 펜션에서 황건 인하의대 명예교수, 이상기 아시아엔 발행인과 2박 3일간 지내며 군 생활의 경험과 여러 장면을 구술했다. 아래 글은 당시 이야기의 말맛을 살려 재구성했다. <편집자>
장군의 어깨에는 별이 있다. 누구는 그 별을 우러러보고, 누구는 그 앞에서 몸을 사린다. 그런데 군대 안에서는 그 별 앞에 한 글자가 더 붙기도 한다. ‘똥별.’ 거친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을 듣고 계급에 대한 모욕부터 떠올리는 사람과,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돌아보는 사람은 다르다.
민병돈 장군이 들려준 이야기는 별을 달기까지의 성공담이 아니었다. 별을 달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지에 관한 것들이었다. 소위가 사단장의 멱살을 잡고, 소령의 말 한마디에 보안부대가 움직이고, 사단장이 국회 국방위원장의 부탁을 거절한다. 웃음이 나오는 대목마다 군의 권위와 책임에 관한 질문이 따라붙었다.
1. 사단장 멱살 잡은 소위…“똥별 떼시오”
“똥별 떼시오.”
1960년대 초 어느 날, 최전방에서 근무하던 한 포병 소위가 사단장실로 들어가 사단장의 멱살을 잡았다. 소위가 별을 단 장군의 멱살을 잡았으니, 군에서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사건은 아니었다.
민 장군은 이 이야기를 ‘똥별 사건 1호’라고 불렀다.
그의 육사 동기였던 포병 장교 조명제 소위는 당시 전방관측장교로 근무하고 있었다. 보병중대와 함께 최전선에 나가 적의 위치를 파악하고, 포병부대에 사격에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는 임무였다. 통상 일정 기간이 지나면 교대하지만, 조 소위는 오랫동안 같은 자리에 머물렀다고 한다.
그 무렵 부대에서는 사단장이 군수품을 사적으로 빼돌린다는 소문이 돌았다. 미군이 공급한 식용유 등 부대 물자가 밖으로 나가 팔리거나 다른 물품과 교환된다는 이야기였다. 민 장군은 당시의 가난도 함께 떠올렸다. 일부 군인들이 가족의 생활비와 자녀 학비를 마련하려고 부대 물자에 손을 대던 시절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젊은 장교의 눈에는 그런 사정으로 넘길 수 없는 부정이었다.
자동차가 드물던 시절, 조 소위는 전방에서 사단사령부까지 걸어갔다. 전속부관실을 지나 사단장실에 들어간 그는 사단장의 멱살을 잡았다.
“똥별 떼시오.”
뒤늦게 달려온 참모들이 두 사람을 떼어놓았다. 소위가 사단장에게 덤볐으니 당장 엄한 처벌을 받을 상황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간단하지 않았다. 소위를 처벌하려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조사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사단장의 부대 물자 유용 의혹도 함께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다.
민 장군의 회고에 따르면, 지휘부는 조 소위가 오랜 전방 근무로 정신적인 이상을 일으킨 것처럼 사건을 정리하려 했다. 장기 휴가를 주어 부대 밖으로 내보냈지만, 집안이 가난했던 조 소위에게는 나가봐야 머물 곳조차 마땅치 않았다.
이때 군사령부의 한 고참 포병 대령이 나섰다. 그는 조 소위를 군사령부로 전출시켜 처벌을 피하게 했다. 젊은 장교는 그렇게 가까스로 군복을 벗지 않을 수 있었다.
여기서 소위의 행동을 통쾌한 ‘의거’로만 읽을 수는 없다. 부정에 대한 분노가 상관의 멱살을 잡을 권리를 주는 것은 아니다. 군의 지휘체계도 지켜져야 한다. 그러나 질문은 남는다. 소위의 행동을 따지는 만큼 사단장의 의혹도 따졌는가. 부하에게 요구하는 군기를 지휘관 자신도 지켰는가.
민 장군의 기억 속에서 이 사건은 젊은 장교의 무모함과, 조직의 약점을 감추려는 지휘부의 태도가 함께 드러난 장면이었다. 멱살을 잡힌 것은 사단장이었지만, 시험대에 오른 것은 그가 달고 있던 별의 무게였다.
2. 육사 화학 시간에 나온 한마디…“요즘 군대에 똥별이 많아”
이번에는 70년대 초 육군사관학교 강의실이다. 민 장군이 독일어를 가르치던 시절, 같은 학교에서 화학을 가르치던 박한기 소령이 수업 도중 이런 말을 했다.
“요즘 군대에 똥별이 많아.”
길게 준비한 게 아니었다. 군의 현실을 이야기하다가 나온 짧은 한마디였다. 그런데 그 반에는 장군의 아들들이 여럿 있었다. 생도들은 외출해 집으로 돌아가 아버지에게 수업 시간에 들은 말을 전했다.
“아버지, 요즘 군대에 똥별이 많대요.”
“누가 그런 말을 했느냐.”
“박한기 소령이 수업 시간에 그랬습니다.”
화학 시간에 나온 말이 장군들의 집을 거쳐 군 안으로 퍼졌다. 현역 장군을 ‘똥별’이라고 부른 일을 그냥 넘길 수 없다는 분위기가 생겼고, 결국 보안부대에서 조사가 나왔다.
조사를 맡은 보안부대 장교는 공교롭게도 박 소령과 동기였다. 민 장군은 어느 날 빈 강의실을 지나가다가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다. 조사관이 동기생을 불러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사관은 민 장군에게도 물었다. “박한기 소령이 정말 그런 말을 했습니까?”
민 장군은 숨기지 않았다. “그런 말을 했습니다.”
거기서 끝났으면 평범한 사실 확인이었다. 그러나 민 장군은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러나 그 말을 하게 만든 사람이 진짜 똥별 아닙니까.”
조사받는 사람의 말만 문제가 아니라, 그런 말을 나오게 한 군의 현실도 보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민 장군은 이 사건에 장군의 아들을 둘러싼 부정행위 문제와 교수부장의 교관 질책 등이 얽혀 있었다고 회고했다. 발언자만 처벌하려 하면 그 배경까지 드러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절충안이 나왔다. “육사에서는 나가라. 대신 좋은 자리를 주겠다.” 박 소령은 육사를 떠나 중앙정보부 산하 교육기관으로 옮겼다고 한다. 겉으로는 좋은 자리로 전보된 셈이었지만, 민 장군은 사실상 육사에서 밀려난 것으로 받아들였다.
이 이야기에는 씁쓸한 웃음이 있다. ‘똥별’이라는 말이 나왔을 때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별을 단 사람의 행실이 아니라, 그 말을 한 사람의 이름이었다. 물론 교관이 생도들 앞에서 쓰는 언어에는 책임이 따른다. 군 전체를 싸잡아 조롱하는 표현도 신중해야 한다. 그렇다고 발언의 배경까지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높은 계급은 쓴소리를 들을 일이 적은 자리다. 주변에서 말을 아끼고, 부하들이 표정을 살피기 때문이다. 그런 자리일수록 듣기 불편한 말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별의 권위는 비판하는 사람을 내보낸다고 회복되지 않는다. 부하들이 입을 다문 뒤에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면, 조용해진 것은 조직의 문제가 아니라 강의실뿐이다.
3. 국방위원장의 전화…“제가 위원장님 뺨을 때린다면요?”
민병돈 장군이 사단장으로 있을 때였다. 부대에 근무하던 한 방위병이 상관을 때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는 방위병을 구속하도록 했다. 부하의 상관 폭행은 ‘하극상 사건’으로 그냥 넘어갈 수 없다고 판단했다. 군대는 지휘체계와 명령으로 움직이는 조직이니, 이런 일을 눈감아주면 부대의 질서가 흔들린다는 생각이었다.
얼마 뒤 당시 국회 국방위원장의 비서가 찾아왔다. 위원장의 뜻이라며 구속된 방위병을 풀어달라고 했다.
민 장군은 거절했다. “부하가 상관을 구타했습니다. 군기가 무너지는 일인데 어떻게 없었던 일로 할 수 있습니까.”
비서는 돌아갔다. 그러나 부탁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국방위원장이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 그 방위병을 봐달라는 요청이었다.
국방부와 군을 상대하는 국회 상임위원장이 직접 전화해 부탁하면 일선 지휘관으로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민 장군은 “그 위원장 역시 중장 출신의 영향력 있는 정치인”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위원장님,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제가 위원장님 뺨을 때린다면 저를 용서하시겠습니까?”
전화기 너머에서 “그게 말이 되느냐”는 취지의 답이 돌아왔다. 민 장군은 곧바로 말했다. “그러니까 이것도 말이 안 되는 일입니다.” 짧은 문답이었다. 부탁받은 사건을 자기 일로 바꾸어 생각해 보라는 질문에, 예외를 요구하던 논리는 설 자리를 잃었다.
민 장군은 끝내 석방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상대의 직책이나 자신과의 관계가 아니었다. 외부의 부탁으로 병사를 풀어주었을 때 부대원들이 무엇을 배우게 될 것인가였다.
연줄이 닿으면 처벌을 피할 수 있다는 인식이 생기면, 지휘관이 아무리 군기를 강조해도 말에 힘이 실리지 않는다. 같은 잘못을 저지르고도 누구는 처벌받고 누구는 빠져나간다면, 부하들은 규정집보다 인맥부터 살피게 된다.
앞의 소위 이야기와 나란히 놓으면 이 대목은 더 흥미롭다. 부패에 분노했다고 해서 상관 폭행이 옳아지는 것은 아니다. 힘 있는 사람이 부탁했다고 해서 상관 폭행이 없었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니다.
지휘관의 책임은 양쪽 모두를 따지는 데 있다. 부하의 잘못을 다루면서 지휘관의 잘못을 숨겨서는 안 되고, 원칙을 강조하면서 외부의 청탁에 예외를 만들어서도 안 된다.
불편한 전화 한 통을 거절하는 일이 부대 앞에서 긴 훈시를 하는 것보다 어려울 때가 있다. 부하들은 그 순간 지휘관이 무엇을 지키는지 바라보고 있다.
4. 대통령 앞의 “No”, 패튼에게 물은 책임…좋은 장군의 조건
‘똥별’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연히 그 반대편을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면 좋은 장군은 어떤 사람인가.
민 장군은 제2차 세계대전의 군인들을 두고 전해지는 다음 평가를 얘기했다. “병사는 소련 병사가 최고였고, 장교는 독일 장교가 최고였으며, 장군은 미국 장군이 최고였다.”
이를 나라별 군인의 우열을 확정하는 말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민 장군이 이 말을 꺼낸 까닭은 병사와 장교, 장군에게 요구되는 능력이 다르다는 데 있었다.
병사는 전장에서 체력과 인내로 버틴다. 장교에게는 전술과 현장 판단이 필요하다. 장군은 거기에 더해 국가와 군 전체를 놓고 판단해야 한다. 자신의 결정이 가져올 결과까지 책임져야 한다.
민 장군은 미국 대통령과 중동 주둔 미군 지휘관들에 관한 일화도 소개했다. 대통령이 병력 철수를 생각하고 지휘관을 불러 의견을 물었는데, 장군이 반대했다는 이야기다. “미군은 그곳에 계속 주둔해야 합니다.”
다른 장군에게 물어도 답은 같았다. 세 번째 장군도 역시 “노”라고 했다고 한다. 최고 통수권자가 듣고 싶어 하는 답을 짐작해 말하는 대신, 자신의 군사적 판단을 솔직하게 보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장군은 무조건 반대하는 사람도 아니다. 충분한 근거를 갖고 의견을 내며, 자신의 판단이 틀릴 가능성까지 검토하는 사람이다. 소신은 목소리의 크기보다 판단의 근거에서 나온다.
여기에 덧붙일 점도 있다. 대통령에게 반대 의견을 보고하는 것과 적법한 지휘·명령을 거부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군의 전문적인 판단은 문민통제 안에서 제시되어야 한다. 민 장군의 이야기는 그 안에서도 장군이 해야 할 말을 삼켜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읽혔다.
민 장군은 이어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와 조지 패튼의 관계를 이야기했다. 패튼은 뛰어난 전투 지휘관이었다. 빠른 기동과 공격적인 작전으로 이름을 얻었지만, 부하를 대하는 태도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1943년 8월, 패튼은 북아프리카가 아닌 시칠리아의 야전병원에서 전투 피로와 정신적 고통을 겪던 병사 두 명을 각각 폭행했다. 눈에 보이는 상처가 없다는 이유로 그들의 상태를 나약함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사건은 이후 미국에서 큰 논란을 일으켰다.
아이젠하워는 이를 가볍게 넘기지 않았다. 패튼을 질책하고 사과하도록 했다. 동시에 그를 군에서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다. 이후 패튼은 미 제3군을 지휘하며 프랑스에서 빠르게 진격했고, 벌지 전투에서는 포위된 미군을 구하는 작전에 기여했다.
민 장군은 여기서 지휘관의 용인술을 보았다. 잘못에는 책임을 묻되, 그 사람의 능력까지 정확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패튼의 전공이 병사 폭행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전장에서 용맹한 지휘관이라도 병사의 고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부하의 한계를 살피는 능력 역시 지휘 능력의 일부다.
아이젠하워와 패튼의 이야기는 그래서 간단한 미담으로 끝나지 않는다. 사람을 쓰는 책임과 사람을 보호하는 책임을 함께 생각하게 한다. 능력 있는 부하의 잘못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그에게 다시 임무를 맡기면서 조직에는 어떤 기준을 남길 것인가. 최고 지휘관이 감당해야 할 질문들이다.
민 장군이 들려준 네 이야기는 서로 다른 시대와 장소에서 벌어졌다. 전방의 사단장실, 육사의 강의실, 사단장의 전화기 앞, 그리고 전쟁터의 야전병원이다. 그곳마다 계급이 있었고, 계급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국군의 날에는 군의 역량과 장병들의 헌신을 떠올린다. 그 힘을 누구에게 맡길 것인지도 함께 생각할 일이다. 부하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사람, 불편한 비판을 듣는 사람, 청탁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 자신의 판단과 결정에 책임지는 사람이어야 한다.
‘똥별’이라는 말은 웃으며 듣기에는 거칠고, 웃어넘기기에는 무겁다. 노병이 오래된 이야기들을 꺼낸 자리에는 그런 무게가 남았다.
별을 달았다는 사실보다, 그 별 아래에서 부하들이 어떤 군 생활을 하는지가 장군을 말해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