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30일]과외교습을 반국가적 행위로 본 한국 신군부
2009년 인도 마지막 왕비 데비 타계
2009년 7월30일 인도 북서부 라자스탄주에 존재했던 토후국 자이푸르의 마지막 왕비인 갸야트리 데비가 타계했다. 향년 90세.
1919년 인도 벵골 지역의 토후국(土侯國) 쿠츠 베하르(Cooch Behar)의 왕족 출신, 곧 공주였던 그는 1940년 5월 당시 자이푸르의 왕(maharaja)이자 갑부였던 사와이 만 싱(Sawai Man Singh II)의 3번째 부인이 됐다.
인도 산티니케탄의 비스타바라티대학교(Visva-Bharati University)의 파타바바나(Patha Bhavana)와 영국의 런던비서학교에서 공부했다.
결혼 뒤 인도에서 여성들이 남편이나 직계가족외 다른 남자들과의 접촉을 엄격하게 금지하는 이른바 ‘푸르다(purdah)’ 관습을 타파하는 데 앞장섰다. 여성교육에도 관심을 가져 1943년 자이푸르에 자신의 이름을 딴 마하라니가야트리데비여자학교(Maharani Gayatri Devi Girl‘s School)를 설립했다.
현실 정치에서도 성공했다. 인도의 독립과 분열, 왕국의 합병을 겪은 뒤인 1962년 의회에 진출, 압도적 득표로 3선에 성공한 것. 스와탄트라당(Swatantra Party) 소속으로 인디라 간디가 이끄는 인도국민회의파(Indian National Congress)에 맞서 정치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했다.
시련도 있었다. 1971년 당시 총리인 인디라 간디는 왕족탄압정책에 따라 토후국 왕실에 종신연금격으로 교부되던 내탕금(內帑金)과 모든 특권이 폐지했다. 가야트리 데비는 탈세 혐의로 기소돼 티하르교도소에서 5개월간 복역했다. 이후 정계에서 물러났으며, 만년까지 자이푸르의 옛 모습을 되찾기 위한 활동을 전개했다.
패션잡지 <보그 Vogue>가 ‘세계 10대 미인’의 한 사람으로 선정했을 만큼 미모가 출중했다. 이런 미모를 바탕으로 인도 전통의상인 사리(Sari)를 세계에 알리는 등 한때 인도의 패션 아이콘 역할을 하기도 했다. 1976년 산타 라마 라우(Santha Rama Rau)와 함께 자서전 <공주의 기억(A Princess Remembers, 한국에서는 <내 사랑 인도>라는 제목으로 발간)>을 펴냈다.
2007년 탈레반에서 한국인 심성민씨 살해당하다
2007년 7월30일 한국 분당샘물교회의 여름 아프가니스탄 단기선교 활동에 참가해 같은 달 13일 출국했던 심성민(沈聖珉, 1978년 출생)씨가 현지의 탈레반에 납치돼 살해당했다.
경상남도 고성 출신으로 진주고등학교와 경상대학교를 졸업한 고 심성민씨는 대학 졸업 후 학군사관(ROTC)으로 군복무를 마치고 정보통신 관련 기업에서 근무하다가 농촌 문제에 관심을 두고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던 중, 교회의 선교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심씨는 아프간 내에서 이동하던 중이던 같은 달 19일 가즈니주에서 탈레반 무장세력에 의해 일행과 함께 납치됐다. 7월29일 일본 NHK 방송과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건강에 별 이상 없이 피납 여성 3명과 함께 민가에 갇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하루 뒤인 7월30일 저녁 탈레반에 의해 피살됐다.
사고 뒤 탈레반 측은 “남성 인질 한 명에게 총격을 가해 살해했고 시신을 유기했다”고 밝혔다. 시신은 다음날인 7월31일 아침 아프간 경찰이 발견했다. 한국 외교통상부는 이날 오후 선교단 리더였던 목사 배형규에 이어 탈레반에게 두 번째로 살해된 사람이 심성민임을 공식 확인했다.
유해는 8월2일 한국으로 운구, 8월4일 영결식이 치러졌다.
이 사건으로 납치됐던 23명(여자 16명, 남자 7명) 중 고 심성민씨와 고 배형규 목사를 제외한 인질 21명은 한국 정부와 탈레반의 협상으로 8월31일(한국 시각)까지 모두 풀려났다. 피랍 42일 만이었다. 생존한 피랍자 중 일부는 먼저 귀국했고, 19명이 9월2일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 사건으로 피랍자들처럼 해외 위험지역에 선교를 하고 다니는 일부 개신교도들은 비판을 받았다.
2004년 배우 출신 오기 지카게, 일본 여성 최초 참의원 의장에 선출
2004년 7월30일 오기 지카게(扇千景) 전 국토교통상이 일본의 상원에 해당하는 참의원 의장으로 내정됐다. 하원인 중의원의 경우 전(前) 사회당 당수였던 도이 다카코 전 의원이 의장으로 취임한 일이 있었으나, 참의원 의장에 여성의원이 선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오기 의원은 시원시원한 이미지의 정치인으로 한때 여성 총리설이 나왔을 정도의 여걸이다. 1952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극단 다카라즈카(寶塚)에 입단, 이후 연극·영화 배우를 거쳐 TV사회자로서도 큰 활약을 한 연예인 출신 의원이다. 연예인들의 정계 진출이 활발하던 1977년, 당시 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 총리 등 자민당의 거물의원들이 직접 스카우트에 나설 정도로 지명도 있는 인물이다.
본명은 하야시 히로코(林寬子)로, ‘오기 지카게’라는 이름은 출신지인 고베(神戶)항의 별명인 오기(扇)와 존경하는 배우인 아와시마 지카게(淡島千景)에서 따온 예명이다.
건설교통상 재임시 ‘주부감각’을 내세운 정책을 표방, 밤 시간 이용이 어려운 나리타(成田)공항 대신 하네다(羽田)공항에 국제선 정기편 취항이 가능하도록 했다. 탈당경력이 약점으로 지적됐으나 경쟁자였던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의 아들인 히로부미(弘文·58)씨가 경쟁파벌의 견제 등으로 탈락하며, 결국 의장에 내정됐다.
참의원(일본어: ?議院, さんぎいん)은 일본 국회를 구성하는 양원 중의 하나로 상원에 해당하며, 영문칭은 ‘House of Councillors’이다. 일본국 헌법이 시행되면서 제국의회의 귀족원을 대신하여 설치되었다.
2012년 7월 현재 참의원 의장은 지난 2011년 11월14일 취임한 민주당의 히라타 겐지(平田健二) 의원이다. 그는 전인 니시오카 다케오(西岡武夫) 참의원 의장이 같은 달 5일 타계함에 따라 그 후임 의장으로 취임했다.
1980년 한국 신군부, 교육법 개정 과외금지조치 단행
1980년 7월30일 한국의 신군부가 이끄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상임위원장 전두환)는 사회정화운동의 일환으로 학교 내 보충수업 이외의 모든 과외교습을 금지하는 내용의 7·30교육개혁조치가 발표했다.
고액 과외 금지 명분은 사회적 위화감 해소였다. 먼저 공직자·변호사·의사 등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자녀 과외를 강력히 단속했고, 현직 교사의 과외와 재학생의 사설학원 수강도 금지했다. 이어 범국민적 과열 과외 추방 캠페인을 전개하고 위반자는 사회정화 차원에서 처벌했다. 비밀과외를 적발하는 공무원을 포상했고, 과외를 적발당한 공무원은 사퇴는 물론 구속 수사에 세무 사찰까지 했다.
신군부는 과외를 반국가적 행위로 여겼다. 과외교습의 대표적인 문제점은 학생들의 심리적 압박감과 과중한 학습시간으로 인해 심신의 발달이 저해된다는 점이었다. 이러한 폐단을 줄이기 위해 한국 정부는 1969년 중학교 입학시험을 폐지하고 1974년 고교평준화정책을 도입하는 등 입시제도를 고쳐왔다. 그러나 이것은 다시 대학입학에 대비한 고등학생들의 과외로 모양을 바꾸면서, 1970년대 말에는 ‘과외망국론’이 거론될 정도로 과열과외가 계속됐다. 국보위 조치는 그러나 사회 일각에서 과외교육 금지의 정당성과 실효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계속되면서 1989년 6월 이후 과외교육이 부분적으로 허용됐다. 2000년 4월27일 헌법재판소는 과외금지조항은 위헌으로 결정했다. 다시 과외교육이 전면 허용됐다.
이상현 기자 coup4u@theasian.asia