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사람

[이상기의 사람읽기③] 기자 이형균이 정치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김수한의 문장, 따라갈 사람 없었지”

추석 연휴 첫날 이형균(왼쪽) 선배와 필자

추석 연휴 첫날인 24일, 이형균 선배를 찾아뵈었다. 북아현동 댁 앞 커피숍에서 필자의 신간 <왜 다시 아시아인가>를 건네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화제가 기자 생활로 옮아갔다. “기자로 일하면서 본받을 만하다고 생각하신 분은 누구였습니까?” 선배는 김수한 전 신민당 대변인의 이름을 꺼냈다. “정당 성명을 발표하면 그 문장을 따라갈 사람이 없었어. 굉장히 존경했지.”

선배는 1965년 경향신문에 입사해 정치부 기자와 정치부장으로 일했다. 국회와 야당을 오래 출입했고, 이후 미국특파원과 논설위원, 편집국장을 지냈다. 한국기자협회장을 비롯해 언론단체에서도 여러 직책을 맡았다. 이력을 따라가면 긴 기자 생활이 보이지만, 선배와 마주 앉으면 그 시간을 채운 사람들의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그날 선배는 자신이 출입했던 국회의 시절을 하나씩 헤아렸다. 이효상, 백두진, 이재형 등 국회의장을 지낸 이들의 이름도 더듬어 떠올렸다. 서로 다른 시기에 활동한 인물들이 선배의 기억 속에서는 하나의 긴 정치 현장으로 이어졌다.

국회 밖에서는 안국동 윤보선 전 대통령의 자택으로 취재를 갔다. 선배는 그곳에 야당 인사들이 모여 회의하던 장면을 기억했다. 윤보선뿐 아니라 장택상, 유진산, 김영삼 등 당시 정치의 한복판에 있던 이름들이 대화 속에 오르내렸다. 선배가 들려준 기억은 회의의 결론보다 방 안의 풍경에 가까웠다. “조그만 난로를 가운데 놓고 앉았어. 난 창문 옆에 앉아서 덜덜 떨었지.”

정치인들이 난로 가까이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젊은 기자였던 선배는 창가에서 그들의 말을 취재수첩에 받아 적었다. 반세기가 훨씬 지난 지금도 선배는 그날의 추위를 기억했다.

선배는 당시의 아침 회의도 떠올렸다. 당 간부들이 모여 의견을 나누고 기자들이 곁에서 지켜보던 자리였다. 정치인이 성명을 내기 전 어떤 논의를 거치는지, 같은 사안을 두고 누가 무슨 말을 하는지 볼 수 있었다. 발표된 문장뿐 아니라 그 문장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취재할 수 있었다.

김수한 이야기가 나온 것도 그 대목에서였다. 김수한은 신한당과 신민당에서 대변인으로 활동했고, 훗날 국회의장을 지냈다. 선배는 그가 쓴 성명의 문장과 말하는 솜씨를 높이 평가했다. 당의 입장이 대변인의 입을 거쳐 다음 날 신문의 제목이 되던 시절이었다. 선배의 기억에는 그 문장을 쓰던 사람이 남아 있었다.

장택상을 처음 가까이서 본 이야기를 할 때는 선배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해방 직후부터 정치 현장에서 활동한 인물을 직접 취재하게 된 일이 인상 깊었던 모양이다. “대단한 사람들을 내가 보는구나. 기자를 잘했다, 이렇게 생각했어.” 책과 신문에서 이름을 보던 인물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그들이 서로 어떻게 대하는지 볼 수 있었다. 선배에게 기자 생활은 사람을 통해 시대를 배우는 일이기도 했다.

선배는 박정희 대통령을 출입기자로 취재하던 이야기도 여러 차례 들려줬다. 대통령과 기자 사이에 오간 농담이나 담배 한 대의 기억도 있었다. 하지만 이야기는 대개 그 사람이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로 이어졌다. 대통령부터 야당 대변인까지, 선배는 현장에서 마주한 사람의 말과 행동을 기억하고 있었다.

“기자 생활하면서 본받을 사람을 많이 만난 거지.” 김수한에게서는 문장의 힘을 보았고, 여러 정치인이 회의하고 논쟁하는 모습도 지켜봤다. 선배는 그때 만난 사람들을 지금도 구체적인 이름과 장면으로 꺼내놓았다.

2002년 3월 한중기자교류차 중국 방문 당시, 이형균 선배는 고문자격으로 동행했다. 사진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박범길 통역, 한중기 울산경남기협 회장(경남일보 부장), 이원희 기자협회 차장, 이형균 기자협회 고문, 중국기자협회 라오 부장, 강웅철 전북협회장(전북도민일보 부장), 김기태 광주전남협회장(광주타임스 부장), 박기호 부회장(한국경제 차장), 김진호 부회장(경향신문 기자), 이상기 기자협회장, 문관현 기자협회보 편집위원(연합뉴스 기자), 성태환 매일경제 기자, 최종수 대구경북협회장(대구방송 부장) <사진 제공 이원희>

나 역시 이형균 선배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2002년 중국 언론인들과 교류하러 갔을 때다. 일주일 동안 함께 다니며 선배가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가까워지는지 지켜봤다. 공식 일정에서 말이 통하지 않는 순간도 있었지만, 선배가 먼저 웃음을 이끌어내면 자리의 긴장이 풀렸다. 나는 웃음을 참으려고 헛기침을 하다가 잠시 밖에 나가 숨을 고르기도 했다.

중국 출장 마지막 날 저녁, 나는 선배에게 한국기자협회 기자상 심사위원장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일주일을 함께 지내며 사람을 편하게 하는 유머뿐 아니라 맡은 일에 임하는 태도를 보았기 때문이다. 이번 만남에서 그 이야기를 꺼내자 선배가 고개를 끄덕였다. “심사위원장 했지.”

당시 나는 기자상 심사위원들의 출석과 심사 내용을 살피며 위원 구성을 바꾸고 있었다. 심사를 둘러싼 논란이 불거졌을 때 선배도 곤란을 겪었다. 그날 그 이야기가 나오자 우리는 각자의 기억을 맞춰봤다. 즐거운 일만 있었던 시절은 아니었다.

그런데 선배는 한참 이야기한 끝에 말했다. “이상기 회장하고 추억이 되고, 그때가 제일 즐거웠던 때야.” 고마우면서도 마음에 걸렸다. 선배에게 책임을 맡겼던 사람으로서 힘들었던 순간도 떠올랐기 때문이다. 선배는 그 시간을 함께 일하고 사람을 만났던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었다.

선배가 2018년 팔순에 펴낸 첫 책 <세상이 변한 것도 모르시네!>에는 오랫동안 써온 글 81편이 실렸다. 부제는 ‘이형균의 낮은 목소리’다. 사람을 만나고 기억하고 글로 남기는 일은 지금도 선배의 생활 속에 있다.

헤어지기 전, 좌우명이 있느냐고 물었다. “정직하게 살자.” 안국동 윤보선 전 대통령 자택에서 정치인들의 말을 받아 적던 젊은 기자, 김수한의 성명을 읽으며 문장의 힘을 느꼈던 기자, 중국에서 만난 언론인들과 웃으며 대화를 시작했던 선배가 떠올랐다.

선배는 자신이 만난 사람들에게서 너무나 많은 것을 배웠고, 그래서 고맙다고 했다. 내게도 그런 사람이 이형균 선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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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

아시아엔 기자, 전 한국기자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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