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기술로 제2의 韓流 일으킬 터”

<인터뷰> 안남성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장…“청정에너지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정신”

“걸그룹 ‘소녀시대’의 공연을 보다가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한류(韓流)는 대중문화 분야에서만 있는 게 아니다’ 그런 생각을 했죠. 에너지 기술이라고 한류 왜 못하나 생각한 거죠.”

지난 9월28일 아침 서울 삼성동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KETEP, 에기평) 7층 원장실에서 만난 안남성 원장은 약간 들뜬 표정으로 최근 에기평이 역점을 두고 추진하고 있는 K-ET(Korean Energy Technology)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해줬다. K-ET는 K-Pop을 빗대 지은 한국에너지기술 한류(韓流) 추진사업의 약자다.

안 원장은 인터뷰 내내 수십 년 에너지 분야에서 일해 온 ‘에너지통’ 답게 에너지의 A~Z에 대한 통찰을 술술 풀어 내놨다. 무엇보다 ‘공유가치 창출 경제(CSV)’와 같은 최근 경제경영학에 대한 안원장의 높은 관심에서 딱딱하고 어려운 에너지기술 분야를 사회학, 나아가 인문학과 접목시켜 대중적 이해를 높이려 애를 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음은 안 원장과의 일문일답.

–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곧 이어진 재정위기로 지구촌 전체에서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나 관심이 위축됐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 신재생에너지에 관해서는 유럽이 앞서갔고 지구촌의 역할모델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럽 재정위기로 주춤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미국도 세일가스(shale gas)가 대체에너지로 급부상하면서 풍력발전산업이 직격탄을 맞았다고 합니다. 주로 풍력이나 태양광 부품업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 화석연료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데 각국 정부나 기업들이 경기가 침체됐다는 이유로 대체에너지 투자에 소극적이라는 점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 기존의 연료들과 마찬가지로 신재생에너지 역시 보조금을 필요로 하는 산업이기 때문입니다. 가격이 중요한데 화석연료에 견줘 신재생에너지의 가격이 높기 때문에 보조금을 줘야 생산과 재투자의 선순환을 통해 기술도 진보하고 그래야 안정적인 대체에너지시스템으로 정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각국이 재정이 어려워 당장은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보조금을 주기 어려운 형편이므로, 침체에 빠진 것으로 보면 됩니다.

– 이런 추세가 계속되는 것인가요?

▲ 글쎄요. 당분간은 후퇴할지 몰라도 ‘시대정신’을 거스를 수는 없을 것입니다. 특히 연구개발(R&D)측면에서 후퇴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연구개발은 지금 당장 상품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5~10년을 보고 투자하는 것입니다.

한국 정부도 매년 3000억 원을 신재생에너지 R&D에 투자해왔습니다. 에너지보급 분야에도 2000억 원 정도를 지원해왔고, 앞으로도 이 정도 수준의 예산지원이 계속 될 것 같습니다.

– 신재생에너지의 발전원가가 더 많이 들어가서 기존 화석연료에 대한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 사실이 아닙니다. 모든 에너지 인프라는 막대한 보조금이 투입된 산업입니다. 정유나 가스, 석탄이 그렇고 원자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화석연료가 가장 저렴할 수밖에 없는 에너지시스템입니다. 가스와 석유는 상용 인프라가 이미 다 돼 있다는 의미지요. 신재생에너지와 발전원가를 비교하려면 똑같이 보조금을 투입해 상용화를 이룬 뒤 비교를 해봐야 공평한 것입니다.

– 정부가 꾸준히 지원하면 신재생에너지 시스템이 자리를 잡을 수 있을까요.

▲ 비용을 낮추는 게 중요합니다. 기술혁신과 비즈니스 모델 등 2가지 방식으로 비용을 낮출 수 있습니다. 태양광도, 풍력도 기술혁신 측면에서는 ‘하나의 S곡선에서 다른 S곡선으로 분리되는 점(Separation)’에 와 있습니다. 그런데 명확한 정책이 잡히질 않은 상황이죠.

비즈니스 모델로 보완해야 합니다. 신재생에너지는 기술은 충분한데 부지(敷地) 선정, 프로젝트 파이낸싱, 고객 접촉 등 비즈니스적으로 접근해야 실질 비용을 낮출 수 있는 것입니다. 지역에 맞는 사이트 평가, 파이낸싱 등을 연구개발로 지원하면 분명한 성과가 있을 것입니다. 에기평도 그런 분야 연구개발에 지원할 것입니다.

– 에너지 전환에 ‘시대정신’이라는 거대 화법을 동원하셨는데.

▲ 지금은 화석연료가 가장 쌀 수밖에 없는 시스템입니다. 수십년동안 거기에 엄청난 정부보조금을 쏟아 부은 결과지요. 신재생에너지도 이제 그렇게 재정을 투입해 하나의 안정된 에너지시스템으로 가고 있습니다. 이것을 시대정신이라고 한 것이며, 이것은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당분간은 후퇴할 수 있을지 몰라도 시대정신을 거스를 수는 없는 법이지요. 한국도 차기 정부에서 누가 집권하든 신재생에너지라는 이 ‘시대정신’을 거스를 수는 없으리라 장담합니다.

–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이 최근 자신의 저서 <제3차 산업혁명>에서 “특정 에너지시스템에는 항상 특정한 소통시스템이 조응한다”고 주장했는데요.

▲ 바야흐로 사회적 가치(Social Value)의 시대이니까요. 이윤극대화를 지상가치로 여기던 기업들마저도 ‘공유가치 창출(Creating Shared Value, CSV)’을 지속가능 경영의 새로운 비전으로 내놓고 있습니다. 항상 기술혁신이 일어나면 다른 모든 부분들이 함께 혁신합니다. 에너지를 중심에 놓고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에너지(Energy)와 수송(Transportation), 동력(Power), 소통(Communication) 등 4가지 시스템은 톱니바퀴처럼 얽혀 있습니다.

자연에너지와 에너지효율 극대화, 재생에너지 시대의 공동체적 특징(Governance)은 분산형 전력시스템, 소규모 전력설비, 지역 자급적 에너지 생산과 배분, 친환경 에너지 등입니다.

물론 100%는 아니지만 이런 에너지시스템으로의 전환과 혁신이 반드시 이뤄질 것이고, 소비자가 인터넷을 통해 전기를 사고파는 시대가 의외로 빨리 올 수도 있습니다. ‘시대정신’ 맞죠?

– 한국은 최근 석탄화력 발전소 증설 등 청정에너지 정책이 일시적 후퇴 조짐을 보입니다. 혹시 한국 정부가 청정에너지의 발전에 대해 지연 로비를 펼쳐온 정유사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아닌가요.

▲ 신재생에너지를 정책적으로 꾸준히 부양한다면 절대 화석연료와의 경쟁에서 뒤지지 않겠지만, 당장은 기존 에너지 시스템의 근간을 완전히 부정하고 새로 시작할 수는 없습니다. 척추가 강해야 다른 신체기관도 근육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실적으로 2100년이 되도 석탄 비중이 50%를 차지할 지도 모릅니다. 한국은 석유와 가스, 원자력이 일정 비율로 혼재하면서 신재생에너지의 성장을 모색하는 포트폴리오를 유지해야 한다고 봅니다. 사실 당장은 한국의 자연에너지 자원인 바람과 태양광도 약하기 때문에, 여러 분야의 기술개발과 비즈니스 모델이 뒷받침 돼야 목표(2030년까지 전체 에너지 중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11.5%로 확대)를 달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최근 K-Pop에 비견되는 K-ET를 주창하고 계신데요.

▲ 한국의 대중문화를 수출하는 한류(韓流)에서 영감을 받아 한국의 에너지기술을 수출해 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태양광이나 풍력도 선진국과 후진국이 똑같은 수준의 품질로 서비스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아프리카, 동남아처럼 전력공급이 시급한 곳에는 완벽한 도시형 신재생에너지 공급시스템이 아니더라도 당장 전기를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의 기술로 접근이 가능합니다. 우리가 보유한 신재생에너지 기술로 전기가 부족한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 일부 지역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요즘 에너지복지라는 개념이 꼭 우리나라 안에서만 통용될 문제는 아닙니다. 저개발국의 에너지 복지를 우리가 도와주면 그것이 인연이 돼 그 나라가 발전하고, 그 결과 더 큰 기술수출을 할 영업기반이 마련되는 셈이니까요.

– 구체적으로 무엇이 에너지기술 한류인가요.

▲ 신재생에너지나 에너지효율 분야는 소기업들도 높은 수준의 기술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 에기평 국제협력팀에서 준비하고 있는 것은 ETTA(Energy Technology Trading Agreement)라고,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을 다른 나라에 주고 우리가 필요한 것을 받아오는 방식이지요. 전력계통 등 인프라가 미비한 나라에 신재생에너지, 에너지효율, 스마트그리드(Smart Grid)를 묶어서 실험과 실증을 하는 식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핵심은 그 나라의 고급인력을 찾아 육성하는 것입니다. 현지 국가에 에기평 분원을 만들거나 그 나라 연구원을 한국에 데려와 한국의 대학에서 교육을 시키거나 하는 식이죠. 그렇게 우리와 관계를 맺은 사람들은 고국에 돌아가 우리의 앞선 에너지기술을 판매할 마케팅 요원이 될 것입니다. 정부가 이 프로젝트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이유지요.


안남성 원장은

1955년생으로, 부산고와 서울대학교 원자력공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위스콘신대학교 원자력공학 석사와 MIT에서 원자력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78년 한전에 입사해 전력연구원 안전분석그룹장과 기술정책팀장, 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 등을 거쳤다. 2009년부터 우송대 솔브리지 국제경영대 교수로도 재직했는데, 지난 5월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의 제2대 원장으로 취임하면서 교수직은 그만뒀다.

전공인 ‘원자력’에 대한 강한 신념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에너지기술과 에너지수급정책 분야에서 주로 일해 왔다. “시대정신”이라면서 청정에너지에 대한 강한 신념을 보이는 것은 ‘분산형 전원’과 ‘스마트그리드(Smart Grid)’의 원천인 ‘에너지와 IT기술 융합분야’에 대한 오랜 관심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신뢰’와 ‘청렴’을 중시하며 등산을 즐기는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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