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27일]중국 민족자본 일으킨 룽이런 사망(2005년)

2005년 ‘붉은 자본가’ 룽이런 사망

2005년 10월27일 밤 중국 대표 ‘붉은 자본가’로 불리는 룽이런(榮毅仁) 전 중국 국가 부주석이 베이징에서 89살을 일기로 숨졌다.

중국 최대 투자자문·금융그룹인 중신집단(CITIC)의 전신인 중국국제신탁투자공사의 설립자인 그는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설립되자 그 취지에 공감해 모든 자산을 나라에 기부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밀가루와 면직물로 기업을 일으킨 상하이의 거부 룽더성의 아들로, 1937년 상하이의 세인트조지아대학 역사학부를 졸업한 뒤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았다. 중국공산당이 대륙을 장악하자 친척들은 거의 대부분 해외로 빠져나갔으나, 그는 상하이에 홀로 남아 ‘공사합작’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기업 국유화 작업을 주도했다. 자신의 기업을 공사로 재편했음은 물론이다.

이후 상하이 부시장, 차관급인 국무원 방직공업부 부부장을 거치면서 승승장구하던 그는 1966년 문화대혁명으로 실각했다가 1972년에 복권됐다. 1979년 개혁개방 정책의 도입과 함께 그는 ‘붉은 자본가’로 복귀했다.

덩샤오핑이 경제개혁의 창구 구실을 할 중국국제신탁투자공사를 그에게 맡긴 것이다.?장칭(江靑)을 중심으로 한 상하이방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덩샤오핑은 중국의 대변화를 결심한 뒤 의외의 인물을 전면에 내세웠다.

1993년엔 비공산당원임에도 불구하고 국가 부주석에 선출되는 등 정계에도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중국의 경제중심 상하이에서 룽이런은 주룽지(朱鎔基) 전총리와 함께 ’상하이의 인물’로 사랑받고 있다.

1991년 투르크메니스탄 독립

1991년 10월27일 중앙아시아 투르크메니스탄(T?rkmenistan)공화국이 소련으로부터 완전 독립했다.

이란과 아프가니스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카스피 해에 접해 있는 투르크메니스탄 중앙아시아 남단에 있는 이슬람교 공화국이다. 1990년 8월 주권 선언을 하고 1992년 3월 독립국가연합에 가입, 구 소련 독립국 중 유일하게 통제경제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국토의 대부분은 저평하며 전면적의 약 90%는 카라쿰 사막이다. 기후는 대륙적으로 극도로 건조하고, 여름에는 혹서가 계속된다. 민족구성은 투르크멘인 85%로 다수를 차지한다. 구 소련 제3위의 석유생산국이었다. 천연자원은 석유, 천연가스, 유황 등이다. 공업은 석유의 채굴과 제유, 면공업, 제사업, 유리, 융단업이 발달하였다. 농산물로는 면화, 곡물, 포도, 양모, 누에고치 등이 생산된다. 나라의 동부에서 남부를 싸고도는 카라쿰 운하는 아무다리야강의 물을 카스피해까지 인도하는 세계에서 가장 긴(전장 1,400㎞) 주행(舟行) 관개운하로서, 이미 아시가바트 서쪽까지 개통하였다. 본래 물이 부족한 이 나라에 운하의 물이 주는 혜택은 매우 크다.

섬유 공업이나 면화 재배는 주요한 산업인 이 나라는 1910년경부터 러시아 수공업의 역할지가 됐고, 1916~1918년까지는 반(反)러시아 대폭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1924년 투르크멘 SSR로 소비에트 연방(소련) 구성국의 하나가 된다. 농업 집단화에 반발한 유목민의 저항은 1936년까지 계속됐다.

1990년 8월22일에 주권 선언, 같은 해 10월27일에는 대통령 직접선거를 치러 단독 후보로 나선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가 98.8%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소련으로부터 독립’ 여부를 놓고 치른 1991년 10월26일 국민투표에서 94.1%가 찬성, 이듬해인 1992년 10월27일에 독립했다. 투르크메니스탄의 독립기념일은 당시 독립선포일인 10월 27일~28일을 독립기념일로 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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