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사람

[이상기의 사람읽기④] “평생 받은 고마움에 보답 못해 후회돼”…이형균 기자가 눈물로 기억하는 사람들

2002년 3월 한중기자교류차 중국 방문 당시, 이형균 선배는 고문자격으로 동행했다. 사진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박범길 통역, 한중기 울산경남기협 회장(경남일보 부장), 이원희 기자협회 차장, 이형균 기자협회 고문, 중국기자협회 라오 부장, 강웅철 전북협회장(전북도민일보 부장), 김기태 광주전남협회장(광주타임스 부장), 박기호 부회장(한국경제 차장), 김진호 부회장(경향신문 기자), 이상기 기자협회장, 문관현 기자협회보 편집위원(연합뉴스 기자), 성태환 매일경제 기자, 최종수 대구경북협회장(대구방송 부장) <사진 제공 이원희>

“그때가 제일 즐거웠던 때야.” 이형균 선배는 2002년 중국 언론인들과 함께했던 시간을 이렇게 기억했다. 중국에서 돌아온 뒤 내가 기자상 심사위원장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던 일도 떠올렸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선배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그러나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묻자 한동안 걷는 이야기를 했다.

“넘어지는 게 제일 걱정이야.” 선배는 올해 여든여덟이다. 걷기가 힘들어졌고 기억력도 예전 같지 않다고 했다. 언론계에서 행사가 열려도 되도록 나가지 않는다. 가야 할 자리인데도 못 갈 때가 있다고 했다. 길을 걷다 넘어질까 봐서다.

그날 선배는 지팡이를 가져왔는지 내게 물었다. 가져오지 않았다고 하자 다시 한번 확인했다. 꼭 필요한 모임이 있으면 내가 차로 모시러 오겠다고 했지만, 선배는 이제 외출 자체를 삼가게 된다고 했다.

중국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며 좌중을 웃게 하던 선배였다. 일주일을 함께 다니는 동안 나는 선배가 낯선 사람과도 금세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았다. 그런 선배에게 가까운 곳으로 나가는 일조차 걱정거리가 됐다는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선배는 위암 수술을 받은 뒤 몸이 약해졌다고 했다. 패혈증으로 위중한 순간도 겪었다. 건강 이야기를 하다 보니 먼저 세상을 떠난 동료와 후배들의 이름이 나왔다.

“어떻게 후배들이 먼저 죽냐.”

한 사람을 떠올리면 다른 사람의 이름이 이어졌다. 함께 일하던 기자, 술잔을 나누던 동료, 언론단체에서 힘을 보태주던 선배들이다. 이형균 선배는 남중구 선배(전 동아일보 기자)를 두고 “젠틀맨”이었다고 했다. 서울대관악언론인회에서 함께 활동하던 시절을 이야기할 때는 안병훈 선배의 이름도 나왔다.

안병훈 전 조선일보 편집인이 지난해 가을 세상을 떠났을 때, 이형균 선배는 빈소를 찾아가 엉엉 울었다고 한다. 오래 함께한 동료를 보내는 슬픔이었다. 이제는 한자리에 모이기 어려워진 사람들과 그 시절이 겹쳐 떠올랐을지도 모른다.

2026년 9월 24일 오후 북아현동 자택 앞 커피숍에서 이형균 선배 <사진 이상기>

지난 9월 24일 추석 전날 필자와 차를 마시던 선배는 자신에게 도움을 준 사람들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 문득 말을 멈췄다. “후회되는 일이 많아. 내게 많은 도움 주신 분들께 보답을 못해 정말 후회돼.”

선배는 눈물을 훔쳤다. 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앞서 선배가 동료들의 이름을 하나씩 꺼낼 때에도 느꼈지만, 그 이름들은 지나간 경력의 일부가 아니었다. 지금도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선배는 정치부 기자와 편집국장을 지냈고 한국기자협회, 서울대관악언론인회, 아시아기자협회에도 참여했다. 그동안 선배에게 도움받은 사람이 많을 것이다. 나 역시 그중 한 사람이다. 그런데 선배는 자신이 받은 도움을 떠올리며 보답하지 못했다고 했다.

누구에게 어떤 빚을 마음에 남겨두고 있는지 하나하나 묻지는 않았다. 다만 그날 선배가 흘린 눈물은 분명히 보았다. 함께 일하고 어울렸던 사람들을 오래 기억하는 선배의 마음도 알 수 있었다.

화제가 술자리로 옮아가자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선배는 와인을 즐겼고, 여러 사람과 어울리는 시간을 좋아했다. 술을 마신 뒤 토하거나 시비를 걸고 싸우는 사람은 딱 질색이라고 했다. 즐겁자고 모인 자리가 불편해지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나는 술 마시면 신이 나.” 나는 그 말을 듣고 예전의 선배를 떠올렸다. 중국 언론인들과의 만남에서도 선배는 먼저 사람들을 웃게 했다. 나는 웃음을 참지 못해 헛기침을 핑계로 잠시 자리를 뜬 적도 있었다. 선배가 한마디 하면 사람들의 굳은 표정이 풀렸다.

선배는 자신을 두고 “재밌게 살려고 노력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 말도 맞다. 하지만 내가 아는 선배에게는 또 다른 모습이 있다. 안병훈 선배의 빈소에서 엉엉 울었던 사람. 지난 9월 24일에는 도움을 준 이들에게 보답하지 못했다며 눈물을 훔친 사람이다.

이형균 선배(앞줄 가운데, 오른쪽은 이상묵 서울대 교수, 왼쪽은 이호순 허브나라 원장)가 9월 29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필자(오른쪽)의 <왜 다시 아시아인가?> 북토크에 ‘뜻밖에’ 참석했다. 그는 “이렇게 의미 있는 행사에 당연히 와야지”라고 했다. 이기우 아시아기자협회 이사장의 감사인사에 참석자들이 박수로 화답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유경수 원음방송 전 광고국장, 박영옥 주식농부, 이호순 허브나라 원장, 이형균 선배, 이상묵 서울대 교수, 황성혁 작가, 김유순 미라클오케이어학당 교장, 이창근 광운대 명예교수, 손병주 사진작가, 구명수 전 공사 교수, 임영상 한국외대 명예교수, 조은경 (주)다손 대표이사, 김서권 예수사랑교회 목사, 김영배 예원예술대학교 부총장, 이승수 (사)대한이에스지협회 회장, 총장, 김효겸 전 대원대 총장, 조균석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황인욱 정선지역사회연구소 소장, 이정식 라파엘나눔 실장, 최재형 전 감사원장, 김기주 광주지방국세청장, 김판 국민일보 기자, 변창구 경희사이버대 총장, 황효진 전 인천부시장, 고선윤 일본문화 연구자·번역가, 제니홍 전 주한영국대사관 공보관, 이규엽 한국대성자산운용 대표이사, 희신룡 신화통신사 서울지국장, 선저이 꾸마르 코리아헤럴드 기자, 응우옌 서울대 국제대학원 박사과정, 홍진욱 전 싱가포르 대사, C.P 시토울라 옴레스토랑 대표, 김림마 (사)고려인글로벌네트워크 이사, 노치환 아사카와 노리다카·다쿠미 형제 현창회 사무총장, 고용석 다우출판 대표, 임사라 작가, 김동연 존스홉킨스대학 석사과정, 전찬일 영화평론가, 장규홍 채널인 대표,박기현 세계미래유산기구 이사 등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 수빈 시토울라>

이 글을 마무리하며 이형균 선배의 두 문장이 번갈아 떠올랐다. “넘어지는 게 제일 걱정이야.” “보답 못해 정말 후회돼.” 하나는 지금의 일상을 말하고, 다른 하나는 오래 함께한 사람들을 향한 마음이다.

※ 이형균 선배에 관한 글은 이번 네 번째 편에서 일단 멈춘다. 그러나 그날 선배가 눈물을 훔치며 한 말은 오래 잊히지 않을 것 같다. 본문에서 ‘선배’라는 호칭을 쓴 것은 필자와 이형균 기자가 언론계 선후배로 맺어온 인연을 반영한 것이다. <필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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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

아시아엔 기자, 전 한국기자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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