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형균 선배와 술자리를 함께하면 청와대 출입기자 시절의 이야기가 빠지지 않았다. 그는 1965년 경향신문에 입사해 정치부 기자와 정치부장을 지냈고, 경향신문·문화방송 미국특파원과 논설위원, 편집국장을 역임했다. 그가 청와대를 출입하던 때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이었다.
박 대통령이 서거하기 얼마 전 여름, 이형균 경향신문 기자를 비롯해 안병훈 조선일보 기자 등 전직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초청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그날 박 대통령이 이형균 기자에게 말했다.
“임자, 담배 한 대 피우자.”
대통령과 출입기자가 함께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자 당시 영애였던 박근혜씨가 이형균 기자를 날카롭게 쳐다봤다고 한다. 이 선배는 그 눈빛을 ‘레이저를 쏘는 것 같았다’고 표현했다. 아버지의 건강을 걱정하는 딸의 눈에는 대통령에게 담배를 권하거나 함께 피우는 기자가 마뜩잖았을 것이다.
술자리도 이어졌다. 술기운이 오른 박 대통령이 이형균 기자를 보더니 말했다. “임자 등이 참 좋아. 나 좀 업어줘.”
선배는 박 대통령을 등에 업고 청와대 본관 쪽으로 걸어갔다고 했다. 작달막한 대통령을 그보다 체구가 크다고 할 수 없는 기자가 업고 가는 장면이다. 선배가 특유의 몸짓까지 곁들여 이 이야기를 들려주면 후배들은 금세 웃음바다가 됐다.
이 일화들은 이형균 선배가 술자리에서 후배들에게 여러 차례 들려준 회고다. 대통령과 기자의 관계가 지금과는 달랐던 시대의 풍경이자, 격식 뒤에 가려진 인간적인 한 장면이다.
하지만 선배가 청와대에서 웃을 일만 찾았던 것은 아니다. 대마초 사건으로 방송 출연이 금지됐던 조용필 등 대중예술인들의 해금을 박 대통령에게 직접 건의한 사람도 이형균 기자였다.
1975년 대마초 사건으로 많은 가수와 배우가 활동을 중단해야 했다. 당시 경향신문 이형균 차장은 청와대 기자단 간사를 맡고 있었다. MBC 라디오 제작진과 대마초 연예인들이 처한 상황을 조사한 뒤 박 대통령에게 설명하고 활동 제한을 풀어달라고 건의했다.
박 대통령은 즉답을 피하면서도 “기회를 보아 처리해 주겠다”는 취지로 답했다. 이후 1978년 2월 대마초 관련 가수들의 밤무대 활동을 허용하는 완화 조치가 내려졌다.
대통령에게 연예인의 구제를 직접 건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칫 개인적인 청탁으로 오해받거나 청와대 출입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선배는 활동 기반을 잃은 예술인들의 사정을 대통령에게 전했다.
조용필은 훗날 이형균 기자와 관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감사의 뜻을 담아 ‘돌아와요 부산항에’ 등 세 곡을 무반주로 불렀다고 한다. 일본 후지TV 서울지사장도 그 자리에 함께했으며, 그 인연이 조용필의 일본 진출에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오늘의 기준으로 과장하거나 미화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기자가 자신에게 주어진 대통령 접근 기회를 누구를 위해 사용했느냐는 점이다. 이형균 선배는 개인의 이익을 부탁한 것이 아니라 활동할 길이 막힌 예술인들의 처지를 전달했다.
그는 대통령과 담배를 피우고 술자리를 함께할 만큼 가까이에서 권력을 취재했다. 그러면서도 대통령 앞에서 필요한 말을 했다. 유머를 아는 사람이었지만 현실을 웃음으로만 넘기지는 않았다.

이형균 선배의 이야기는 끝이 없다. 술자리마다 새로운 인물과 장면이 등장했다. 한번 들었던 이야기라도 선배의 억양과 표정, 몸짓이 더해지면 다시 재미있었다. 박정희 대통령 이야기에서 조용필 이야기로, 청와대 이야기에서 미국특파원 시절 이야기로 거침없이 이어졌다.
그 많은 이야기의 밑바닥에는 늘 사람이 있었다. 권력자도 직함을 떼면 한 인간이었고, 사회적 잘못을 저지른 예술인에게도 다시 일어설 기회가 필요했다.
그것이 이형균 선배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